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열기구 성화… 인류는 사실 프랑스 덕에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4. 8. 1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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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진경

영국 과학박물관은 최근 파리 올림픽을 언급하며 프랑스에서 과학이 어떻게 권력으로 발돋움했는지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열기구를 이번 특별 전시회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인류가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된 것은 1783년 프랑스에서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독립 승인을 마무리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 중이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광경을 보고 새 시대가 열렸다고 감격했다. 프랑스 과학의 승리였으며, 과학이 가진 힘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대개 예술과 낭만이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파리 밤하늘을 밝힌 열기구는 프랑스의 과학 역사도 보여주고 있다.

루이 14세는 권력을 베르사유로 옮겼다. 귀족들이 나눠 가진 권력을 이곳에 모으려면 과학이 필요했다. 런던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는 과학자들의 자치 기구였지만, 루이 14세는 국가 주도로 과학아카데미를 만들었다. 귀족들도 나름대로 과학을 후원하기에 차별화된 과학을 원했다. 대표적인 시설이 베르사유의 거대한 운하와 하늘 높이 치솟는 분수다. 162m 높이의 언덕에 하루 3200t의 물을 퍼 올려 그 낙차로 1만4000여개에 달하는 분수들을 가동했다. 한때 과학과 예술을 주도했던 메디치 가문은 10m 높이 이상 물을 보내지 못해 갈릴레오와 토리첼리에게 맡겼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루이 14세의 과학은 일개 도시나 가문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강력한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과학이었고, 그렇게 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

그래픽=양진경

1783년 혁명이 다가오던 프랑스에 인류의 첫 비행을 두고 치열한 과학 경쟁이 시작된다. 몽골피에(Montgolfier) 형제는 공기를 데워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를 베르사유에서 시연한다. 하지만 계속 가열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기에 자크 샤를(Jacques Charles)은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로 맞붙었다. 마침내 그해 11월 21일 몽골피에 형제가 먼저 유인 열기구 비행에 성공한다. 세계 최초의 유인 비행이다. 이에 뒤질세라 샤를 역시 12월 1일 유인 수소 기구를 튈르리에서 성공한다. 이번 파리 올림픽 성화의 최종 종착지가 튈르리 상공에 띄워진 열기구라는 것은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에 성공한 프랑스 과학에 대한 헌사이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왕실 권력의 중심이던 과학아카데미를 폐지했다. 하지만 혁명 지도자들은 과학이 권력임을 곧 깨닫고 과학아카데미를 재개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리만국박람회의 랜드마크는 에펠탑이었다. 귀스타브 에펠은 인체 해부학을 이용해 당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철골 구조물을 완성했다. 그리고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프랑스를 다시 세운 것은 과학임을 밝히기 위해 에펠탑에 72명의 프랑스 수학자,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이름을 금빛으로 새겼다. 수학자로는 라그랑주와 코시, 과학자로는 라부아지에와 라플라스, 엔지니어로는 카르노와 코리올리 등 모두가 교과서에 등장하는 쟁쟁한 이름들이다. 에펠탑은 프랑스 과학의 상징이다.

1901년 10월 19일 비행선 하나가 에펠탑 주위를 돌자 파리 시민들이 환호했다. 브라질 출신의 야심만만한 28세의 알베르토 산토스-뒤몽(Santos-Dumont)이었다. 사람들은 과연 비행선이 교통수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열기구와 수소기구가 탄생한 지 120년이나 지났지만, 바람을 이기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프로펠러를 장착한 비행 장치들이 등장하며 가능성이 보였다. 이에 프랑스 항공 클럽은 파리 외곽에서 에펠탑을 30분 이내에 왕복하는 비행선에 10만프랑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걸었다. 산토스-뒤몽의 도전이 시작됐고, 여러 번 실패 끝에 이날 마침내 에펠탑 왕복에 성공한 것이다. 소요 시간은 주어진 30분에서 40초가 지났지만, 상금은 수여되었고, 그는 상금을 모두 기부했다.

이 시기를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으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 부른다. 과학은 무한히 발전할 것 같았고, 누구도 인류의 진보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먹구름이 다가왔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독일 나치즘과 소련의 이념 대결이 벌어진다. 과도한 민족주의와 진영 논리로 기술은 파괴 수단으로 변질됐다. 과학 정신의 회복이 절실했다. 파리전력회사는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에게 파리만국박람회에 설치할 작품을 위촉한다. 이에 호응한 예술가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에디슨까지 100여 명의 전 세계 과학자를 무려 높이 10m 너비 60m에 이르는 거대한 유화에 담았다. 이 작품이 ‘전기 요정(La Fée Électricité)’이다. 인류를 야만에서 벗어나게 한 과학의 본질을 돌아보자는 호소였다.

이번 파리 올림픽 성화의 최종 종착지가 튈르리의 열기구라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떠오른 이 열기구의 성화는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안개를 만들어 여기에 신재생에너지로 작동하는 LED를 비춰 마치 불꽃과 연기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화석연료가 친환경에너지로 대체되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여러 해 연구 끝에 과학을 예술과 결합한 작품이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화가 라울 뒤피에게 ‘전기 요정’을 위촉했던 바로 그 회사의 후신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오래도록 과학을 권력과 국가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이번 올림픽에 이러한 가치관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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