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입은 독립운동가 87人… ‘영웅의 미소’ 되찾다 [연중기획-대한민국 ESG 경영 리포트]

권이선 2024. 8. 14.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빙그레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옥중 순국 유관순·안창호·안중근…
AI 활용 ‘죄수복→한복’ 모습으로
2023년에는 ‘세상서 가장 늦은 졸업식’
빙그레 사명, 도산 안창호 정신 담겨
백범 김구의 손녀사위 김호연 회장
해마다 후손 장학사업 등 적극 행보
단재 신채호 후손 신정윤 병장
캠페인 참여 위해서 휴가도 반납
“역사책에서 증조부 이름 보면서
자긍심 키워… 봉사하는 삶 살 것”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까맣게 타들어간 얼굴에 메마른 눈빛. 그리고 가슴팍에 나열된 숫자들. 독립을 부르짖으며 생을 태웠지만 새날의 동살조차 보지 못한 채 차가운 감옥에서 스러진 이들이다. 빛바랜 수형 사진으로만 기억되는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되찾은 지 79년 만에야 수의(囚衣)를 벗었다.

빙그레가 최근 공개한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영상에서다. 옥중 순국한 독립운동가 87명은 세상 하나뿐인 한복인 ‘광복(光服)’을 입고 캄캄한 형무소를 벗어나 빛나는 조국 땅을 밟았다.

일제강점기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87인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79년 만에 수의를 벗었다.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최근 공개된 빙그레와 국가보훈부가 함께한 ‘처음 입는 캠페인’에서 AI로 복원된 유관순 열사(앞줄 오른쪽 다섯번째) 등 독립운동가들은 맞춤 한복인 ‘광복(光服)’을 입고,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휘날리는 태극기 앞에서 조국의 독립을 기념하고 있다. 빙그레 제공
◆79년 만에 죄수복 벗은 독립영웅들

이번 캠페인은 광복의 ‘복’(復)이 옷을 뜻하는 ‘복’(服)과 발음이 같다는 데서 착안했다. 빙그레는 국가보훈부와 손잡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옥중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죄수복을 입은 마지막 모습이 아닌 독립영웅의 모습으로 기억하자는 취지다. 이 중에는 유관순, 안중근, 안창호, 강우규, 신채호 등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들도 포함됐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40년의 짧은 생 동안 17번이나 옥살이를 해야 했던 이원록 지사(이육사)는 자신의 시 ‘청포도’의 구절처럼 쪽빛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복원됐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자 광복을 한 해 앞두고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한 지 80주기인 해이다.

이들은 깊이 밴 옥고의 흔적 대신 기개 있는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대한사람으로 왜인(倭人·일본인) 판사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럽다”며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한 수의 사진을 남긴 조용하 지사는 먹물을 씻고 말쑥하게 한복을 입었다. 대한제국에서 주독·주불 공사관 참사관을 지낸 조 지사는 베이징과 하와이 등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다 밀정의 밀고로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사진 복원에 쓰인 한복은 한국인 디자이너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초청 패션쇼를 선보인 김혜순 명장이 디자인했다. 소목빛(나라를 위한 희생정신), 쪽빛(어려운 환경 속 피어났던 절개), 치자빛(독립을 위한 간절한 희망) 등 한복의 색에 각각의 의미를 담아냈다.

김 명장은 “어른들이 살아계셔서 광복을 맞이했다면 어떤 옷을 입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며 “그분들의 마음을 담아 아주 귀한 옷감으로 최고의 옷을 지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빙그레와 보훈부는 현재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 6명을 대상으로도 한복을 맞춤 제작해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이를 전달하며 뜻을 더했다. 현재 독립 훈장을 서훈 받은 애국지사 중 생존자는 이들뿐이다. 지난 1년간 3명이 서거했다.

복원된 순국 독립운동가 사진은 후손들이 선조들을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봉안당, 묘소 등에 비치될 크기에 맞춘 액자로 제작돼 전달됐다. 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내 독립운동가 사진도 복원된 사진으로 적용됐다. 유튜브에 게재된 이번 캠페인 영상은 이날 오전 합계 조회 수 487만회를 넘어섰다.

빙그레가 독립운동 캠페인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빙그레는 20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캠페인 영상을 시작으로 매년 독립운동가 관련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광복절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이나 정학 등 부당한 징계를 당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학생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을 열었다. 공훈전자사료관에 퇴학·정학 등의 징계 기록이 있는 학생 독립운동가 222명 중 복원 가능한 사진 자료가 있고 후손들이 동의한 94명이 명예졸업식의 대상자로 선정됐다.

“동지여, 보고 있는가. 우리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독립을 했어. 우리가 헛되지 않았음을, 틀리지 않았음을, 이 대성한 대한민국이 이야기해 주고 있네.” 홀로그램으로 복원된 학생 독립운동가 김찬도 선생이 흰색 반팔 와이셔츠 교복과 학생모 차림으로 졸업사를 낭독하자 참석 후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민족 사랑 담긴 ‘빙그레’ 정신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빙그레라는 사명엔 단순히 밝은 미소라는 의미 이상의 애국정신이 담겨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제를 피해 은거하던 평안남도 대보산 송태산장에 ‘빙그레’라는 글귀를 써 붙이고는 전국적으로 미소 운동을 펼쳤다. 일제의 잔악한 침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아이스크림과 우유, 과자를 만드는 식품회사가 이토록 독립운동이라는 사회공헌활동에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다. 김 회장의 부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故) 안미생 지사를 큰어머니로 뒀다.

김 회장은 남다른 집안 내력으로 1993년 사재 112억원을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독립유공자 지원사업에 힘써 왔고,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보훈처(현 보훈부)로부터 보훈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 회장의 노력과 관심은 빙그레의 독립운동 기념 및 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사업으로 이어졌다. 빙그레가 출연한 빙그레공익재단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2018년부터 보훈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사업을 매년 시행해 오고 있다. 2020년까지 13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1억8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2025년까지 225명의 장학생에게 3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올해도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장학생 45명에게 장학금 총 6000만원을 전달했다.

빙그레는 또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을 역임한 김구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경찰청과 협력하여 관련 사업도 이어오고 있다. 빙그레공익재단은 장학사업 외에도 20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세미나를 경찰청과 공동으로 개최한 바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분야별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빙그레는 앞으로도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캠페인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재 신채호 후손 신정윤 병장 “나라가 헌신한 이들 잊지않고 기억… 선물 받는 기분”

흑백 사진 속 단재 신채호 선생은 수의(囚衣)를 입고도 굳센 눈빛을 잃지 않았다. 단재가 1936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8년 복역 중 순국하면서 이 사진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하지만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빙그레가 국가보훈부와 진행한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에서 단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수의 대신 쪽빛 두루마기를 걸치고 형무소 밖으로 나왔다.

“역사는 시간의 물결과 함께 흐릅니다. 누군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은 물결에 떠내려가는 모래들을 잡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우리 선조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한복을 입은 증조할아버지 사진을 받아든 신정윤(22·사진) 병장은 13일 세계일보와 서면으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육군에서 복무 중인 신 병장은 단재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에 할머니 이덕남 여사와 함께 참석해 왔다. 특히 이 여사가 시부인 단재를 비롯한 무국적 독립운동가들의 국적 회복 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어릴 적부터 지켜봐 왔다. 단재는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일제가 만든 호적 제도에 따른 호적부 등재를 거부한 탓에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2008년에야 국적을 회복했다.

이번 빙그레 캠페인에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대신해 신 병장이 후손 대표로 참여했다. 캠페인을 위해 휴가까지 반납했다. 신 병장은 “휴가를 나가 며칠을 캠페인 준비로 정말 바쁘게 보냈다”며 “증조할아버지와 관련된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라가 헌신한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되새길 수 있었다.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 계속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이번 캠페인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며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으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돌아가셔서 이 순간을 보지 못하시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고 덧붙였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실은 신 병장의 뿌리가 된 자긍심이다. 신 병장은 “역사책 한켠에서 증조할아버지 이름을 보면서 남몰래 자긍심을 키우곤 했다”고 말했다. 신 병장은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과 헌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독립운동은 1948년의 제헌 헌법으로부터 76년간 격동의 역사를 거치며 9차례의 개헌 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대한민국의 연원”이라며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인정받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길을 걸었고, 걸어가야 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달 전역을 앞둔 신 병장은 “증조할아버지께서 하신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