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허찌른 우크라… 러 본토, 2차 대전 이후 처음 점령당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900일이 된 12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 지역 점령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6·25 후반기와 비슷한 장기·소모전이 이어지며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기습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예상 밖 본토 공격에 대응해 공세를 강화할 경우 전쟁이 격화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미국·유럽 및 한국으로 여파가 번질 가능성도 커졌다.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영토를 타국에 빼앗긴 적이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직접 상황 회의를 주재하고 “적(우크라이나)은 분명 합당한 대응을 받고, 우리가 직면한 모든 목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달성될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2일 우크라이나 북동부와 국경을 접한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의 영토 1000㎢를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의 1.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지난 6일 러시아 본토를 기습 공격해 들어간 우크라이나군이 이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군이 40㎞ 전선에 걸쳐 러시아 영토 안 12㎞까지 진입해 마을 28개를 통제 중이다. 지금까지 쿠르스크 주민 12만1000명 이상이 대피했으며 5만9000명이 더 떠나야 한다”면서 영토 점령 사실을 인정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기습은 극소수 최고위층만 작전을 공유했다고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침공해 점령한 영토를 수복하는 데만 군사력을 집중해왔지만, 이번 기습을 통해 러시아 영토에 처음으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고수해 왔던,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므로 러시아 본토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 ‘테러리스트’가 있는 곳, 그들이 공격을 시작하는 곳에서 그들을 파괴해야 공평하다”며 러시아 영토 공격을 정당화했다.
젤렌스키는 아울러 서방국가들이 지급한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에 위치한 공군 비행장, 물류 창고 등 핵심 시설을 직접 타격하게 해달라고 설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젤렌스키가 ‘푸틴 정권을 끝낼 수 있도록 영국 무기 사용을 허락해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국·영국 등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영토와 가까운 러시아 접경 지역에 한해 사용하도록 최근 허락했다. 하지만 확전을 우려해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를 겨냥한 원거리 타격은 아직 금지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세계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북한·벨라루스 등 권위주의 진영에 우크라이나·미국·유럽·한국·일본 등 자유 진영으로 양분돼 대립해 왔다. 하지만 그해 말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걸쳐 약 1000㎞의 전선이 형성된 후 전세(戰勢)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미 정치권 등에선 막대한 예산 투입에 대한 희의론도 대두했다.
오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당선될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로 끝내겠다”며, 러시아에 이미 점령된 우크라이나 영토를 넘겨주는 대신 러시아의 추가 침공을 중단시키는 휴전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을 장기·소모전으로 끌고 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의 피로감을 유도하고 연대(連帶)를 와해하려는 전략을 써 왔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기습은 러시아의 이러한 전략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르스크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95㎞ 떨어진 러시아 남서부 도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독일군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영토인 하르키우와 수미 등을 통해 쿠르스크로 진격했으나, 소련군 전차의 맹렬한 포격에 저지당했다. 쿠르스크 전투로 독일군은 전력에 심각한 손실을 입었고, 이는 독일의 2차 대전 패배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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