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窓] 막걸리 등급을 허하라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4. 8. 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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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막걸리들이 진열돼 있다./뉴스1

정부가 내놓은 주세법 개정안을 놓고 전통주업계에서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핵심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내용. 첨가물로 인정받지 못했던 향료와 색소를 제조 원료로 인정해 주세 부담을 줄이고, 신제품 개발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그동안은 향료나 색소가 들어가면 막걸리라 부르거나 라벨에 표기할 수 없었고, ‘기타주류’로 분류돼 일반 막걸리보다 8~10배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개정안을 환영하는 막걸리 제조사들은 “높은 세율과 막걸리 표기 불가 때문에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이 제약받아 왔다”고 말한다. 해외 수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수출되는 막걸리 절반 이상이 향과 색소를 첨가한 기타주류 막걸리. 지금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막걸리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된다면 해외 수출이 날개를 달 거란 주장이다.

주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막걸리 업체들은 “향료와 색소 첨가가 막걸리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해칠 뿐 아니라, 과일 등 지역 농산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특산주 제조면허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면 향과 색이 훨씬 잘 우러나고 제조 원가도 크게 낮출 수 있는데, 누가 굳이 값비싼 지역 농산물을 힘들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가 세계에 알리고픈 한국의 막걸리가 과연 인공적인 향과 색소를 넣은 막걸리냐”고 묻는다. 막걸리가 쌀과 누룩, 물로만 만드는 술이라고 알았던 해외 소비자들이 인공 첨가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과 배신감은 막걸리는 물론 한국 전통주 수출 전반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주세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미 아스파탐·아세설판칼륨 등 인공 감미료가 첨가되고 있는데, 다른 인공 첨가물만 배제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이참에 전통주 등급과 구분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한다. 일본에서는 청주(사케)에 알코올·당류·유기산·아미노산 등 첨가물을 넣으면 ‘합성청주’라고 라벨에 표기한다. 소주(쇼추)의 경우 자국 농산물을 원재료로 발효·증류하면 ‘본격소주’, 주정을 섞은 소주는 ‘혼화소주(混和焼酎)’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일본 전통주’라는 의미의 ‘니혼슈(日本酒)’라는 항목을 신설했는데, 일본산 쌀을 사용해 일본 내에서 양조한 술만을 니혼슈로 인정하고 보호한다.

우리도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를 명확한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충족하는 동시에 전통주 고급화와 수출 촉진에 도움이 될 듯하다. 아스파탐·향료·색소를 사용해 맛있고 저렴하게 제조한 대중적인 막걸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도, 전통 재료와 방식을 지켜서 빚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고급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도 있다. 세상은 넓고 소비자 요구와 수요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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