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지의차이나路] 자갈밭에 핀 보랏빛 기적…中닝샤 '와인굴기'
관광과 결합한 상품 출시…중국 내 소비 부진·낮은 인지도는 약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과거의 황무지가 오늘날 금빛 모래가 됐다(昔日干沙滩, 今日金沙滩)'
중국 서북부 닝샤 후이족자치구 성도 인촨에 위치한 란추이 와이너리의 한쪽 벽면에 쓰여 있는 글귀다.
과거 자갈밭, 밀밭이던 이곳에선 조금씩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1984년 허란산 동쪽 기슭에서 재배한 포도로 첫 번째 와인을 생산한 것이 닝샤 와인의 시작이다. 황하와 나란히 있는 허란산 동쪽 기슭은 해발 고도 1100m, 연간 강우량 약 200mm, 일조량은 3000시간 정도로 포도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약 2010년 전후로 중국 국영기업은 물론이고 해외 기업들도 이곳에 본격적으로 와이너리를 조성하면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의 와인 산지로 거듭났다.
현재 허란산 동쪽 기슭에는 약 60만2000무( 1무는 약 666.67제곱미터)의 대규모 면적에 약 260곳의 포도밭이 있는데, 이 중 포도밭과 양조장을 모두 갖춘 크고 작은 와이너리는 130여개로,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중국 전국 와인 생산량의 약 절반 정도인 1억4000만병이다.
◇ 중국의 자부심 된 닝샤 와인, 푸틴·마크롱도 맛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6년 닝샤를 찾아 '닝샤 와인 산업이 가는 방향으로 전진하라'며 힘을 실었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에도 닝샤를 방문하고 "와인 산업은 전망이 밝다"고 했다. 닝샤는 중국 최초의 특색산업 종합 시범구로 지정됐는데, 2035년까지 연간 6억병의 와인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와인 굴기'가 속도를 내면서 중국 와인이 글로벌 무대에 등장하는 횟수도 늘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 최대 국영 식품회사인 중량그룹 산하의 와인 브랜드 창청이다. 창청은 1978년 중국 최초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 회사기도 하다. 베이징 올림픽, 상하이 박람회 등 중국 국가급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등장한 와인 제조사가 바로 이곳이다.
닝샤 인촨에도 창청의 톈푸 와이너리가 있는데, 이곳에선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 능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4억2000만위안이 투입돼 조성된 이곳의 생산 능력은 무려 2만t에 달하고, 7000제곱미터 규모의 지하 와인 저장고를 갖고 있다. 1개의 와인 오크통에선 약 300병의 와인이 나오는데, 이 지하창고에는 3000개가량의 오크통이 있다고 한다.
창청 톈푸 와이너리 관계자는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3556이라는 와인을 들어 보이며 "해당 와인은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에 올라갔다"고 소개했다. 3556은 허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의 고도를 뜻한다.
닝샤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와인 본고장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도 전해졌다. 중국은 지난해 4월 마크롱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닝샤에서 생산된 와인 6병으로 구성된 선물을 주기도 했다.
◇ 개성 있는 와이너리 즐비한 닝샤…관광객에 손짓
닝샤 와인이 주목받으면서 와이너리를 활용한 관광 자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방문한 샤무 와이너리의 경우 포도밭 옆의 넓은 땅에 독채로 된 숙박 시설이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샤무 와이너리의 경영주 장파이는 명문 칭화대를 졸업한 건축가인데, 그의 전공을 살려 와인 저장고를 통풍에 유리한 피라미드식으로 설계했다. 또한 포도를 재배할 때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잡초도 뽑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개성 강한 곳이다.
관광객들은 대자연 속에 위치한 이곳에서 낮에는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밤에는 야외에서 양고기 바비큐와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을 함께 즐기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마치 기차를 타고 와이너리를 둘러보는 체험을 할 수 있는 '허둥 와이너리'도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과거 광산업에 종사했다고 밝힌 궁제 허둥 와이너리 경영자는 "광물자원은 채굴하면 할수록 사라지는 데 반해 포도는 매년 자라는 데에서 매력을 느꼈다"며 "포도 재배 수준을 향상하는 동시에 와인을 중심으로 한 문화 관광을 발전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대규모로 조성된 와이너리에는 이곳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데, 이 열차를 타면 와이너리가 조성되기 전부터 재배됐던 100년 넘는 포도밭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숙박을 원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열차를 객실로 개조한 호텔도 운영 중이다. 와인 저장 창고에는 와이너리 경영자의 개인 소장품 등을 포함해 볼거리도 충분했다.
궁제는 "매년 약 8~10만명이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있다"며 "열차 객실에서 숙박하면 허둥 와인의 가격을 할인도 해줄 수 있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3대에 걸쳐 운영 중인 화하오 와이너리도 눈길을 끈다.
화하오 와이너리의 2대 경영주인 청첸은 "이 와이너리에서는 주로 마르셀란 품종의 와인을 만드는데, 이곳의 와인은 닝샤는 물론 중국에서 가장 좋은 맛으로 만들 것"이라며 "재배 면적이 너무 크면 원재료의 품질과 이후의 효과적 관리를 통제할 수 없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적은 양을 만들더라도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 소량의 와인 수출길을 연 화하오 와이너리도 약 3개월 뒤 와이너리 내에 숙박 시설을 갖춘 시설을 오픈해 관광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 "모두가 우리 와인을 마실 수 있게"…中와인 직면한 도전도
닝샤의 와인 역사는 약 4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중국 내 인지도나 생산량 측면에서는 '와인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닝샤=와인'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면서 매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배경에는 '와이너리가 있는 곳에 도로가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부의 든든한 지원과 국내외 기업이 와인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덕분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이른바 와인 선진국의 우수한 인력을 대거 흡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중국 내 와인 소비가 지지부진한 것은 와인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있어 우려되는 대목이다. 최근 전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와인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2022년 기준 중국 와인 시장 소비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경제 성장 둔화와 사치를 금지하는 정부의 기조 등이 도입됨에 따라 고급 와인 수요가 둔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호주 등 주요 와인 산지의 와인 수입 관세가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면서 중국 와인의 설 자리도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는 프랑스, 호주, 이탈리아 등 서구권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약점이다. 실제 닝샤에서 만난 와이너리 경영주는 와이너리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인지도가 낮은 점을 꼽기도 했다.
닝샤 대표 와인 브랜드로 부상한 허란훙 관계자는 "우리의 목표는 더 많은 일반인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전했다.
ejj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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