日 헌병이 뺏은 의병들의 처절했던 항일투쟁사 '최초 공개'
전 세계에 독립 당위성 알린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 시판도 공개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경술국치 1~2년 전인 1908년에서 1909년 의병들의 서신이 담긴 문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역설적으로 이 문서들은 의병들을 잔인하게 괴롭혔던 일본인 헌병이 빼앗아 추후에 정리한 것이다. 이 일본인 헌병은 문서 하나하나에 주석을 달만큼 의병들의 독립운동 정보를 상세하게 알았던 인물이었다.
국가유산청은 14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관련 있는 문화유산인 △한말 의병 관련 문서 △한일관계사료집-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이하 한일관계사료집) △조현묘각운 시판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유산들은 일본과 미국 등 국외에서 환수해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의병들의 처절한 독립운동사가 생생하게 기록된 문서로, 관련한 문서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했는데, 매도인은 지난해 이 문서를 매입해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는 상태였다.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당대 최고의 의병장들이 생산한 문서이자 이들의 인장이 찍힌 공문서"라며 "의병들의 서신이 담긴 자료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서는 두 개의 두루마리로 구성됐다. 두 개의 두루마리에는 13도 창의군(연합의병부대)에서 활동한 허위와 이강년 등이 작성한 문서 9건과 항일 의병장 유인석의 시문집인 '의암집'이 제작되던 현장에서 일제 헌병이 빼앗았던 유중교와 최익현의 서신 4건 등 총 13건의 문서가 나눠져 담겨 있다. 그리고 각 문서에는 일본인 헌병 '개천장치'(芥川長治)가 단 주석이 달려 있다. 이 주석은 각 문서 작성자 등에 관련한 자세한 정보가 실려 있다.
개천장치는 일본인 헌병의 이름이다. 정확한 일본식 발음은 인지하기 어렵지만 관련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10년대 조선총독부 헌병오장 재임 후 1935년까지 중국 용정과 하얼빈 등에서 일본 제국 총영사관 경찰부 경시를 지냈다. 박 연구원은 "의병 등 독립운동가의 피를 빨아먹고 성장한 사람"이라며 "누구보다 독립운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개천장치는 이런 서신을 독립운동가들에게서 다수 빼앗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모아 자신이 퇴임할 때쯤인 1939년에 두루마기를 이용해 문서를 만들었다. 일종의 전리품인 셈이다.
개천장치는 각 두루마리에 '한말배일거괴지척독'(한말 일본을 배척한 우두머리의 편지)과 '한말배일폭도장령격문'(한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이란 제목을 달았다. 독립운동가들을 악당의 두목이라는 뜻인 '거괴'(巨魁), 일본을 배척한다는 뜻의 '배일'(排日)이란 단어 등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도했는지 등을 엿볼 수 있다.
허위와 이강년을 체포한 사실이나 '의암집' 제작 현장을 급습한 사실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일제의 의병 탄압 및 강압적 행위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일제의 입수경위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박 연구원은 "서신의 내용을 보면 군수품이 부족하고 소통이 어렵다는 등 의병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며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만큼 기존의 역사와 대조하며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재미동포 개인 소장자가 역사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문화유산을 국민과 함께 향유하길 바란다며 조건 없이 국외재단에 기증한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이다.
책 제목에 '국제연맹에 제출'이라고 적힌 만큼 임시정부가 전 세계에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편찬 당시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완질로 전하는 것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독립기념관 소장본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까지 2질뿐이다.
이번 '한일관계사료집' 각 권 첫머리에는 집필자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김병조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어 그의 수택본(손때가 묻은 책)으로 추정된다.
김강원 대표가 기증해 일본에서 돌아온 '조현묘각운' 시판은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의 작품이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광덕리에 있는 옛 지명인 '조현'에 묘각을 새로 지은 것을 기념해 후손이 번창하길 축원하는 칠언율시가 적혀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13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결정 된 의병장 최익현의 의복과 허리띠 등 5건의 유물이 함께 공개됐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환수 문화유산은 단순히 국외에 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라며 "특히 국가유산 체계로의 전환 이후 첫 환수 유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정부와 민간의 협업, 그리고 소장자의 관심과 선의가 모두 맞물려져 가능했던 적극 행정의 결과라서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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