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밉보이면 인터넷도 금지?…“여기가 북한이냐” [특파원 리포트]
한 X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전단 사진 두 장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12일, 이름모를 누군가가 중국 칭다오 길거리에 뿌렸다는 이 전단에는 굵게 강조한 글씨로 "결사반대" , "인터넷 입막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중국에서 시민이 전단을 뿌리는 일은 쉽게 용인되지 않습니다.
뿌리자마자 사라졌을 이 전단, 너무도 당연하게 중국 바이두와 웨이보에서 역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중국, '인터넷 신분증' 도입 추진…왜?
전단을 뿌린 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막으려 애썼던 것은 최근 중국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 신분증(網絡身份認證)' 입니다.
지난달 26일, 중국 공안부와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인터넷 신분증' 도입을 추진한다며 이달 25일까지 사회 각 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인터넷 아이디(網號)'와 '인터넷 신분 인증(網證)'을 발급해 인터넷을 이용할 때 신원확인 용도로 사용하도록 한다는게 골자입니다.
이미 발급을 위한 앱을 배포했습니다. 어떤 방식인지 확인해봤습니다.
기존 신분증 번호(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휴대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본인이 맞는지 신분증 상의 얼굴과 대조하는 안면인식을 거치면 바로 QR 코드와 아이디가 표시된 인터넷 신분증이 발급됩니다.
이걸로 인터넷 사이트와 각종 어플리케이션에서의 회원가입 및 본인인증 절차를 대신하게 한다는 건데, 아직 정책 의견수렴 기간이지만 위챗· 타오바오· 철도 예약 플랫폼(중국철도 12306) 등을 포함해 약 70곳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밉보이면 인터넷도 금지?
중국 당국은 인터넷 신분증이 여러 사이트와 앱에 매번 따로 가입해야하는 불편을 덜어주고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과 유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웨이보 등 SNS에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격한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뭘 우려하는 걸까요?
라오둥옌(勞東燕) 칭화대 법학원 교수 :
"개인의 (열람을 포함한) 모든 인터넷 흔적을 한번에 손쉽게 수집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감시를 위한 추적기를 달아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래 범죄 혐의자에게나 하던 형사적인 조치를 제한없이 확대해 모든 일반인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황위성(黄裕生) 칭화대 철학과 교수 :
"국민들의 언론·사상·행동의 자유에 대해 감시를 강화할 목적이거나, 언론·사상의 자유를 더욱 치밀하게 감시할 수 있게끔 하는 정책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현대화 국가의 건설 방향·목적에 배치되는 것이다."
현재 라오 교수의 계정은 게시글 업로드가 차단됐고, 황 교수의 계정은 아예 삭제돼 계정명조차 검색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봤습니다.
이번 일에도 그랬듯, 특정 인사가 SNS에 반정부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 지금은 대부분 해당 계정을 폐쇄하는 데 그칩니다. 동일인이 다른 SNS에 가지고 있는 계정까지 일일이 찾아 모두 폐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신분증이 자리 잡게 된다면, 이 신분증 하나만 무효화할 경우 모든 계정을 닫아버릴 수도 있고 특정인의 인터넷에서의 모든 활동을 쉽게 추적해 원천 차단할 수도 있습니다.
계정과 게시글 중심이었던 단속이 사람 중심의 단속으로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라오둥옌과 황위성, 이 두 교수는 아예 모든 인터넷 활동이 원천 금지될지도 모릅니다.
■웨이보에선 '찬양' 일색…X에선 "여기가 북한이냐"
인터넷 신분증은 사실 갑작스럽게 추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올해 3월 양회 때 공안국 소속의 경찰 자샤오량(賈曉亮)이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해 이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이후 X에서 개인정보와 가족사진까지 공개되는 신상털이 수모를 겪는 등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당국에서 이런 여론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정책을 추진하고 나선 것 자체가 중국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자샤오량의 신상털이까지 횡행했던 X의 경우 중국 당국에서 단속할 방법이 없는 플랫폼입니다.
이 때문에 X에는 최근 인터넷 신분증에 대한 비판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을 가리켜 '서쪽에 있는 북한(西朝鮮)'이라며 자조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당국의 단속과 견제 하에 놓인 웨이보에서는 이 제도를 찬양하는 글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SNS 게시글과 계정이 사라지는 일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X, 유튜브 등 외부 세계에 자국민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인터넷 만리장성'의 존재 때문에 중국 사회 내부에서 정부 비판 의견은 점차 사장되어가고 있습니다.
만일 라오 교수와 황 교수의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중국 정부는 이제 자국 내에서도 인터넷 만리장성을 세우는 셈이 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만리장성보다 더 공고할 수도 있습니다. 우려와 반대가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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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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