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박재홍 "마침내 라흐마니노프·스크랴빈…연주자 사명감"[문화人터뷰]

전문 연주자로서 첫 앨범 발매
25일부터 통영·대구·서울 등 전국 투어 독주회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연주자의 의무는 작곡가가 남긴 유산 중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갈고 닦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과 스크랴빈 24개의 전주곡 Op.11을 담은 독집 앨범을 13일 발매했다. 전문 연주자로 선보이는 데뷔 앨범이다.

박재홍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은 7~8살 때부터 깊이 매료됐던 작품이었다"고 했다. "거대한 음악적 건축물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기다란 선 같은 대단히 어려운 곡"이라면서 "마침내 이젠 해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전주곡 한 곡을 3시간 넘게 200번 이상 연주하기도 하며 어렵게 탄생한 이번 앨범은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두 작곡가를 모두 사랑하지만 너무 유명한 작품들만 관심을 받는 게 서운해서 택한" 이유도 있다.

러시아 출신의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스크랴빈(1872~1915)은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로, 같은 시대를 산 라이벌이지만 상반된 음악을 보여준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이 거대한 건축물 같은 길고 무거운 곡이라면 스크랴빈 전주곡은 각 작품이 짧지만 유기체처럼 이어진다.

앨범에 담은 곡들이 다른 연주자들이 즐겨 다루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공식 데뷔 앨범이라기엔 다소 이례적인 선택이다. 박재홍은 '연주자로서의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낯익은 곡들은 아니지만 다른 곡들에 견줄 만큼, 또는 그 이상의 명곡이어서 부담감도 컸다"는 그는 "제가 이 곡을 잘못 해석하고 못 치면 작품이 별로라고 느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미루다 참을 수 없어서 연주하게 됐어요. 라흐마니노프 1번을 먼저 정하고 어떤 곡을 조합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다가 대비되는 곡으로 스크랴빈을 떠올렸죠."

박재홍은 187㎝의 큰 키와 12도(도에서 다음 옥타브 솔)를 짚는 큰 손을 가졌다. 라흐마니노프가 198㎝ 장신에 손이 컸다고 한다.

그는 "키와 손이 큰 점은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부분이지만 손이 크다고 해서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면서 "테크닉적인 연습보다는 악보만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리는 등 큰 구조의 곡을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국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로 2021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4개의 특별상을 휩쓸어 화제가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한 그는 올 가을부터 독일 바렌보임사이트 아카데미에서 안드라스 쉬프를 사사할 예정이다.

박재홍은 "오는 10월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긴다"면서 "쉬프 선생님과 공부하면 독일음악 위주로 하게 될테니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을 선택한 것은) 러시아 음악과 잠깐의 안녕을 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번 앨범 발매 기념으로 전국 투어 독주회를 연다. 오는 25일 통영국제음악당, 9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일 울주문화회관, 21일 대구 수성 아트피아, 26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등에서 공연한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더해 스크랴빈 환상곡 b단조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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