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신한은행으로 향한 박병우, “농구를 너무 좋아해요”
손동환 2024. 8. 14. 13:25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7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6월 12일 오후 2시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박병우(인천 신한은행 기술 코치)는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농구를 직업으로 삼았고, 좋아하는 농구를 직업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구’를 말할 때, 박병우의 목소리는 유독 밝았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박병우(인천 신한은행 기술 코치)는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농구를 직업으로 삼았고, 좋아하는 농구를 직업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구’를 말할 때, 박병우의 목소리는 유독 밝았다.
듀얼 가드
중앙대는 2010년 대학농구리그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오세근과 김선형(이상 현 서울 SK), 함준후(현 고양 소노)로 이뤄진 ‘07학번 3인방’의 힘이 컸다.
그러나 특급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역량도 뛰어났다. 박병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넘나든 박병우는 중앙대의 다양한 조합에 포함됐고, 중앙대 역시 박병우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박병우의 팀 내 가치는 꽤 높았다.
역량을 보여준 박병우는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선배들과 함께 2012~2013시즌을 준비했고, 데뷔 시즌에 45경기 평균 14분 50초를 소화했다. 백업 가드로서 꽤 좋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습니다.
트라이아웃 때만 해도, 전혀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드래프트 직전에는 많이 떨었어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요. 그런데 은사님이셨던 김상준 감독님(현 성균관대 감독)께서 저를 선택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내가 못 하면, 감독님께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건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담감도 많이 컸어요. 다만, 감독님께서 바로 나가셔서...
삼성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가고 싶은 팀이었습니다. 시설과 분위기도 좋았고, 좋은 가드 형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합류하고 나니, 막막했습니다. (김)승현이형과 (이)정석이형(현 용산중 A코치), 이시준 코치님(현 인천 신한은행 코치) 등 좋은 가드 형들이 많았거든요. ‘경기에 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던 것 같아요.
약 9개월 동안 데뷔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2011~2012시즌 중반에 입단했고, 2011~2012시즌 종료 후 2주 만에 비시즌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열심히 했어요. 의욕도 앞섰고요. 그러다 보니, 페이스를 너무 빨리 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좋았던 흐름도 빨리 꺾이더라고요.
특히, 시즌 개막 직전에는 허리를 다쳤습니다. 개막전을 못 뛸 뻔했어요. 그렇지만 재활 센터에서 엄청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개막 시즌을 잘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 시즌은 어떠셨나요?
앞서 말씀 드렸듯, 좋은 가드 형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저 스스로 어떻게 해야 뛸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김동광 감독님(전 KBL 경기본부장)과 김상식 코치님(현 안양 정관장 감독), 이상민 코치님(현 부산 KCC 코치) 등 코칭스태프께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요.
특히, 김동광 감독님께서는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경기를 생각보다 많이 뛸 수 있었습니다. 임팩트 있는 경기도 꽤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회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대는 2010년 대학농구리그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오세근과 김선형(이상 현 서울 SK), 함준후(현 고양 소노)로 이뤄진 ‘07학번 3인방’의 힘이 컸다.
그러나 특급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역량도 뛰어났다. 박병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넘나든 박병우는 중앙대의 다양한 조합에 포함됐고, 중앙대 역시 박병우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박병우의 팀 내 가치는 꽤 높았다.
역량을 보여준 박병우는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선배들과 함께 2012~2013시즌을 준비했고, 데뷔 시즌에 45경기 평균 14분 50초를 소화했다. 백업 가드로서 꽤 좋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2012년 1월에 열린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8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습니다.
트라이아웃 때만 해도, 전혀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드래프트 직전에는 많이 떨었어요. 밥도 못 먹을 정도로요. 그런데 은사님이셨던 김상준 감독님(현 성균관대 감독)께서 저를 선택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내가 못 하면, 감독님께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건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담감도 많이 컸어요. 다만, 감독님께서 바로 나가셔서...
삼성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가고 싶은 팀이었습니다. 시설과 분위기도 좋았고, 좋은 가드 형들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합류하고 나니, 막막했습니다. (김)승현이형과 (이)정석이형(현 용산중 A코치), 이시준 코치님(현 인천 신한은행 코치) 등 좋은 가드 형들이 많았거든요. ‘경기에 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던 것 같아요.
약 9개월 동안 데뷔 시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2011~2012시즌 중반에 입단했고, 2011~2012시즌 종료 후 2주 만에 비시즌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열심히 했어요. 의욕도 앞섰고요. 그러다 보니, 페이스를 너무 빨리 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좋았던 흐름도 빨리 꺾이더라고요.
특히, 시즌 개막 직전에는 허리를 다쳤습니다. 개막전을 못 뛸 뻔했어요. 그렇지만 재활 센터에서 엄청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개막 시즌을 잘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데뷔 시즌은 어떠셨나요?
앞서 말씀 드렸듯, 좋은 가드 형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저 스스로 어떻게 해야 뛸 수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김동광 감독님(전 KBL 경기본부장)과 김상식 코치님(현 안양 정관장 감독), 이상민 코치님(현 부산 KCC 코치) 등 코칭스태프께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요.
특히, 김동광 감독님께서는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경기를 생각보다 많이 뛸 수 있었습니다. 임팩트 있는 경기도 꽤 많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기회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트레이드
박병우는 2012~2013시즌 종료 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박병우의 행선지는 원주 동부(현 원주 DB)였다. 갑작스런 트레이드에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새로운 팀에서 입지를 끌어올렸다. 2013~2014시즌 42경기 평균 18분 17초 동안 5.3점 2.1어시스트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14~2015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2017~2018시즌에 새로운 팀명(원주 DB) 그리고 새로운 코칭스태프(이상범 감독-이효상 수석코치-김성철 코치 등)와 함께 했다. 하지만 제대 후 첫 시즌 때 정규리그 1위를 경험했다.
그리고 박병우는 2018~2019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를 취득했다. FA를 취득한 박병우는 창원 LG로 이적했다. 그러나 LG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울산 현대모비스로 팀을 옮겼지만, 박병우를 위한 기회는 없었다. 기회를 얻지 못한 박병우는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2012~2013시즌 종료 후 처음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저희가 2013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로터리 픽을 얻었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순번이었죠. 4순위를 얻은 저희는 박재현 선수를 지명했어요. 그래서 트레이드를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가드 자원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드래프트 직전까지 ‘설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김동광 감독님께서 방으로 부르시더니, “1년만 동부에 다녀와라”고 하셨어요. 임대 트레이드였던 거죠. 그리고 짐을 싸러 갔는데, 매니저 형께서 “2년은 있어야 돼”라고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더 많이 받았어요.(웃음)
그렇지만 삼성으로 복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2013~2014시즌 때 외국 선수 트레이드를 진행했어요.(동부는 허버트 힐을 삼성으로 보냈고, 삼성은 마이클 더니건을 동부로 보냈다) 그때 임대 트레이드가 없던 일로 변경됐을 거예요.
2017~2018시즌에 정규리그 1위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선수 박병우’의 퍼포먼스는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박병우는 2017~2018시즌 43경기 평균 11분 57초를 소화했다. 군 입대 직전인 2014~2015시즌보다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했다)
이상범 감독님께서 2017년 비시즌 때 “(두)경민이와 너를 메인 가드로 투입할 거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연습 경기부터 저와 경민이를 많이 활용하셨죠. 그렇지만 저는 일본 전지훈련에서 종아리를 다쳤습니다. 복귀를 추진했지만, 너무 무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백기가 오히려 길어졌어요.
시즌 중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저희 팀이 엄청 잘 나갔습니다. 반면, 저는 몸도 마음도 급했어요. 그래서 팀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출전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었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기회를 더 얻지 못했습니다.
부상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제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잘했다면, 기회를 더 많이 얻었을 거예요.
결국 2021~2022시즌 종료 후 선수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고,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박병우는 2012~2013시즌 종료 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박병우의 행선지는 원주 동부(현 원주 DB)였다. 갑작스런 트레이드에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새로운 팀에서 입지를 끌어올렸다. 2013~2014시즌 42경기 평균 18분 17초 동안 5.3점 2.1어시스트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14~2015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2017~2018시즌에 새로운 팀명(원주 DB) 그리고 새로운 코칭스태프(이상범 감독-이효상 수석코치-김성철 코치 등)와 함께 했다. 하지만 제대 후 첫 시즌 때 정규리그 1위를 경험했다.
그리고 박병우는 2018~2019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를 취득했다. FA를 취득한 박병우는 창원 LG로 이적했다. 그러나 LG에서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울산 현대모비스로 팀을 옮겼지만, 박병우를 위한 기회는 없었다. 기회를 얻지 못한 박병우는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2012~2013시즌 종료 후 처음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저희가 2013년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로터리 픽을 얻었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순번이었죠. 4순위를 얻은 저희는 박재현 선수를 지명했어요. 그래서 트레이드를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가드 자원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드래프트 직전까지 ‘설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김동광 감독님께서 방으로 부르시더니, “1년만 동부에 다녀와라”고 하셨어요. 임대 트레이드였던 거죠. 그리고 짐을 싸러 갔는데, 매니저 형께서 “2년은 있어야 돼”라고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더 많이 받았어요.(웃음)
그렇지만 삼성으로 복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희가 2013~2014시즌 때 외국 선수 트레이드를 진행했어요.(동부는 허버트 힐을 삼성으로 보냈고, 삼성은 마이클 더니건을 동부로 보냈다) 그때 임대 트레이드가 없던 일로 변경됐을 거예요.
2017~2018시즌에 정규리그 1위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선수 박병우’의 퍼포먼스는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박병우는 2017~2018시즌 43경기 평균 11분 57초를 소화했다. 군 입대 직전인 2014~2015시즌보다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못했다)
이상범 감독님께서 2017년 비시즌 때 “(두)경민이와 너를 메인 가드로 투입할 거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연습 경기부터 저와 경민이를 많이 활용하셨죠. 그렇지만 저는 일본 전지훈련에서 종아리를 다쳤습니다. 복귀를 추진했지만, 너무 무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백기가 오히려 길어졌어요.
시즌 중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저희 팀이 엄청 잘 나갔습니다. 반면, 저는 몸도 마음도 급했어요. 그래서 팀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출전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었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기회를 더 얻지 못했습니다.
부상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 제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만약에 잘했다면, 기회를 더 많이 얻었을 거예요.
결국 2021~2022시즌 종료 후 선수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고,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터닝 포인트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병우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우선 ‘프라임 타임’에서 스킬 트레이너로 일했다. 엘리트 선수와 동호인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제물포고 A코치로 잠시 일한 후, 6월 1일부터 인천 신한은행의 기술 코치로 부임했다.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은퇴 후 스킬 트레이너로 일했습니다.
2021~2022시즌 중 은퇴를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때 수원에 있는 (박)찬성이형(프라임 타임 대표)한테 “은퇴하면 스킬 트레이너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게 긍정적이었나요?) 새로운 일을 바로 할 수 있다는 점이요.
스킬 트레이너로서 어떤 내공을 쌓으셨나요?
찬성이형한테 스킬 트레이너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배웠고, 저 스스로도 스킬 트레이닝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습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법과 부모님들을 상대하는 법 역시 배웠고요.
하지만 스킬 트레이닝을 좋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계세요. “이상한 걸 가르친다”는 말을 그 분들로부터 들었죠. 하지만 저희는 기본기에 초점을 뒀습니다.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선수들에게 알려줬어요. 그런 점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6월 1일부터 인천 신한은행의 기술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선수들이 본 운동을 할 때, 저는 선수들의 상대편에서 공격과 수비를 합니다. 그리고 밖에서 훈련을 지켜볼 때, 감독님의 전술과 선수들의 미비점을 선수들에게 알려줘요. 또, 선수들이 야간 훈련에 참가할 때, 저는 스킬 트레이닝을 진행합니다. 선수들의 특성과 포지션에 맞춰서요.
지도자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제 막 지도자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지도자 선배님들의 장점을 공부해야 해요. 그걸 토대로, 저만의 철학과 생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도자로서 공부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선수들의 장단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성향과 전술, 패턴 플레이 또한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팀 분위기를 파악해야 해요.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병우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우선 ‘프라임 타임’에서 스킬 트레이너로 일했다. 엘리트 선수와 동호인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제물포고 A코치로 잠시 일한 후, 6월 1일부터 인천 신한은행의 기술 코치로 부임했다.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은퇴 후 스킬 트레이너로 일했습니다.
2021~2022시즌 중 은퇴를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그때 수원에 있는 (박)찬성이형(프라임 타임 대표)한테 “은퇴하면 스킬 트레이너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게 긍정적이었나요?) 새로운 일을 바로 할 수 있다는 점이요.
스킬 트레이너로서 어떤 내공을 쌓으셨나요?
찬성이형한테 스킬 트레이너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배웠고, 저 스스로도 스킬 트레이닝에 필요한 기술들을 연습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법과 부모님들을 상대하는 법 역시 배웠고요.
하지만 스킬 트레이닝을 좋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계세요. “이상한 걸 가르친다”는 말을 그 분들로부터 들었죠. 하지만 저희는 기본기에 초점을 뒀습니다.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선수들에게 알려줬어요. 그런 점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6월 1일부터 인천 신한은행의 기술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선수들이 본 운동을 할 때, 저는 선수들의 상대편에서 공격과 수비를 합니다. 그리고 밖에서 훈련을 지켜볼 때, 감독님의 전술과 선수들의 미비점을 선수들에게 알려줘요. 또, 선수들이 야간 훈련에 참가할 때, 저는 스킬 트레이닝을 진행합니다. 선수들의 특성과 포지션에 맞춰서요.
지도자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제 막 지도자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지도자 선배님들의 장점을 공부해야 해요. 그걸 토대로, 저만의 철학과 생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도자로서 공부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선수들의 장단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님의 성향과 전술, 패턴 플레이 또한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팀 분위기를 파악해야 해요.
“농구를 너무 좋아해요(웃음)”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박병우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박병우는 20년 넘게 농구공과 함께 하고 있다. 코트에 있는 시간 동안, 숱한 일들을 겪었다. 그리고 코트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농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진심도 느껴졌다. ‘농구’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박병우의 어조가 너무 밝아서였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음...(박병우는 이때 한참을 생각했다) 사실 저도 예전부터 지도자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치님들께서 알려주신 걸 메모했고, 저만의 일지를 적기도 했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저도 모르게 지금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농구는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병우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운동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어요. 부상도 겹쳤고, 기회를 잡지 못한 시간도 길었죠.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만, 후회는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할 것 같습니다. 농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웃음) 또,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농구는 끝없이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부족한 게 많기 때문에,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 = 락(본문 첫 번째 사진)
사진 = KBL 제공(본문 2~4번째 사진)-손동환(본문 마지막 사진)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박병우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박병우는 20년 넘게 농구공과 함께 하고 있다. 코트에 있는 시간 동안, 숱한 일들을 겪었다. 그리고 코트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농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진심도 느껴졌다. ‘농구’라는 단어를 이야기할 때, 박병우의 어조가 너무 밝아서였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음...(박병우는 이때 한참을 생각했다) 사실 저도 예전부터 지도자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코치님들께서 알려주신 걸 메모했고, 저만의 일지를 적기도 했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저도 모르게 지금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농구는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병우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운동과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어요. 부상도 겹쳤고, 기회를 잡지 못한 시간도 길었죠.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만, 후회는 없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할 것 같습니다. 농구를 너무 좋아하거든요.(웃음) 또, 농구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리고 농구는 끝없이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부족한 게 많기 때문에,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러스트 = 락(본문 첫 번째 사진)
사진 = KBL 제공(본문 2~4번째 사진)-손동환(본문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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