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삶과 연관된 과학 뉴스"… "더 젊게, 아웃도어까지 확장"
프린트 매체의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다. 오래전 방송의 부상, 비교적 최근 스마트폰의 등장부터 현재 유튜브의 선전까지, 그간 미디어 시장 큰 흐름은 일관되게 ‘프린트’를 위축시키는 방향이었다. 잡지는 이 과정을 겪어온 대표적인 프린트 매체다. 단행본 책에 견줘 독자에게 지속 비용지불을 요구해야 한다는 한계, 신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시의성이 떨어지고 특정 분야만 다룬다는 난점은 인쇄매체, 특히 잡지의 고유 난제였다. 그러니까 여전히 발행되는 잡지는 그럼에도 살아남은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로 과학미디어인 <동아사이언스>, 아웃도어 등산전문지 월간<山>(월간산)의 주요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생존기’를 담는다. 오랜 업력을 지니고 시사 분야와는 거리가 있는 두 매체는 상당 독자를 보유하며 유지되고 새 시도를 이어가는 곳이다. 최근 대형언론에서 한 분야에 집중한 ‘버티컬 매체’가 적극 시도되고 유료 콘텐츠가 ‘매거진화’되는 경향에 비춰볼 때 두 잡지의 행보는 여타 매체의 디지털 전환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과학자와 독자, 그리고 과학매체의 ‘연결’... 동아사이언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미디어다.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운 과학을 선물한다”는 미션 아래 국내 최장수 과학교양 월간지 과학동아(1986년 창간)를 낸다. 어린이 과학 및 수학 잡지 어린이과학동아(어과동), 어린이수학동아도 각각 2004년, 2021년부터 격주 발행하고 있다. 데일리뉴스팀은 자체 사이트와 네이버(8월9일 기준 구독자 94만5000여명)를 통해 대중 일반의 삶과 밀접한 과학, 테크, 기후, 환경, 우주 뉴스를 전한다.
과학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 틀리진 않았지만 현재 동아사이언스를 설명하는 덴 충분치 않다. 1997년 동아일보 과학동아 기자로 입사해 과학동아 편집장, 동아사이언스 미디어본부장을 역임하고 2018년부터 동아사이언스를 이끌고 있는 장경애 대표는 7월29일 인터뷰에서 2009년쯤을 분기점으로 언급했다. “아이폰 출시 후 캐시카우인 과학동아와 어과동 정기구독자가 매년 서서히 감소했다. 어과동은 1년에 5000부씩 떨어졌을 정도다. 스마트폰 시대 우리만 줄 수 있는 경험․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전까진 콘텐츠 제작에 집중했다면 이젠 독자와 과학자, 독자와 기자, 독자와 독자를 어떻게 ‘연결’할지 보게 된 게 달라진 점이다.”
당시도 지금도 경영 근간은 종이잡지 정기구독자다. 초등~고등학생까지 타깃 독자가 이어진 세 잡지를 아울러 현재 연간 150만부(총판 포함)를 발행하는데 대부분(약 80%)이 정기구독이다. 종이잡지 매출은 전체에서 7할, 사업이 나머지 3할이며 디지털 매출은 미미한 구조에서 핵심토대가 위협받고 있었다. 특집에 등장한 연구자를 만나는 과학동아 카페, 온라인에서 수학문제를 푸는 폴리매스, 어과동 팬파티 등 ‘연결’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본격 시도하며 변화모색에 나섰다. 2013년엔 독자와 만날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울 한복판 사옥 옥상에 천문대를 설치해 운영, 10년간 약 14만명 방문객을 맞기도 했다.
특히 12년째 운영 중인 시민과학프로젝트 ‘지구사랑탐사대’는 이 잡지가 ‘연결’과 ‘독자참여’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멸종위기 생물종 탐사 등에 시민과학자 참여를 도입한 모델이다. 교육을 통해 탐사데이터(위치, 날씨, 사진, 소리 등) 확보 방법을 배운 대원들이 채집 데이터를 과학자에게 제공하면, 연구자는 이를 기반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2012년 80명이던 탐사대는 지속 대원수를 늘리며 올해엔 가족단위팀 4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온·오프라인 활동을 연계해 온 ‘팝콘플래닛’이란 자체 어린이커뮤니티(‘시민과학콘’)는 내년 별도 플랫폼으로 독립 및 개편도 예정돼 있다.
장 대표는 “과학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봤지만 초기엔 내부 저항도 만만치 않아서 끌고 간 부분도 있다. 현재는 조직이 연결의 중요성을 내재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탐사대장인 교수님께 처음에 10년을 하자고 부탁드렸는데 기업이든 기관이든 한 번하고 끝나는 일이 많아서 웃으셨다. 한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게 어렵고 또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어린이기자단, 과학동아 랩투어처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독자들이 서로를 자극하며 성장시키기 때문에 스스로를 ‘미래 세대의 성장 플랫폼’이라고도 보고 있다. 그냥 잡지로 포지셔닝했으면 지금 같은 성장은 어려웠다. 만들고, 보고, 구매하고, 만드는 데 도움 주는 사람이 연결돼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본 10만 정기구독자를 갖고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지만 디지털이란 큰 흐름 속에 이 같은 시도의 전제조건인 프린트매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 쉽진 않았다. 동아사이언스의 잡지들은 구매자와 소비자가 달라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아왔다. 부모를 공략해야하지만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또 부모에게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해서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어과동에서 봤어’가 돼야” 했다. “부모들도 종이매체 지출의사가 더 높고” “코로나19 때도 구독자가 18% 늘었으며” “1년 구독 후 연장 비율이 50%가 넘는” 어과동의 현재, 쿠팡이나 e북 플랫폼을 통한 성과는 고무적이지만 일부 잡지엔 결단도 필요했다. 15년간 발행해온 수학동아를 올해 6월 휴간한 게 사례다.
장 대표는 “사회 전반에 수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긴 기간 많은 시도를 했는데 시장을 이길 순 없다고 판단했다. 2018년 세계수학자대회를 통해 붐이 일며 손익분기점에 가까웠지만 어느 이상 더 확산되진 못했다. 과학은 교양이고 도움이 된다는 여유가 있지만 수학은 그렇지 않았다.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인데 부모에게 수학은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 거였고, 우리가 입시나 학원과 경쟁할 수는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잡지 토대 위에서 ‘과학’ 매체의 지평, 독자 저변을 넓히는 작업 등 변화가 이어졌다. 독자들의 삶과 관련된 어젠다, ‘네이처 및 스페이스’와 관련한 다양한 지식, 정보를 발굴해 디지털에서 제공하는 데일리뉴스팀의 역할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본격 활동 중인 뉴미디어팀 ‘씨즈더퓨처’(씨즈)는 인스타그램(8월9일 기준 구독자 1만6000여명) 등을 통해 2030 세대를 겨냥한 과학, 테크, 환경 영상을 제공한다. 올해 내부적으로 부서 간 협업을 강조하며 결성된 극한호우 공동취재팀(과학동아팀, 씨즈팀)은 기후위기 관련 보도로 기자상 등을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오프라인에 종속된 사업구조를 디지털로 체질전환하기 위한 토대 마련도 본격적이다. 올해 5월 회사는 모든 잡지와 기사, 만화, 연재물을 e매거진, 전자책 등 온라인에서 구독할 수 있게 한 과학지식 플랫폼 d라이브러리를 오픈했다. 현재 4만건에, 9월까지 2만건 자사 기사를 추가 학습시키는 생성형AI 챗봇 ‘과학동아AiR 베타 서비스’도 최근 론칭하며 오는 10월 어과동 잡지, d라이브러리, 챗봇 서비스를 결합한 올인원 패키지 상품을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2000년 9월 동아일보 출판국 과학동아부가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며 설립된 동아미디어그룹 계열사는 어느덧 임직원만 110여명이고 자산규모가 100억이 넘은 지 오래된 조직으로 성장했다. 내년이면 창립 25주년을 맞는 과학매체이자 과학문화기업의 생존을 위한 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장 대표는 “처음부터 디지털 매출이 크진 않을 것이다. 내년엔 회사 전체매출이 200억은 반드시 넘을 거라 보는데 30%(60억)는 디지털에서 나오는 파이는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우리로서 메인은 책이지만 언제 어떻게 시장이 변할지 모르니 준비를 해놓고 시장을 보며 가겠다는 차원”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지향하는 과학저널리즘은 우리 삶과 관련 있는 것이고 즐거운 과학이란 게 단지 ‘하하호호’ 재미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버티컬 역할이 있어 다 할 순 없지만 과학저널리즘에서도 사람은 빠질 수 없다. 모르던 것을 알고 내 삶과 연결된 것을 찾게 해서 ‘지구는 소중하니까 내가 함부로 하면 안 되겠네’ 하는 와치독과는 다른 방식이 우리의 방법론”이라고 덧붙였다.
‘산’에서 ‘아웃도어’로, ‘50대 이상 남성’에서 ‘젊은 세대’로... 월간산
한국 최초 산악전문지 월간산이 올해 6월 창간 55주년을 맞아 내놓은 기념호에는 ‘3대가 함께 보는 책…가족을 이어주는 월간산’ 기사가 실렸다. 장기 구독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10여명이 함께 용마산과 아차산에 오른, 좀 특별한 독자 산행기다. 나이대만 해도 10대부터 70대까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등산이란 관심사를 공유한다. 10년 구독자 옆에서 55년 장기독자가 걷는, 월간산에 대한 애정도 공통점이다.
특히 정보와 재미가 더해진 기존 산행기에서 나아가 이번 기획은 부모와 자식 세대가 함께 땀 흘리며 쌓인 갈등과 오해를 푸는 계기로서 등산을 조명했다. 조선일보 편집기자로 30년을 지냈고 2020년부터 월간산을 이끌고 있는 이재진 월간산 편집장은 7월19일 본보와 인터뷰에서 “계층과 세대, 정치 성향에 따라 양극화가 극심한데 산은 위, 아래 세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비정치적인 이슈다. 서로 대화 여지도 없는 분위기에서 등산이란 취미가 서로 오해를 푸는 기회가 되는, 세대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면서 “이렇게 보면 월간산은 세대를 잇는 매체일 수 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1969년 창간된 매체는 1980년부터 조선일보 산하가 됐고, 현재 매거진 자회사 조선뉴스프레스에 속해 있다. 국내에서 드문 아웃도어 등산전문지는 오랜 역사와 특수한 분야에 기반해 ‘50대 이상 중년 남성’을 정기독자층으로 보유한다. “60대는 물론 정말 충성도 있는 독자층으론 70대도 많다.” ‘산’을 매개로 뻗을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이야기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 산행기와 산행지 추천, 장비·코스·맛집 소개, 지도, 풍경 사진, 안전 조언 등이 대표적이다. 편집장을 포함한 기자 5명, 디자이너·교열 등 총 8명 인력이 사진업무를 지원하는 C영상미디어 인력과 협업으로 매달 300페이지 안팎 잡지를 내놓는다. 발행부수는 월 1만5000부가량이다.
‘IMF로 사업이 망했을 때도 끊지 않았다’는 부류의 충성도 높은 독자가 경영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다만 종이매체 정기구독이 주요 수익구조인 상황에서 디지털로 주도권이 넘어간 큰 흐름은 이 잡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2019년 매체 특집기사에 따르면 전성기였던 2007년 말 월간산 발행부수는 2만9000부였다. 아웃도어 시장이 매년 성장하고 한국 알피니스트들이 매년 성과를 내며 등산 붐이 일었던 때와 비교하면 부수가 절반으로 준 셈이다. 이 편집장은 “광고주들이 (광고를 넣으려면)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고 발행 페이지도 1.5배는 됐다. 아웃도어 업계의 변화, 해외직구 구매패턴, 종이매체 광고 위축 영향을 받으며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이 흐름 속에 매체는 2020년부터 독자 저변 확대를 꾀한다. 정통 클래식 알피니즘, 즉 전문 산악인 같은 소수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삼은 기조를 벗어나 “산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반인, 특히 젊은 층을 포용”하는 방향이었다. 제호에 ‘&outdoor’(아웃도어)가 붙은 것도 이쯤이다. 젊은 여성을 표지에 등장시키고 연예인을 섭외해 등산 인터뷰를 진행하며 독자층 확대, 이슈화를 시도한다. 이 편집장은 “전문 등반인인 독자들에게선 배신자란 말도 나왔지만 기존 타깃만으론 답이 없었다. 산이 기본이지만 아웃도어적인 액티비티라면 뭐든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콘텐츠도 달라졌다. 기자들이 20~30km씩 직접 산을 타고 매번 쓰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그냥 산행기가 아니라 ○○○ 기자의 산행기가 돼야 한다”거나 “산행 중 뱀을 봤으면 뱀을 찍고 발이 삐었으면 발을 찍는 식으로, 그냥 멋진 사진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사진”을 요구하는 변화다. 정확한 정보는 기본이고 차별화를 위해선 나름의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등산이 뭔가요? MZ가 묻고 아재들 답하다’, ‘월간산 기자, 아웃도어 매장 1일 점원되다’ 기사 등도 예전엔 볼 수 없던 콘텐츠에 가깝다. 2023년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윤성중 월간산 기자의 삽화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오직 인쇄매체였던 잡지가 디지털 대응에 나선 행보도 눈에 띈다. 2020년 4월 양대 포털 뉴스제휴에 성공하며 아웃도어 매거진 중 유일하게 포털(8월9일 기준 네이버 구독자 85만7000여명)에 입점했다. 인스타그램에선 MZ 감성에 맞춰 편집한 산, 장비 정보를 제공한다. ‘콘텐츠에 만족한 편집장 얼굴’을 등장시키고, ‘기자 가방 내용물을 공개’하는 등 스낵 콘텐츠도 다양하다. 독자 소통 핵심 플랫폼으로 삼고 있는 네이버 밴드 페이지 구독자는 4만2000여명에 달해 대형매체를 능가한다. 결국 지난 4~5년 새 월간산의 행보는 기존 충성독자의 이탈을 최소화하되 젊은 세대를 주 독자층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 등산 마니아인 이 편집장은 “충성도 높은 기존 독자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지만 그분들이 영원히 계실 순 없다. 국내 등산인구가 1600만이고 사회 전반 수준이 올랐지만 여전히 아웃도어 액티비티가 충분히 다양하진 않고 이는 저희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라고 했다. 이어 “부족한 인력으로 디지털을 하다 보니 어려움은 있지만 지속 젊은 세대와 같이할 수 있는 걸 찾아보려 한다.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업과 콜라보 등을 통해 사업적인 고민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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