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넌 영상 보니? 난 책을 읽어"… 20대라면 '텍스트힙'

김유림 기자 2024. 8. 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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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편집자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Z세대 사이에서 '텍스트힙' 열풍이 불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를 찾은 시민. /사진=김유림 기자
"사흘이면 4일이지 왜 3일이죠?"
"우천시 ○○로 장소 변경된다는데 우천시가 어디에 있는 도시인가요?"

한 어린이집 교사가 쓴 글 때문에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를 금합니다'에서의 '금'은 '금지'의 뜻이지만 '가장 좋다'는 뜻으로 알거나 '어이가 없다'는 표현을 '어의가 없다'로 쓰는 경우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이 MZ세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함축적인 의미의 약자나 은어 등을 주로 사용하는 MZ세대에게서 유독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경각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한 걸그룹 멤버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기실에서 틈틈이 책을 읽고 필사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출국할 때 찍힌 사진에서 '공항패션'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이 바로 '공항 책'.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한 손에 책 하나 들었을 뿐인데 힙함이 넘쳐흐르는 모습에 Z세대는 열광했다.

이를 계기로 Z세대 사이에서 독서문화가 '텍스트힙' 트렌드로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 MZ세대가 영상 콘텐츠만 소비하고 책을 멀리해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고리타분한 취미이자 비주류로 여겨졌던 독서 문화가 자신을 멋있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떠올랐다.


'필사' '독립서점' '인스타매거진'… '텍스트힙' 열풍


사진은 '인스타매거진'과 '필사노트'를 해시태그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게시물.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평일 점심 시간 영풍문고를 찾은 강모씨(28·경기 고양시)는 지난달부터 김승희의 시선집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를 필사하고 있다. 출퇴근길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 쇼츠 등 영상 콘텐츠는 많이 접하지만 정작 우리말 책을 곱씹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MZ세대의 '문해력 논란'을 보면서 더욱 필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씨는 "요즘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글귀를 적으니 문장력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며 "필사를 통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글을 꼼꼼히 읽는 습관이 길러져서 좋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와 OTT 등 다양한 오락 채널의 등장으로 독서 인구가 감소하면서 서적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 독서가 '힙'한 문화로 부상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거나 전자책을 읽은 뒤 필사 인증샷을 게시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짧은 영상(쇼츠), SNS 등 스마트폰 중심의 영상 문화가 익숙한 Z세대에 부는 '텍스트힙' 열풍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텍스트힙'은 '텍스트'와 '힙하다'(멋지다, 개성있다는 뜻의 신조어)의 합성어다. 젊은 층에서 텍스트가 트렌드로 떠오르며 이 특성을 이용해 SNS에 '인스타 매거진'을 만들기도 한다. 인스타 매거진은 이미지와 영상을 동반해 비주얼을 강조한 글로 제품 홍보나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필사, 도서구매, 전시 인증샷 등 Z세대에게 텍스트힙은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네서점 북티크. /사진=북티크 제공
독립서점(책방)을 방문해 책을 구입하는 인증샷이나 시를 필사하는 인증샷, 전시를 즐기는 모습을 SNS에 게시하거나 음악을 감상한 듯 텍스트를 읽고 듣는 모임인 '낭독회' 등도 하나의 힙한 문화로 정착했다.

지난 6월30일 폐막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주최 서울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 당시 주최측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전날 관람객이 행사장에 입장하는 데만 1~2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 행사를 마치면서 주최측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출협은 도서전이 열린 지난 6월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현장을 찾은 방문객 수가 최소 15만명이라고 밝혔다. 13만명이 방문했던 지난해보다 15.4% 증가해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의 70∼80%가 2030세대라는 점이다. 놀랍게도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인 Z세대가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은 비율)은 43.0%인 반면 20대는 74.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40대(47.9%)와 50대(36.9%)가 젊은세대에게 "책 좀 읽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록하고 공유하고"… 도서전 찾는 Z세대


'텍스트힙' 열풍에 맞춰 출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트렌드다. 사진은 지난 6월26일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인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서울 강남구 코엑스 행사장을 찾은 시민. /사진=뉴시스
도서전을 찾는 Z세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 분석가 최수하 작가는 두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기록의 욕구와 미래에 대한 안정의 욕구가 반영됐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결국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라며 "20대는 진로를 고민하며 자아를 진지하게 발견해가는 시기로 미래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방향성이 맞는지 등 여러 고민을 읽고 쓰기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고 전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아이돌·인플루언서의 영향력과 소셜 미디어 자극을 들 수 있다. 최 작가는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북튜버, 북스타그래머처럼 책을 읽고 추천하는 북 크리에이터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도 많이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작가는 "책을 소비하고 누리는 방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며 "Z세대는 단순히 읽는 행위를 넘어 마음에 드는 텍스트를 기록하고 공유하고 상기함으로써 본인의 취향을 쌓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텍스트힙' 열풍에 맞춰 출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까. 그는 '트렌드'를 꼽았다. 최 작가는 "출판계는 최근 다변화된 유통 채널과 책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독자와의 접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 유통 채널이 오프라인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위주였다면 지금은 독립서점, 팝업스토어, 북카페 등 특색 있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텍스트힙'에 빠진 Z세대와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Z세대에게 친화적인 오프라인 공간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똑같은 책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큐레이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는 "Z세대는 나의 가치관과 취향에 맞는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수많은 책 중에서 본인에게 맞는 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책 읽기가 SNS 과시용?… 취미로 자리잡은 '독서'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예스24에서 '#왓츠인마이책장' 챌린지를 진행한다. 사진은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독서를 하는 모습. /사진=김유림 기자
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는 오는 31일까지 독서 문화 활성화를 위한 '#왓츠인마이책장' 챌린지를 진행한다. 자신의 책장을 소개하는 '#왓츠인마이책장' 챌린지는 '텍스트힙' 트렌드와 더불어 SNS에서 책장 소개 챌린지가 유행하는 흐름에 발맞춰 기획됐다.

예스24 관계자는 "최근 성인 독서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독서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가 SNS 챌린지 등 고유의 방식으로 독서 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책을 어렵게 느끼거나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인 독자들이 책장을 꾸미고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독서의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책 읽기가 자기 과시를 위한 SNS 게시용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혹은 책이 인테리어로 전락하고 소장용 굿즈로만 구매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텍스트힙' 열풍이 지식의 축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텍스트보다 영상이 자연스러운 Z세대가 SNS 과시용이라 할지라도 독서가 주목받는 건 크게 환영할 일이다. 글을 읽고 쓰는 데 흥미를 느낀 Z세대가 책을 적극 구입하고 독서가 하나의 취미로 자리잡기를 기대해본다.

김유림 기자 cocory098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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