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만 꽂으면 석유가 솟아나”… 트럼프가 사랑한 이 재벌
석유·가스 시추 확대 주장하는 트럼프 배후
업계와 정치 권력 브로커 역할… “10억 달러도 모금 가능”
시추를 위한 토지 개방, 규제 완화 등 원해
“저기 저 사람이 나에게 석유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문제는 석유·가스 얘기만 하다 보니 너무 지루하다는 거에요. 농담입니다. 나는 해롤드를 사랑합니다.”
지난 5월 텍사스주(州) 휴스턴에서 열린 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사업가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가 “손가락을 땅에 꽂기만 하면 석유가 솟아날 것”이라 극찬한 이 사업가의 이름은 해롤드 햄(79)이다. 1945년 오클라호마주 렉싱턴의 전기·수도도 없는 한 농가에서 1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이 ‘흙수저’는 미국의 주요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콘티넨탈 리소스’ 제국을 일궜다. 워싱턴포스트(WP)는 13일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된 햄이 트럼프와 석유업계 사이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고 그를 조명했다. 포브스는 2년 전 햄 일가의 공개된 재산을 약 207억 달러(약 28조2500억원)로 추정했다.
트럼프의 에너지 공약은 그가 유세 때마다 즐겨 외치는 구호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로 요약된다. 석유·가스 시추가 가능한 토지와 해역 규모를 대폭 늘려 미국산 석유를 더 많이 생산하고, 미국을 에너지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미국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유가를 낮출 수 있고,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트럼프는 보고 있다. 여기에 이해를 같이하는 것이 햄을 비롯한 미국의 석유 재벌들이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있으며 기름을 유출한 석유 회사를 기소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프래킹(fracking·수압파쇄 공법)을 문제 삼았던 해리스가 두려운 업계 오너와 경영진들은 트럼프 캠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줄 대기가 한창이다. “바이든 정부 로비에 수억달러를 썼지만 환경규제는 계속됐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게 트럼프보다 한 살 더 많은 햄이다. 두 사람은 2012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처음 만났는데 트럼프 1기 때 유가 등을 놓고 정기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풍력 에너지에 대한 공통된 혐오가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햄은 이번 공화당 대선 경선에선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지지했다. 햄이 트럼프의 공개 퇴진을 요구한 적도 있다. 하지만 드샌티스·헤일리가 부진하면서 결국 “우리는 트럼프 열차에 다시 타야 한다”며 트럼프 대세론에 올라탔다. 한 트럼프 선거 캠프 인사는 WP에 “햄이 에너지 부문에서 최대한 많은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이전에 한 푼도 받지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최대 한도액 수표를 받았다”고 했다. 오픈시크릿 자료를 보면 석유·가스 업계에선 올해 들어 2300만 달러(약 314억원) 이상을 트럼프 캠프와 그를 지지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에 기부한 상태다.
석유업계 큰 손인 햄은 정치권력과 업계 사이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8년 선거에서 햄의 도움을 받은 케빈 크레이머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를 돕는 로비스트, 정무 담당자들이 있지만 햄은 직접 전화를 돌리며 다리 놓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콘티넨탈 리소스의 한 전직 임원은 “석유 업계에서 10억 달러(약 1조3600억원)를 모금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햄이다” “그가 원한다면 모금할 수 있는 금액은 무한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재산에 비해 소박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고 말수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햄은 트럼프가 재집권 할 경우 자신과 다른 석유회사 경영진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정책에 관한 위시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시추를 위해 더 많은 연방 토지를 개방하고 멸종위기종보호법(ESA)을 완화하며 환경보호청(EPA) 규제를 억제하는 것이 목록의 우선순위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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