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은 ‘유리그릇’ 다루듯[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카우치는 기다란 소파로 분석의 상징입니다. 누우면 천장만 보입니다. 앉아서 마주 보는 것보다 몸, 마음, 눈길이 편안합니다. 분석가는 머리맡에 앉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카우치는 주로 무채색이고 무난한 모양의 것입니다.
‘저항’은 지각, 결석으로도 표현합니다. 늦으면 지각, 안 오면 결석. 그래도 분석가는 그 시간 자리를 지킵니다. 이유는 항상 있습니다. 교통 체증, 급박한 사정…. 그러한 이유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면 ‘친구’ 수준, 갸우뚱 기울이면 전문가입니다. 무의식의 흐름까지도 놓치지 말고 살피고 다뤄야 합니다.
분석은 ‘마음 솔직하게 드러내기’로 시작해서 같은 식으로 진행됩니다. 카우치는 연상이 이어지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삶의 고통을 줄이거나 해소하려고 스스로 필요해서 왔으나 막상 시작하면 ‘두 마음’이 부딪치면서 분석이 간섭받거나 중단됩니다. ‘저항’은 우선 분석해야 합니다. 막고 있는 돌덩어리를 치워야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성찰할 능력이 있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들이 마음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두 사람만 있는, 비밀이 보장되는 전문적인 공간 안에서도 늘 드러내고 싶은 마음과 감추고 싶은 마음이 서로 다툽니다. 이해는 하지만 분석을 위해서는 저항을 극복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저항은 ‘유리그릇’처럼 다뤄야 합니다. ‘겉’부터 만져야 상수(上手)입니다. 갑자기 ‘속’을 건드리면 하수(下手)로, 저항이 증폭됩니다. 그릇을 깨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저 단순하게 툭 던집니다. “말하기가 힘드시군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식입니다. 피분석자 자신은 스스로 ‘저항’하고 있음을 잘 모릅니다. 무의식은 은밀하게 지배합니다. ‘두 마음 사이의 긴장 상태’를 깨닫게 되면 생각의 공간이 확장됩니다. 공간이 넓어지면 저항을 줄이면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찰(省察)이 반복되면 통찰(洞察)로 이어집니다. 결코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버티는 경우는 ‘소통 정체’를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성찰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고, 통찰은 흔히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으로 이해를 하나 분석에서는 “피분석자가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하였던 자신의 심적 상태를 알게 되는 일”을 뜻합니다. 성찰을 통해 통찰이 이루어져야 흔히 남의 탓으로 돌리는, 투사(投射)의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분석가는 피분석자가 통찰에 이르는 성찰을 되풀이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거울’로 제공합니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서, 비판하지 않고 중립적인 열린 마음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준비에 몇 해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 뒤에 실제 상황에서 ‘명료화’, ‘대립’, ‘해석’과 같은 언어적 수단을 알맞은 상황에, 적절한 시점에서 사용해서 삶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통찰은 평정심을 흔들어 저항을 불러옵니다. 꼬박꼬박 시간에 나타나더라도 교묘하게 피합니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대화만 이어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 서로 ‘솔직함’이 없다면 분석은 불가능합니다. 거짓말을 즐겨 하는 사람은 장기간의 분석으로도 도울 수 없습니다.
설득을 강하게 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설득은 의식에 속하는 수단이고 통찰은 무의식에 속한 것이니 마음을 읽어야 생기고, 설득으로는 통찰에 이르지 못합니다. 분석은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지 억지로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서 이끌지 않습니다. 뒤에서 따라가면서 못 보는 것을 보도록 도움을 줍니다. 저항은 녹아내리고 통찰은 자라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압박과 비판은 분석에 반(反)합니다. 말, 꿈, 환상의 표현이 자유로울수록 분석은 활발하게 충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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