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 반세기 서울 지하철…1호 기관사 조상호 씨 "세계 1위 자부"

유영규 기자 2024. 8. 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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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는 서울 지하철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스크린도어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조 씨는 "서울 지하철만큼 스크린도어를 잘 설치한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선로에 사람들이 자꾸 떨어지고 직원들도 힘드니 서울시에서 많이 투자했다. 스크린도어가 생기며 그런 사고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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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하철 1호 기관사 조상호 씨

"서울 지하철은 개통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 1위의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시민들께서 이를 알아줬으면 하고, 후배들도 1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뚫린 후 50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장년이 된 서울 지하철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지하철의 역사입니다.

버스 위주 운송 체계로 한계에 봉착했던 서울이 대중교통에서 세계의 대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개통식 날 처음으로 지하철을 운전한 1호 기관사 조상호(84) 씨는 13일 서울 강동구의 한 경로당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간 크게 발전한 지하철 시스템과 달라진 시민의 생활상을 되짚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철도청 기관사였던 그는 박정희 정권이 서울 지하철 건설을 추진하면서 1973년 10월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로 전입했습니다.

전동차는 개통 4개월 전에야 일본에서 부산항으로 넘어오기 때문에 그를 포함한 당시 기관사들은 '실전과 같은 도면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전동차를 직접 몰기 전까지 운전실 기기 도면과 이를 토대로 한 그림을 보고 훈련했다고 합니다.

1호선 건설은 일본 차관으로 추진됐고, 열차는 일본 히타치중공업에서 만들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전동차를 시운전한 날은 1974년 4월 12일이었습니다.

조 씨는 "서울역 승강장으로 전동차를 끌려는데 일본 기술진이 브레이크 핸들을 잡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라며 "일본어를 못하지만 기대어 들은 표현으로 '와타시와 기칸슈데스'(내가 기관사입니다)라고 하고 살며시 뿌리쳤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시운전을 시작한 그는 쏟아지는 언론 카메라 플래시에 깜짝 놀라 열차를 제 위치에 정차하기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조 씨는 "그때 30cm 규정을 못 맞췄다"면서 "이후 서울역에서 종각을 오가기를 몇 회 반복하며 심사를 잘 마쳤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8월 15일 개통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 한 페이지와 맞물립니다.

당초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개통식 불과 한 시간 전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고 대통령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조 씨는 또 "지하철이 처음 생기니 시민들이 신기해하며 전동차나 역사에 낙서하는 일도 잦았고 질서도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낙서도 사라지고 줄 서면 더 편리해지는 걸 시민들이 느끼며 지금처럼 질서도 잡혔다"고 떠올렸습니다.

역사에 공중화장실이 들어서자 인근 상인과 시민들이 몰려들며 위생도 문제가 됐습니다.

조 씨는 "김재명 지하철공사 사장이 '호텔 수준 화장실을 만들자'고 했고 많은 투자를 통해 지금처럼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미국이나 프랑스, 질서는 좋지만 지하철은 오래된 일본과 비교하면 서울 지하철 인프라는 세계 1위 수준으로 깨끗하다"며 "역사는 '만남의 광장' 역할도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료와 후배들이 모두 열심히 일해 이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조상호 씨가 보관 중인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신문과 열차운전 시간표

조 씨는 서울 지하철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스크린도어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이명박 전 시장 시절에 시범사업을 통해 추진했고 오세훈 현 시장이 과거 재임 때 바통을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설치해 '완성'한 안전 설비입니다.

이전까지는 전동차에 뛰어들거나, 승강장에 서 있던 무고한 시민을 밀쳐 숨지게 한 '묻지 마'식 사건이 터지는 등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가 본격 설치된 이후 이런 사고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역사 내 에너지 효율이 높아졌고 승강장 대기질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조 씨는 "서울 지하철만큼 스크린도어를 잘 설치한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선로에 사람들이 자꾸 떨어지고 직원들도 힘드니 서울시에서 많이 투자했다. 스크린도어가 생기며 그런 사고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1977년까지 기관사로 일하다 기관사를 양성하는 승무사무소로 자리를 옮겼고 서울시 도시철도공사 운전처장까지 승진한 '서울 지하철의 산증인'입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처장의 권유로 도시철도공사 신용협동조합 이사장이 됐는데 임직원 선에서 수의계약이 체결되는 등 막상 가보니 '허수아비'였다고 합니다.

일부 직원이 비리 의혹으로 퇴직했고 조 씨도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2000년 12월 말의 일입니다.

그는 "1호 기관사지만 정년퇴직을 11일 남기고 그만두게 됐다. 내 업무가 아닌 걸 하다 보니 마지막에 직장생활을 잘 못했다"고 담담히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조 씨의 자부심과 열정만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는 개통 50년을 기념해 올해 초 자신이 가진 기록과 그간 보고 듣고 겪은 지하철의 발전 과정을 담은 '세계제일 서울지하철 1호 기관사'(도서출판 성은사)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1974년 9개 역으로 시작한 서울 지하철은 2024년이 된 지금 275개 역으로 늘어났습니다.

30원이었던 운임은 1천400원이 됐습니다.

그는 "예전에는 '기관사 실명제'처럼 기관사가 누구인지 승객들이 볼 수 있게 붙여놨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거나 날씨를 전하고, 직장인·학생·공무원을 위하는 안내방송도 많이 했다"며 '서민의 발' 지하철 운행의 흘러간 역사를 들려줬습니다.

그러면서 조 씨는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다"며 후배 기관사들도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일해주기를 당부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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