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장의 ‘광복절 보이콧’ 인사권 기싸움이 불렀나... 건국절 논란 확산에 해법 ‘깜깜’

이미호 기자 2024. 8. 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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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vs 광복회 ‘인사권 기싸움’
“‘낙성대파’에 ‘듣보잡 관장’... 독립유공자 후손 인사관행 무시”
대통령실 “내 사람 앉히기... 인선 좌우하겠다는 것”

대통령실이 건국절 지정 가능성에 대해 “단 한 번도 검토한 바 없다”는 뚜렷한 메시지를 냈음에도 이종찬 광복회장이 ‘광복절 보이콧’ 뜻을 거두지 않으면서 양측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이 수십년간 독립유공자 후손을 요직에 앉혔던 광복회의 ‘인사 관행과 철학’을 고려하지 않은데 대한 실망감과 서운함이 갈등의 단초가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올해 초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이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되면서 광복회 내에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고, 이번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시각이다. 표면상 인선 과정의 하자 여부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광복회 관련 기관 요직 임명을 놓고 대통령실과 광복회의 ‘인사권 기싸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연합뉴스

대통령실은 김 관장이 ‘결격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데다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불쾌감을 표현하고 있다. 양측이 극적 타협을 보지 않는 이상, 사상 최초로 정부 주관 경축식과 광복회 주관 기념식이 별도로 열릴 판국이다.

◆독립기념관장 인선과정... 어떻게 뽑길래?

14일 독립기념관법(제7조 2항)에 따르면 관장은 독립기념관에 두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국가보훈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추위 당연직 위원인 이종찬 회장은 자신이 부당하게 임추위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한 집행정지 신청 요지에 따르면, 오영섭 임추위 위원장이 ‘후보자 중 한 명(김진 부회장)이 광복회 인사이기 때문에 광복회장은 관련 규정에 따라 회피해야 한다’며 자신의 참여를 막았는데 실제 이 같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임추위에서 제척된 상황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장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과 한국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김정명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가 탈락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임추위가 독립운동 상징성이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 후보들을 탈락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을 통해 받은 ‘독립기관장 후보자 서류·면접 심사’ 결과지에 따르면, 심사위원이 후보자와 이해관계가 있을 경우에 제척되면서 일부 위원평가점수 항목이 ‘0점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임추위는 이 결과를 10명 후보 각자의 평균점수에 반영하지는 않았다.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은 5명의 후보 가운데 최종 후보 3인에 포함돼 있었다. 이들 3인은 광복회에서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분류하는 사람들이다.

이인영 의원실 제공
이인영 의원실 제공

광복회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임명된 것은 궁극적으로 ‘건국절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식민사관을 옹호하는 소위 낙성대파(派) 사람이 이사로 임명됐고, 이번 관장 인선에서는 내부에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뉴라이트 인사가 앉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인사인 만큼, 결국 건국절 지정을 위한 수순이라고 광복회는 주장한다. 광복회는 독립기념관장 인선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용산에 밀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 회장의 비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14일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조만간 출간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순한 하나의 인사가 아니라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인선 과정의 하자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뉴라이트 비판’을 받고 있는 김 관장에 대해서는 “결격 사유가 없다”는 입장만 밝혔다. 광복회 내부에서 자체 심사를 통해 최종 후보자가 가려졌고, 보훈부 장관이 요청해 문제 없이 임명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고소한) 임추위 위원장도 본인(이 회장)이 직접 추천해서 된 사람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앉히고 싶었다면) 당연직 위원이니 위원들을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인선 과정 하자는 사실상 내부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의 ‘내 사람 앉히기’ 고집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 입장에서도 자칫 ‘자신이 원하는 후보 임명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오해도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며 “광복회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조직인만큼 당연히 요직엔 후손들이 가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했다.

◆광복절 하루 남았는데 ‘난감한’ 용산... 보이콧 자처한 측면도

당초 이 회장은 용산이 건국절 제정은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길 원했다고 한다. 전광삼 시민사회수석이 지난주 이 회장을 직접 찾았을때만 해도 “건국절에 대한 분명한 입장만 표명해달라. 그러면 광복절 행사는 참석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초가 되면서 사실상 정치 이슈로 변질됐고 이 회장이 더 격앙됐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대통령실은 이 회장이 광복절 자체를 보이콧 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고 입장이다. 독립기념관장 인사는 인사대로 비판하더라도, 국가 기념일인 광복절 행사 참석여부와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전날 참모진들에게 “(건국절 논란과)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 회장에게 막판까지 계속 연락하는 등 접점을 찾기 위한 창구는 열어 놓고 ‘물밑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수석은 전날까지도 이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두 동강이 난 광복절 행사가 윤석열 정부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용산이 자처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전에 광복회와 소통이 부족했던데다 ‘(김 관장) 임명 철회’ 주장에 대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대한 반기로 해석하면서 양측간 갈등이 깊어졌다는 의미다. 또 여권 내에서도 김 관장의 적격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광복회는 오는 15일 오전 10시 광복절 기념식을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백범기념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광복회는 “광복절 기념식이 경축식 불참이유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기념식에 정당 및 정치권 인사를 일절 초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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