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121)해외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명품술이 나왔다 '전주이강주 55도'

박순욱 선임기자 2024. 8. 1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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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 5년 숙성 전주이강주 55도 신제품 내놓아
배의 감칠맛, 생강의 스파이시함이 기존 25도 이강주보다 도드라져
금주전자 세트, 금잔 달병 세트 2종류 출시…명절 선물시장도 겨냥
150개 한정 금주전자 세트는 고급 백화점에만, 달병 세트는 인터넷에 판매 돌입
“치열한 국내시장에서 매출 늘리기보다 해외시장 공략에 더 신경쓸 터”
전주이강주 55도 신제품들. 왼쪽이 금주전자 세트(사각 도자기병, 금주전자, 금잔, 잔받침으로 구성), 오른쪽은 금잔 달병 세트(초승달을 디자인한 블랙 도자기병, 금잔 2개 구성). 금주전자 세트는 70만원, 금잔 달병 세트는 18만원이다. /전주이강주

“(전주이강주 55도는)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드는 느낌에 놀랐다. 농밀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이 있는 여운(finish)과 감칠맛까지 갖춘 술이다. 후미에서는 이강주 특유의 스파이시함이 느껴지며 반전 묘미를 보여주는데, 묘하게 중식(중국음식)이 떠오른다(이강주 55도와는 중식이 어울릴 것 같다).”(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의 전주이강주 55도 시음평)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이 ‘55도 전주이강주’ 신제품을 새로 내놓았다. 이강주는 25도 제품이 주력 제품이며, 해외수출용으로 38도 제품이 있으나, 55도 제품은 그동안 만들지 않았다. 조 명인은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안동소주, 문배술과 함께 1세대 민속주 지정 명인으로서, 유일하게 아직 현역에서 술을 빚고 있는 ‘전통주업계 맏형님’이다. 1941년생이니, 올해 여든셋이다.

조 명인이 최근 기자에게 시음용으로 보내준 전주이강주 55도를 서울시내 한 중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맛봤다. 이강주는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부재료로 사용한 술이다. 55도 신제품에는 배를 비롯한 부재료들이 25도 제품보다 10~20% 더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55도 이강주는 첫 모금만으로도 배, 생강 향이 확 하면서 입안 전체를 감쌌다. 뒤따라 알코올 향이 느껴졌지만, 55도의 ‘무게’는 아니었다. 그만큼 부드러웠다. 오랜 숙성 덕분이다. 전주이강주 25도는 1년 숙성이 기본이다. 55도 신제품은 5년을 숙성했다고 하니, 오랜 숙성에서 오는 깊이와 부드러움은 ‘이런 술이 한국에 또 있나?’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풍미를 자랑했다. 같이 맛을 본 일행 중 한 사람은 “최고급 중국 백주를 마시는 느낌”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이 최근 55도 이강주를 새로 내놓았다. 배, 생강, 계피 등을 침출한 원액과 증류원액을 블렌딩한 뒤 5년간 숙성한 제품이다. /전주이강주

55도 이강주는 패키지 디자인부터 예사롭지 않다. 초승달 모양을 한 ‘금잔 달병 세트(500ml)’, 사각 도자기병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려져 있는 ‘금주전자 세트(700ml)’ 이렇게 2종류가 있다. 금 도금을 한 금잔 2개가 세트에 들어있는 것도 이전 명절 선물세트와도 다르다. 금주전자 세트에는 금잔 2개, 잔 받침 2개, 금주전자 1개가 들어있다. 55도 이강주를 금 주전자에 따라서, 금잔에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외 고급 술시장과 명절 선물시장을 염두에 둔 제품인 듯 싶었다. 금잔과 금주전자에는 순금도 일부 들어있다고 한다. 이강주 55도 금잔 달병 세트가 18만원, 금주전자 세트는 70만원으로 책정했다. 다소 가격이 높다 싶지만, 요즘 금값이 좀 비싼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주인 전주이강주는 그동안 옥색 도자기병과 유리병에 술을 담아, 출시했다. 달병 패키지 디자인 제품은 청와대 납품용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왔다. 이번에 새로 만든 55도 달병은 기존 달병(25도 제품 사용)과 디자인은 같지만, 색상이 훨씬 세련되고 대담해졌다. 55도 달병 세트는 올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국제주류박람회 ‘프로바인’에서 첫선을 보였다. 금주전자 세트는 최근에야 사각 도자기병이 완성돼, 그동안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다.

전주이강주의 주요 부재료들. 배, 생강, 울금, 계피를 술이 든 개별 항아리에 따로 숙성시킨 뒤 블렌딩한 후에 최소 1년을 숙성시켜 만든다. 그게 전주이강주 25도 제품이다. 신제품 55도는 블렌딩 후 5년을 더 숙성시켜 만든다. /전주이강주

그런데, 25도 전주이강주를 주력으로 생산, 판매해온 조정형 명인(전주이강주 회장)은 알코올 도수를 크게 높인 55도 신제품을 왜 개발했을까? 또, 25도의 두배가 넘는 알코올 도수인 55도 이강주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전주이강주 본사(전북 전주시 덕진구 매암길 28)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약 3시간 걸렸다.

전주이강주 55도 금주전자 세트. 사각 도자기병 겉면에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려져 있다. 조명인의 얼굴과 넘버링(150병 한정 생산)까지 새기다 보니 가마에 세번 구웠다. /전주이강주

“이강주는 25도가 맞아. 식사와 함께 마시기에도 적당한 알코올 도수이기도 하고. 그런데, 해외로 나가봤더니 25도 술은 술 취급을 않는 나라들이 꽤 있더라고.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에서는 40도 이하 술은 찾아보기도 어려워. 그래서 오래 전에 38도 이강주를 해외수출용으로 내놓았는데, 그 도수로도 모자란 듯 해서, 이번에 55도 이강주를 새로 개발한 거지. 55도 정도 되면 어디에 내놓아도 알코올 도수가 밀리지 않지. 또, 외국의 어떤 술과 비교해도, 이강주만큼 정성이 가득 들어간 술은 드물어. 해외 명주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부해. 국내 명절 선물 시장도 염두에 두었고. 올 추석에 ‘빅 쓰리’ 백화점에는 소량이나마 금주전자 55도 이강주제품을 내놓을 작정이야. 금주전자 세트는 일년 생산량이 150병밖에 안돼. 시장 반응이 좋다고 공장에서 마구 찍어낼 수 있는 제품이 못돼. 외부에 제작을 맡긴 금주전자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일주일에 2개 정도밖에 못 만든다고 하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는 얘기야.”

조정형 명인은 55도 이강주 신제품은 해외 명주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강주는 국내 매출이 30억원을 넘어섰지만, 해외매출은 아직 1억~2억원 안팎인 수준이다. 조 명인은 특히 유럽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에 열린 독일 프로바인(세계 최대 규모 주류박람회) 행사에는 직접 참가해, 해외 바이어들과 만났다.

전주이강주 55도 금잔 달병 세트. 금잔에는 순금이 일부 들어 있다. /전주이강주

대리점 개설도 속도를 내고 있다. 네덜란드, 영국에 이어 독일에도 대리점 계약을 맺었고 최근에는 런던에 2호점을 개설했다. 특히, 2019년에 개설한 런던 1호점은 코로나 복병을 맞아 재고가 한때 그대로 쌓여 있다가, EPL(영국 프리미어리그)손흥민 선수의 활약 덕분에 단번에 재고를 털었다고 한다.

민속주 업체 전주이강주는 조정형 회장-이철수 사장 ‘듀엣 경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조 명인은 “국내 생산과 영업은 이철수 사장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고, 제품 개발과 수출업무만 아직 내가 맡고 있다”고 말했다. 조 명인의 대학 후배인 이철수 사장은 2016년부터 전주이강주 사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전주이강주 ‘전수자(전수학생)’ 과정을 밟고 있다. 조 명인은 “이철수 사장이 부임하고나서부터 국내 매출은 껑충 뛰었는데, 해외수출은 아직 적자라서, 오너인 내가 직접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매출을 지금의 10배인 10억 이상으로 올릴 작정이며, 현재 가동을 하고 있지 않는 제2공장을 수출 전용 공장으로 리뉴얼할 계획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55도 신제품에 대해 여쭤봤다. 올해 83세인 조 명인은 여전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제품 공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55도 이강주는 쌀, 보리(쌀의 20%)를 밀누룩, 물과 섞어 발효한 뒤 증류를 두번 해. 처음에는 38~48도 정도인 알코올 도수가 한번 더 증류하면 65~70도로 높아져. 이 증류원액을 여러가지 부재료 침출원액과 섞어 5년간 더 숙성한 뒤에 물과 꿀을 첨가해 55도 이강주를 만들어. 미리 만들어 놓은 침출원액은 배, 생강, 울금, 계피 같은 부재료를 증류원액에 넣어 1년간 별도의 다른 항아리에 숙성시켜. 다시 말하면 65도가 넘는 증류원액에 배 침출원액, 생강 침출원액 등을 블렌딩해서 5년간 추가(침출원액 1년 숙성과 별도)로 숙성시켜 만들어. 여러 부재료 원액과 섞은 뒤에 25도 이강주는 1년 숙성한 제품이고, 38도는 3년 숙성, 55도는 5년 숙성시켜 완성해.”

전주이강주 55도 신제품을 출시한 조정형 명인이 금잔 달병 세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박순욱 기자

-55도 제품은 개발에 얼마 걸렸고, 시제품은 얼마나 만들었나?

“본격 개발 기간은 1년 걸렸다고 보면 되는데, 사실 이미 5년전부터 블렌딩 원액(소주원액에 여러가지 침출원액을 섞은 것)을 숙성시켜왔기 때문에 5년전부터 준비를 시작됐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침출원액 비율을 조금씩 달리한 시제품은 최소 100개 이상을 만들어 맛봤다. 배, 생강 같은 부재료는 해마다 작황이 똑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강주에 들어가는 함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때그때 함량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55도 제품은 25도 제품보다는 부재료 함량이 훨씬 높아 과일, 약재 향이 훨씬 진한 반면, 오랜 숙성으로 풍미 역시 한결 부드럽다.”

여기서 다시한번 짚어보는 이슈가 ‘막걸리 첨가제’다. 최근 정부는 주세법 개정을 통해 막걸리에 향과 색소 첨가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막걸리의 첨가제 허용은 전통주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류인수 한국술문화연구소장을 비롯한 전통주 전문가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그동안은 향과 색소를 넣은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막걸리 표시를 못하고 주세도 6배 높게 매겼다. 그런데, 규제완화 차원에서 앞으로는 색소, 향료 첨가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공적인 향, 색소가 아닌 천연재료를 수년간 숙성시켜 만든 술이 이강주다. 인공 첨가물을 넣는 경우와는 비교가 안되게 제조원가가 비싸고, 생산 기간도 몇년이 더 걸리는게 이강주다. 재료, 시간, 정성을 아끼지 않은 대표적인 전통주를 말하자면 단연 전주이강주가 가장 먼저 꼽힐 것이다.

전주이강주의 '쌍두마차' 조정형 회장-이철수 사장(왼쪽). 이철수 사장이 생산과 국내 영업을, 조정형 회장이 신제품 개발과 수출을 맡고 있다. /박순욱 기자

-사각 도자기병 개발에도 1년이 걸렸다는 얘기는 무슨 뜻인가?

“55도 이강주 향과 풍미에 어울리는 패키지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였다. 사각 도자기병은 완성하려면, 가마에 세번 구워야 한다. ‘제품에 책임을 지는 동시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도자기병에 내 얼굴을 직접 넣었고, 숫자(넘버링)도 스티커 붙이지 않고 숫자를 새긴 뒤 한번 더 구웠다. 이러다 보니, 세번을 구워야 도자기병이 완성됐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실패과정을 거치다 보니, 일년이 훌쩍 지나갔다.”

-최근 금값이 많이 올랐는데.

“금잔과 금주전자에는 순금이 일부 들어간다. 그런데, 금값이 시나브로 오르지 않았나. 그래서 세트 가격이 다소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올해는 이 가격을 유지했지만, 내년에는 세트 가격이 더 오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술 가격이 오르는게 아니라, 금잔과 금주전자에 들어가는 금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전주이강주 55도는 5년 숙성시켜 완성하는 술뿐 아니라, 패키지(술병) 개발에도 여간 정성을 기울인 게 아니다. 달병 세트와 금주전자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금잔에는 전주이강주 글자를 음각으로 새겨, 이강주 55도 술을 다 마신 뒤에 장식용으로도 요긴하게 쓰도록 배려했다. 금주전자 세트에 있는 사각 도자기병에는 조 명인의 얼굴사진이 조그맣게 새겨져 있다. 그만큼 이 술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표시다. 조 명인은 “55도 이강주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까지 말했다. 사실, 국내 전통주 중에 55도같은 고도수의 술은 드물다. 도수를 높이는 것은 2차, 3차 증류하면 어렵지 않은데, 알코올 향만 강하면 음용성이 떨어질 우려가 높은 게 고도수의 술이다. 하지만, 전주이강주 55도는 배의 감칠맛, 생강의 알싸한 맛 등이 어우러져 55도의 높은 알코올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중국의 고급 백주들이 파인애플 같은 향 덕분에 높은 도수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나, 최고급 위스키가 진한 오크향으로 높은 도수가 가려지는 것과도 유사하다. 귀한 술이라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이강주 55도 역시 얼음을 타서 알코올 도수를 천천히 낮추어 가면서 마시는 것도 향을 즐기는데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 행사에서 독일 에이전트 협의를 한 전주이강주 조정형 명인(왼쪽 두번째). 왼쪽 첫번째는 조 명인의 딸 조성연씨, 세번째는 독일 소주할래 허영삼 대표, 그다음은 전주이강주 이철수 사장. /박순욱 기자

조정형 명인은 내년부터는 이강주 55도를 해외에도 본격 내놓을 작정이다. 이미 레드오션인 국내 전통주 시장에서 피튀기는 경쟁을 해서 국내 매출을 더 올리기 보다는 우리술 세계화에 앞장서겠다는 생각이다. “10여년전부터 해외시장을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하지만, 앞으로도 해외에서 승부를 걸 요량이야. 유럽에서 10억 매출은 올려야 한다고 봐. 수출 전용 공장도 곧 만들거고. 전통주 수출은 전주이강주가 이끌 거라고 생각해. 80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이런 자부심으로 아직도 현역에서 술을 만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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