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감지했는데 일부러 꺼버린 스프링클러, '작동률 18%'의 비밀 드러났다? [스프]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2024. 8. 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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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력] 전기차 충전량 제한보다 안전불감증 '경종'이 먼저
판매 수요 정체기, '캐즘'을 겪고 있는 전기차 보급에 또 하나 심각한 악재가 나타났습니다. 화재 위험입니다. 지난 8월 1일 발생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때아닌 공포증으로 전기차를 모는 운전자들은 지하 주차장에서 이웃 눈치를 걱정할 정도입니다.

화재 발생 8일 만에 당시 피해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던 장본인인 스프링클러 미작동 원인이 드러났죠. 인천소방본부가 밝힌 조사 결과는 누군가 스프링클러 버튼을 꺼버렸다는 겁니다. 두 귀를 의심할 만한 조사 결과입니다.

소방 당국이 조사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지난 1일 새벽 6시 9분 인천 청라동의 해당 아파트 방재실에는 화재 신호가 전달됐지만 야간 근무자가 정지 버튼을 눌렀고 소화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5분 뒤 밸브 정지 버튼을 해제했지만, 스프링클러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버튼이 눌렸던 5분 사이 불이 난 구역의 중계기 선로 고장 탓이었습니다. 소방 당국은 밸브 작동이 멈춘 상황에서 소방 전기 배선 일부가 화재로 훼손돼 버튼 신호 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 했습니다.

정확히 어느 근무자가 밸브 정지 버튼을 누른 건지는 미확인인 상황이지만, 법적 의무에 따라 현재 소방 관리시설은 자동으로 버튼 조작 등 모든 시스템 작동을 기록하는 블랙박스 기능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정지 버튼을 임의로 조작한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주민 반발 탓, 스프링클러 임의 조작...불편한 현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 소방 방재 전문가한테 물어봤습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새벽 시간대 소방시설 오작동으로 경보기가 울릴 때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기 때문에 실제 정상 작동이든 오작동이든 대부분의 경우 자동 경보 장치를 꺼버리는 게 비일비재한 현실"이라고 밝힙니다. 또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물론 거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을 고스란히 드러나는 문제"라고도 지적합니다. 지하 주차장에 연결된 아파트 세대 수가 적게는 수십에서 수백, 많게는 1천 세대가 넘을 만큼 수많은 주민의 생명이 걸린 안전시설인 만큼 실제 화재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경보 장치에 손을 댄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청라 화재 여파 때문에 지난 10여 일간 다양한 대책들이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전기차 충전량 제어를 위해 완속 충전기에 통신 모뎀을 장착하는 방안,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배터리 실명제, 배터리 안전성을 높일 때 전기차 보조금 증액 등 인센티브 같은 것들입니다. 서울시와 충청남도는 지하 주차장 출입 전기차에 대해 배터리 충전을 90% 이하로 제한하도록 권고하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대책에 앞서 화재 대응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소방 경보시설 운영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건, 위에서 언급한 각종 대책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책들을 놓고 고심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답답함이 듭니다.

천장 스프링클러만으로도 전기차 화재 확산 막는다

전기차 화재 대응에 스프링클러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요? 지난 5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최한 지하 주차장 전기 화재 대응 연구보고회 연구 결과를 보시죠. LH로부터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 구역 소방시설 개발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은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와 더불어 바닥에서 분사되는 하부 주수 장치 추가 설치 등의 상황을 가정해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설비만 안정적으로 작동할 경우 인접 차량으로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최초 화재 발생을 예방하진 못하더라도 불이 번지는 걸 막는 데는 역할이 충분하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화재가 옆 차량으로 확산하는 걸 막는 데에는 상부 스프링클러만 있었을 때와 하부 소화시스템을 추가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테스트에서 드러난 점은 천장 스프링클러만으로도 인접 차량으로 화재가 커지는 걸 막았다는 겁니다.

사진으로만 남은 스프링클러 작동률 18%의 비밀

이렇게 중요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지난 2016년에 한국 방재학회지에 게재된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 설비의 신뢰성에 관한 연구'에는 지난 2010년부터 6년간 경기도 내 지하 주차장 발생 화재를 분석한 결과가 있습니다. 해당 기간 모두 63건의 화재가 발생해 1명 사망, 6명 부상했고 재산 피해는 23억 9천만 원이었습니다. 건물 유형별로는 아파트 52건, 복합건축물 4건, 근린생활시설 3건, 업무시설 3건 등입니다.
2013년 8월 20일 경기 의왕 포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원인미상 화재 발생했으나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차량 155대 전소 및 그을림으로 2억 5천만 원 재산피해 발생. 출처 : 지하주차장 스프링클러 설비의 신뢰성에 관한 연구(황창환·최윤종·김학중)
연구팀은 화재 발생 시 화재 조사관이 조사프로그램에 입력한 내용을 바탕으로 분석했습니다. 63건 가운데 화재나 건물 규모상 자동 소화설비가 불필요했던 화재 30건을 제외한 나머지 33건이 자동 소화설비가 필요한 화재였습니다. 이 33건 가운데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가 27건으로 82%를 기록했고, 정상 작동한 경우는 6건으로 작동률이 18%에 그쳤습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작동 여부만 조사했을 뿐, 개별 사례에서 왜 스프링클러가 미작동했는지는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해당 논문은 "설치상의 문제와 유지 관리상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다"고 사진 하나를 제시했습니다. 문제의 사진은 자동 소방시설의 스프링클러 스위치인데, 둘 다 스위치를 꺼놓은 모습입니다. 이름만 자동 소방시설이었을 뿐 건물 관리팀의 관행상 꺼놓은 곳이 대부분인데 논문 연구팀으로선 조사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논문 주제를 넘어선다고 보고, 이 같은 사진으로 대체한 듯합니다.
해당 논문에 실린 스프링클러 콘솔. 양쪽 다 off 상태라고 논문은 밝히고 있다.
'작동률 18%'라면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죠. 앞서 공 교수가 지적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다시 한번 드러나는 숫자입니다. 어떤 이유로 작동하지 않은 건지 실태 파악이 시급합니다. 전기차 화재의 새로운 대책을 찾아내는 것도 좋지만, 화재 확산 방지의 가장 직접적인 수단인 스프링클러가 왜 작동하지 않는 건지 이에 대한 조사 연구가 출발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장세만 환경전문기자 j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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