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후남이’들을 위한 올림픽
우리 집안의 암묵적 가훈은 ‘아들 낳을 때까지’였다. 그렇게 엄마는 7년간 다섯 자녀를 바쁘게 낳으며 마지막에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 그마저 아들이 아니었다면 여섯째 일곱째도 낳았을 거다. 넷째까지 딸이면 남동생 데려오라는 뜻으로 딸 이름을 인남이나 후남이로 지었을 법도 한데, 우리 집 딸들은 다행히 그런 이름을 얻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온 잉여 딸들이 적성에 맞춰 진학하거나 소질을 개발하기는 힘들었다. 진학할 때는 여자상업고등학교, 대학에 가더라도 가정학과·간호학과·교대 등이 부모님이 권하는, 당시 여성에게 가장 바람직한 진학이었다. 남동생들 뒷바라지 하려면 딸들은 생업 전선에 하루빨리 나서야 했을 것이다.
언젠가 스포츠댄스 학원에서 80대 할머니가 연습에 열중해 있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젊을 때는 여자가 이런 걸 배우면 큰일나는 줄 알았지. 그때 배웠더라면 한가닥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춤에 소질이 있는 줄 몰랐다가 예순 넘어서 배운 춤에 엄청난 열정과 재능이 느껴졌다고 한다.
구청이나 백화점 문화센터에는 뒤늦게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찾아 등록한 중노년 여성이 많다. 경제적 여유와 시간이 생기자 젊어서 못 해본 분야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거기서 만나본 한 중년 여성은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너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는 말씀을 남겨, 쉰 넘어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젊어선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평생 밥하다가 나이 들었는데 좀 더 일찍 배웠다면 어쩌면 화가로 살았을 수도 있을 거라며 요즘 들어 살아있는 걸 느낀다고 했다. 우리집 고모는 어린 시절 배우지 못한 한으로 중년이 돼서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요즘은 스포츠댄스와 그림을 배우고 있다는데 그림 실력이 상당했다.
그 시대의 ‘후남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가족과 세상이 요구하는 딸과 여성의 모습에 맞춰 살아왔다. 문득 사회가 왜 어린 꿈나무들만 키워줘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꿈을 외면하고 살아야 했던 세대를 위해 실버 올림픽, 실버 콩쿠르 같은 것 열어도 되지 않을까. 늦게나마 꿈을 찾은 이들이 반백의 머리로 가슴에 메달을 달고서 당차게 “남편! 보고 있나? 나 이런 여자야!”라고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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