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4] 구태의연한 금메달 깨물기는 이제 그만
“난 드래곤 금화를 원해요.” “암.”
금빛 주화가 나타났다. 연금술사는 금화를 손가락 관절 위로 굴렸다. 아침 햇살을 받은 드래곤이 번쩍이면서 연금술사의 손가락에 금빛을 드리웠다. 페이트는 금화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금이 따뜻했다. 그는 금화를 입가로 가져가서, 전에 본 대로 깨물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금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잘 몰랐지만, 그래도 바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조지 R R 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 중에서
최소 인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단이 기대 이상의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에 손을 얹은 우리나라 선수의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 뭉클하다. 그런데 시상식 후 금메달 수상자들의 메달 깨물기가 매번 똑같이 연출된다. 금메달을 따면 입에 넣고 깨물어라, 하고 선수들이 엄한 교육이라도 받았을까?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은 메달을 깨물었던 이유에 대해 “기자들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선수들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기자들이 요구한다”고 말한 적 있다. 외국의 한 선수는 기자의 요구에 따라 메달을 깨물었다가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다.
신세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금메달을 입에 넣을 리 없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정직하게 이긴 선수들에게 메달을 깨물어 보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 요구일 뿐, 선수 개개인의 독창적인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메달을 깨무는 장면은 남을 믿지 못하거나 물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는 중세 시대와 비슷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금화가 주요 통화로 사용된다. 등장인물들은 금화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종종 이로 깨물기도 하는데 그런 습관을 이용, 금화에 독을 묻혀 은밀한 살인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메달이 휴대전화와 폐가전제품에서 추출한 금속재료이니 ‘깨물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 파리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는 일주일도 안 돼 새까맣게 변색된 동메달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려 충격을 주었다. 6g의 금으로 도금한 금메달이다.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메달을 입에 넣고 깨물라는 주문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韓 “내각 총사퇴” 요구...尹 “민주당 폭거 막으려 계엄” 거부
- 최상목, 각국 재무장관 등에 긴급 서한…“韓 국가시스템 정상”
- 이재명, 6일 재판 불출석 사유서 제출...“그 날 탄핵 표결 있을 수도”
- 연세대·서강대·고려대 총학 “尹 대통령 비상계엄은 반헌법적 폭거”
- 시민들 “선진국 대열 오른 한국, 순식간에 후진국으로 떨어진 기분”
- “한국 민주주의에 너무 큰 상처” 외신들 비상계엄 후폭풍 우려
- BNK, 4쿼터에 우리은행 2점으로 묶고 69대50 승리
- 中외교부 “한국 내정 관해선 논평 안 해…중국국민 안전보장 희망”
- 서울 시내 곳곳서 尹 대통령 퇴진 집회... 민노총, 용산으로 행진
- 주한 美대사관, 새빨간 경보 띄웠다 “시위현장 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