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방위비 축소 ‘환차손’ 쇼크, 한국도 무방비 상태

이재철 기자(humming@mk.co.kr) 2024. 8. 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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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차손 노출 日방위비 설계
F-35 등 첨단무기 구매 위축
韓대응도 日처럼 소극적 태도
외평기금 환헤지, 착시에 불과
일본 정부가 2025년도 예산안 편성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환헤지 실패 책임에 대한 비판과 경고의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22년 12월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의 일환으로 향후 5년간 국방 예산을 이전 수준보다 60% 증가한 43조엔(약 400조원)으로 책정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첨단 F-35 전투기 구매와 같은 고가의 군사 하드웨어에 배정됐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일본이 책정한 방위비로는 당초 목표한 첨단무기 구매력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日방위비 설계···“엔화값 폭락 누구도 예상 못해”
방위비를 둘러싼 구매력 축소 논란이 불거지자 당장 정치권에서 대책을 강구하라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은 최근 방위비에 대해 “엔화 가치가 높았을 때 설정한 계획”이라며 “이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안전보장 대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가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계획으로 알려진 유력 정치인이다.

방위비 책정 당시 일본 정부는 향후 엔화값 하락을 예상하고 첫해인 2023년 예산안에서 달러 당 ‘137엔’을, 이후 2024~2027년 4년분 방위비에서는 최근 5년 평균치인 ‘108엔’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새 엔화값은 160엔을 돌파하는 등 끝모를 추락을 이어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당시 환율 방향성에 대해 “엔화가 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는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급등한 환율로 인해 2024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첨단 F-35A 전투기는 대당 가격이 140억엔으로 2018년에 가정한 116억엔보다 크게 상승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지스함의 경우 배치 계획이 수립된 2020년 2400억엔이었던 획득 비용이 척당 3920억엔으로 늘어나게 된다.

환차손으로 발생할 수 있는 방위비 구매력 축소 문제에 대응해 일본 정부는 수년에 걸쳐 법인세, 소득세, 담뱃세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부족해지는 예산을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전략 컨설팅펌인 카나리그룹의 조너선 그래디 원장은 최근 닛케이 아시아판에 ‘일본은 방위비 위기를 피하기 위해 환리스크를 헤지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도모하는 일본이 환율 변동 위험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평가했다.

그래디 원장은 “미군도 해외 지출 예산에 대한 환 리스크를 헤지하고 있다. 그런데 막대한 예산을 관리하는 일본 방위성이 전 세계 산업 전반에 걸쳐 표준이 되는 재무 관행인 환리스크 헤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이런 취약한 재무 관행으로 인해 일본의 국방 계획은 계속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 환리스크 대응, 日처럼 허술하고 수동적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떤 상황일까.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절박하게 환위험 관리에 나서는 민간 기업과 달리 정부는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환헤지에 소극적이다. 일본도 한국도 이와 같은 소극적 스탠스다.

그러나 환율 급등으로 당초 배정한 예산으로는 정책 목표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국민 후생을 떨어뜨리는 위험성을 야기한다. 이 때문에 정부도 민간기업처럼 환위험 관리에 적극 나서서 국민 후생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뉴질랜드는 1990년부터 환위험 관리 지침을 마련해 적극적 대응에 나선 사례다. 정부도 민간기업처럼 외부 금융기관을 이용해 파생상품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이후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각 부처 외화예산 집행 시 환율 변동 위험 완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외평기금을 활용한 환위험 관리 방식은 해외 무기 구매, 국제기구 납입금 등으로 외화수요가 발생하는 국방부, 외교부 등이 외평기금을 이용해 예산편성 당시 기준환율로 외환을 매입하는 것이다.

전년도에 설정한 예산편성 기준환율과 올해 집행환율이 동일해지는 만큼 원화값 변동에 따른 예산 과부족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지난 5월 기획재정부가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부 예산 중 외화예산은 총 55억5600만달러로 이중 81%가 방위사업청·국방부·외교부 외화예산이다.

편성 당시 기준환율은 달러당 ‘1300원’으로 예산편성 완료 전 3개월 평균환율로 산출했다.

이를 최근 3개월(2024년 6월 14일~8월 13일) 평균 환율인 ‘1381원’으로 집행한다면 당장 달러 당 81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구조다.

올해 편성된 외화예산 55억5600만 달러를 모두 집행하기 위해서는 45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원달러 환율 추이(2023년 11월~현재) <캡처=한국은행 ECOS>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관련 ‘외화예산환전지침’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했는데 개정 사유는 ‘환전 목적 명확화’와 ‘환전 적용대상의 우선순위 명확화’였다.

지침 개정은 원화값 하락에 따른 각 부처 외화예산의 환전 수요가 늘고 있어 외평기금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주요국 금리 인상 등에 따른 원화값 하락으로 외화예산 부처들이 상당한 환차손 리스크에 직면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외평기금에 편성된 외화예산 환전 관련 규모는 5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외평기금을 이용한 환차손 리스크 대응은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해당 부처들은 외평기금을 통해 환차손 리스크를 헤지했다는 명분을 얻지만, 그 실체는 외화예산에서 발생한 부족분이 외평기금으로 단순 이전된 것일뿐 손실을 회피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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