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수뇌부, 우크라군 침공 움직임 정보 보고 묵살"-NYT
사복 차림으로 집결한 뒤 서방 지원 무기로 무장
작전 마지막까지 극비, 직전에 지휘관들에 설명
허술한 방어선 파죽지세로 돌파하며 속속 점령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기만과 도박: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
미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침공 과정을 재구성한 기사의 제목이다.
NYT는 우크라이나의 공격 작전에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면서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일부 러시아군에 포착됐으나 러시아군 지휘부가 이를 무시하면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전했다.
NYT는 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이 불리하던 전황을 뒤집고 러시아를 수세로 몰아가기 위한 도박이지만 우크라이나에게도 부담이 큰 작전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NYT가 전한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침공 작전 전말이다.
러시아의 스베르드리코보 마을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다른 병사의 어깨에 올라 마을 자치위원회 건물에 걸린 러시아 국기의 깃대를 부러트려 땅에 내던졌다.
서쪽으로 8km 떨어진 다리이노 마을에서도 군인들이 러시아국기를 집어던지며 힘자랑을 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한발 한발 진격하는 지난 6일 우크라이나군이 전황을 뒤집기 위해 과감한 비밀 군사작전을 벌였다.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은 미국 등 긴밀한 동맹국들조차 놀라게 했고 서방 지원 무기들을 러시아 영토에서 최대로 활용하며 서방의 제한한 지원 조건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러시아에게는 예프게니 프리고진의 용병부대가 지난해 6월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던 사건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강조하는 강력한 안보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시민 보호라는 기본적 임무조차 실패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러시아 국민들은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푸틴의 공약이 깨져 버린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40km 국경을 따라 러시아 영토 10km 안까지 진격해 있다.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포로가 됐고 쿠르스크 지역 러시아 주지사는 우크라이나군이 28개 마을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13만2000 명 이상의 주민이 인근 지역에서 소개됐다고 러시아 당국자들이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자기 땅에 전쟁을 불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 작전은 말 그대로 도박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를 점령하면 푸틴을 당황하게 만들고 휴전협상에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추가로 진격한다면 오히려 역풍이 거셀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작전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만류할 것을 우려하고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이 지원한 장비와 무기 탄약을 사용했으나 자위를 위한 러시아 영토 공격에는 사용해도 좋다는 미국이 정한 한도를 넘지 않았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여전히 작전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장기간 점령할 계획인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일하게 지난 11일 러시아를 침공했음을 공식 인정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움직임을 지켜본 군사 전문가들도 이번 작전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한다. 핀란드의 전황 분석 단체 블랙 버드 그룹의 파시 파로이넨 분석가는 “현대 군사작전에서 비밀 유지와 기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은밀한 병력 집결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여단의 병력 일부가 은밀하게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접경한 수미 지역으로 이동했다. 1년 가까이 차시우 야르 전선 마을을 방어하던 22기계화 여단의 드론 대대가 지난달 중순 국경 근처에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 보우찬스크 인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82공중강습여단과 올 봄 하르키우 지역 최전선에서 전투하던 80 공중강습여단 병력도 이동했다.
일부 러시아 군인들이 눈치를 챘다. 러시아군 고위 장교 출신인 안드레이 쿠룰료프 의원은 우크라이나의 침공이 있기 한 달 전 러시아군 최고 사령부에 “군대가 포착됐으며 공격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TV에서 “최고 사령부가 당황하지 말라, 위에서 더 잘 알고 있다고 지시했다”며 개탄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이동은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오판하기 쉬웠다. 우크라이나군은 여단 병력을 대대로 쪼개 전선 곳곳에 분산 배치하는 일이 많았으며 수미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가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탄약이 부족한 우크라이나군이 침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방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에 한발 한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은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 수미 지역에 여러 여단 산하 부대들을 집결해 새 장비로 무장했다. 군인들은 사복 차림으로 수미의 여러 마을과 도시로 이동했다. 일부 주민들이 병력이 집결하는 것을 알아챘으나 국경 수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생각했다. 러시아를 침공하기 위해 집결한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군인들도 자신들이 어떤 작전에 투입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에 일부 부대에 작전을 지시하면서 “함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난 3일 아르템 중령이 속한 여단 지휘관이 숲 길 옆으로 고위 장교들을 불러 모아 작전을 설명했다.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동료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가 수미 지역을 포격하지 못하도록 밀어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정보와 작전이 실패했음을 드러내 사기를 떨어트려야 한다고 했다.
미션 임파서블
쿠르스크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1000km 전선에 비하면 공격하기 쉬운 곳이다. 참호와 용치 등 대전차 방어선도 없고 지뢰도 거의 가설되지 않았으며 방어진지도 거의 없는 곳이다.
6일 정오 직전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 22 기갑여단의 300명의 병사와 20대 이상의 장갑차, 11대의 탱크가 침공했다고 밝혔다.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군 병력이 추가로 투입돼 국경 검문소를 파괴하고 방어선 2곳을 돌파했다. 지뢰도 거의 없고 대전차 방어벽도 거의 없는 곳을 빠르게 돌파했다.
우크라이나군 보병인 올렉산드르는 러시아군이 도주하기 바빴다고 했다. 한 검문소에서는 8명의 러시아군이 항복했다고 했다.
지난 7일 새벽 미 고위 당국자들에게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이동식 대공무기와 러시아 레이더를 교란하는 전파방해 무기를 갖춘 우크라이나군 정규군 1000명 이상이 전날 러시아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 지원 장갑차도 동원됐다. 군인들은 치열한 전투에 대비한 모습이었다.
미 당국자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직접 작전 의도에 대해 설명을 듣은 것은 8일 오후가 지나서였다.
미 당국자들은 작전이 너무 성공적인데 놀랐으나 우크라이나가 점령지를 사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또 러시아를 침공하느라 우크라이나 내부 전선 지역에서 새로운 허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당하는 동영상도 일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러시아 크레먀노예 마을 외곽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파괴된 우크라이나군 장갑차에서 탄약과 보급품을 약탈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수백 m 떨어진 곳에서 러시아군 병사가 바닥에 쓰러진 우크라이나군 병사 시신에서 우크라이나 국기 휘장을 떼어내는 동영상도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쿠르스크 지역 우크라이나군 부대에 포격을 가하는 장면의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올렸다.
8일 오후 5시 쿠르스크 지역에서 전화를 받은 우크라이나 병사 올렉산드르는 “우리 모두 사기가 충천해 있다. 그러나 앞으로 힘들어질 것임을 안다”고 말했다.
러시아 마을 수드자, 포로즈, 트미트리우코프 등지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러시아군에 거둔 승리를 자랑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러시아 국경 너머 10km 떨어진 수드자 마을의 빠트로츠카 슈퍼체인점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우크라이나 슈퍼체인 ATB가 훨씬 좋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쳤다. “빠트로츠카는 곧 사라지고 ATB가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인근 가즈프롬 가스 설비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동영상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국기를 든 동료 군인들 앞에서 한 병사가 “수드자에서 소식을 전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마을을 통제하고 있다. 마을은 평온하다. 집들 모두 온전하다. 모두에게 평화를”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군 장갑차들이 쿠르스크 벌판을 질주하는 모습의 동영상, 러시아 국경 안쪽 32km 가량 떨어진 릴스크 인근 마을에 파괴된 10여의 러시아군 차량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비추는 동영상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 침공 사흘 만에 러시아 리페츠크 군공항 탄약고를 파괴했다. 미 전쟁연구소(ISW)의 조지 배로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작전이 거둔 성과”라고 평가했다.
무질서한 주민 소개
다음날 부인, 딸과 함께 쿠르스크 지방 수도인 쿠르스크로 갔다가 다음날 돌아와 부모들을 모셔갔다. 드론 소리가 들리는지 살펴가며 차량의 전조등을 끈 채 갓길로 이동했다고 했다.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된다며 도와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쇄도했다지만 충격에 빠진 현지 당국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고 했다.
수드자 주민이라는 이반(34)은 지난 8일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문자로 밝혔다. 그날 오후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수드자를 떠나려던 그의 차가 폭격을 당했다고 했다. 수드자는 주민이 6000명인 마을이다. 그가 일하던 커피숍이 파괴됐다고도 했다. “당국이 주민들을 버렸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12일 쿠르스크 주지사가 100여 명이 부상하고 10여 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6일 이후 촬영된 인공위성 영상에서 수드자와 인근 곤차로프카에서 주택과 아파트 건물, 주유소, 예술학교 본부 건물 등 20여 채가 파괴된 것이 확인됐다.
공격이 확대되면서 쿠르스크시에 피난민들이 가득했다. 쿠르스크는 2차 대전 당시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피난민들이 구호소 앞에 줄을 서 보급품을 받았다.
휴대폰이 자주 끊기고 공습경보가 계속 울려 모두 겁에 질렸다고 얀 푸르체프(38)가 상황을 전했다. 버스 운행이 멈추면서 사람들은 도보로, 또는 차를 얻어 타고 출근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침공으로 러시아인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인가.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별일 아닌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투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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