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33] 너의 목소리가 다르게 들려
쇼츠가 문제다. 1분 미만 동영상 쇼츠는 중독적이다. 한번 보면 빠져나갈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글을 읽지 않고 동영상만 소비하는 세대를 근심했다. 이젠 짧은 동영상만 소비하는 세대를 근심하고 있다. 세상 참 급하게 바뀐다.
다른 세대 근심할 게 아니다. 어제도 쇼츠에 빠져 1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뉴진스로 시작한 알고리즘은 나를 80년대 가요의 세계로 데려갔다. 이정석 ‘여름날의 추억’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1989년 중학교 2학년 시절 그렇게 열심히 부른 노래다.
오랜만에 가사를 음미했다. “짧았던 우리들의 여름은 가고/ 나의 사랑도 가고/ 너의 모습도 파도 속에 사라지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어/ 이젠 추억이 되어/ 나의 여름날은 다시 오지 않으리.” 이걸 지금 따라 부르고 있다면 당신도 내 세대일 것이다.
흥얼거리다 깨달았다. 가사가 주는 느낌이 달라졌다. 그 시절에는 여름에 대한 노래라고만 생각했다. 실은 양양 해변에서 가볍게 만난 남녀가 바캉스 끝나자 칼같이 헤어지는 노래였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라니. 불쌍한 놈. 아마 그건 본명도 아닐 것이다.
커서 들으면 의미가 달라지는 노래가 있다.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도 그렇다. “아~ 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 봐.” 하룻밤 보낸 사람을 찾아 간장게장 골목을 헤매는 여자 이야기다. 이장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어떤가. “오늘 밤 문득 드릴 게 있다”는데 그게 편지는 아닐 것이다.
아는 게 문제다. 너무 알면 오히려 상상력은 협소해진다. 경험서 우러난 구체적 정황이 그려지다 보니 로맨스가 차지할 자리가 없다. 성인이 된다는 건 ‘성인 가요’의 의미를 마침내 이해한다는 뜻인가. 끝으로, 얼마 전 작고한 현철 선생님 명복을 빈다. 부모님 앞에서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를 목 놓아 부르던 순결한 추억은 선생님 없이 완성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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