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에서 테너로 세계무대 우뚝 선 백석종…“밑에서 위까지 꽉 찬 소리”
플라시도 도밍고(83)와 카를로 베르곤치(1924~2014)는 바리톤에서 전향해 성공한 테너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음역이 넓어 오페라에서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많았다. 국내에선 백석종(38)이 이들의 뒤를 잇는 후예. 2019년 바리톤에서 테너로 옮긴 이후 3년 만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과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극장의 주역 가수로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백석종은 “한국 오페라 무대에 설 날을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제음악제 폐막공연에서 백석종은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중에서 ‘청아한 아이다’를 불렀다. 저음이 중심을 잡아줘 고음부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어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가운데 ‘오묘한 조화’, ‘투란도트’ 중에서 ‘아무도 잠들지 말라’(네순 도르마)를 노래했다. 객석의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 이원석 팀파니 주자는 “이토록 청중을 압도하는 성악 무대는 오랜만”이라고 했다. 최은규 평론가는 “목소리가 미성”이라고 했고, 노승림 평론가는 “대포처럼 쭉 뻗어 나가는 소리에 표현력도 갖췄다”고 평했다.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성량이 풍부했는데, 트럼펫과 트롬본 등 소리가 큰 금관악기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최근 자주 맡은 배역의 아리아를 골랐어요. 세 곡 모두 쉽지 않은데, ‘네순 도르마’는 제 주특기죠.” 그는 “2027년까지는 일정이 다 찼고, 2028년도 30%쯤 예약이 돼 있다”고 했다. 가장 자주 서는 무대가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와 런던 로열오페라. ‘아이다’ ‘토스카’ ‘투란도트’ 외에 ‘나부코’ ‘라보엠’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서부의 아가씨’ 등 다양한 오페라 주역을 예약했는데, 그에겐 모두 처음인 작품들이다. 내년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선다.
그는 테너 이용훈(51)을 “은인과도 같은 분”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바리톤에서 테너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조언을 해줬기 때문이다. 백석종도 석사 시절부터 테너를 해보고 싶었다. 이런 뜻을 꺼내자 미국 맨해튼 음대 스승이 강력하게 만류해 승강이까지 벌여야 했다. 세계적인 바리톤 토머스 햄슨(69)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했는데, 햄슨 역시 “고음을 잘 내는 게 인상적인데 그래도 자네는 바리톤”이라고 했다. 스승은 “거봐라. 테너 전향은 안 된다”며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이용훈은 달랐다. 교회 음악회를 통해 2017년 뉴욕에서 처음 만난 이용훈은 백석종의 노래를 듣더니 “테너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년 뒤 다시 뉴욕 이용훈의 아파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용훈이 테너 아리아 한 곡을 불러보라 하자 백석종은 ‘토스카’의 ‘오묘한 조화’를 불렀다. “이용훈 선생님이 충격을 받은 듯 곰곰 생각하시더니 ‘테너를 해도 충분할 것 같다’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셨어요. 2~3년 충분히 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셨고요.” 이듬해 터진 코로나는 그에게 시간을 줬다. “날마다 연습에 매달렸어요. 노래도 불렀지만, 가슴을 열어 온몸에 울림을 주는 연습도 했어요. 18개월쯤 지나자 제대로 고음이 터지더군요.”
2021년 미국 로렌 자카리 오페라 콩쿠르와 이탈리아 빈체로 콩쿠르, 스페인 비냐스 콩쿠르에서 ‘테너’로 우승하면서 기회가 왔다. 이듬해 로열오페라극장 무대에서 ‘삼손과 델릴라’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잇따라 주역을 맡았는데, 모두 대타였다. 이들 공연을 눈여겨본 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도 주역으로 초청했다. 이후 세계 각지의 오페라극장에서 출연 제의가 쏟아졌고,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도 ‘스타 탄생’을 알렸다.
그는 자신의 강점으로 풍부함과 깊이를 꼽았다. “소리가 밑에서부터 위에까지 꽉 들어차 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목소리가 드라마틱하게 들리나 봐요.” 그러면서 자신을 ‘리릭 스핀토 테너’로 분류했다. 서정적인 ‘리릭’ 음색에 ‘찌르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스핀토’처럼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을 겸비한 테너를 말한다. “계속 달려야지, 여유 부릴 틈이 없어요. 이거 끝나면 저거 준비하고, 또 다른 거 준비하고 그래야지요.”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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