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용허가제 20년… 외국인 인력 정책 대변신 필요하다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1차 전지 제조업체에서 안타까운 화재 사고가 있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였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 안전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위급 시 실효성 있는 대처 방안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이 된다.
그간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산업 안전 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용허가제 E-9 근로자의 경우 16국 언어로 대략 1600종의 안전·보건 교육 자료를 제작해 보급해왔다. 입국 전과 직후, 사업장 배치 후에도 주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도 법령과 규정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때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산업 안전과 근로 기준의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장과 전문가 의견을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 전지 제조업체 화재를 계기로 발족한 중앙수사대책본부에서 13일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사업장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영세 사업장 특성에 맞는 실질적인 산업 안전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려해 동영상과 그림 등 맞춤형 교육 자료를 보급할 예정이다. 임금이 체불되지 않고 주거 환경이 개선되도록 하는 등 기본적인 인권 보호를 위한 정책도 개선해 나갈 것이다.
오는 17일이면 ‘비전문 외국인 인력 도입 시스템’인 고용허가제(EPS)가 20주년을 맞는다. 고용허가제는 2004년 도입 이후 국내 인력들이 꺼리는 직종을 중심으로 노동 시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공급해왔다. 공공 부문이 직접 외국인 인력을 도입·선발하고 관리하면서 송출 비리가 줄어들었다.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을 적용해 근로자 인권 보호에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다만 20년이 흐른 지금 인구 구조나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해 고용허가제 도입 당시와는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 당초에는 제조업 인력난을 해결하자는 취지였지만, 이제는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서비스업으로 비중과 대상이 다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인력을 찾는 요구가 다양해지고 여건도 변하면서 업종과 직종별 미스 매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불법 체류 외국인은 41만여 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부처별 칸막이로 인해 외국인 인력 관리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외국인 인력 활용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허가제의 앞으로의 20년을 위해 외국인 인력 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먼저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와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비자별로 나뉜 부처별 칸막이 정책에서 벗어나, 노동시장과 인권적 관점에서 외국인 인력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 구축은 이러한 시도의 첫걸음이다.
또한 산업 안전과 근로 기준, 직업 훈련, 고용 서비스와 체류 지원이 촘촘하게 연계돼 근로 여건과 산업 안전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우수한 외국인 인력은 국내에서 오래 일하고, 우리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정교한 정책 설계도 필요하다.
이제는 공급자 관점에서 정해진 절차에 의한 외국인 인력 수급을 지양하고, 시장 수요에 맞게 필요한 시기에 적시에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도록 제도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업종과 직종에 맞게 인력 공급 경로를 다양화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를 보다 간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 고용허가제 2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가 외국인을 맞을 노동시장 시스템과 정책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근본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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