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산책을 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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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개와 함께 느리게 걷는 데다 개가 무언가에 관심을 보이면 실컷 냄새를 맡고 돌아설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지나칠 때 듣게 되는 리더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봄에는 자목련 아래, 여름에는 배롱나무 아래, 가을에는 모과나무 아래, 겨울에는 헐벗은 가지 아래 아무 데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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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른쪽 들어갑니다!” 단호한 목소리가 길 복판에 화살표처럼 꽂힌다. 최근 자주 눈에 띄는 러닝 크루 중 하나다. 이쪽은 주택가이지만 마침 대학교 앞이고 공원과 제법 긴 산책로가 있어서인지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모여든다. 그럴듯하게 장비를 갖추고 열을 맞춰 뛰는 크루도 있고 어딘가 주섬주섬 챙겨입은 모습으로 엉성한 균열 속에 뛰는 크루도 있다. 어느 쪽이든 땀이 잔뜩 돋은 얼굴이 맑고 밝다. 지나칠 때 듣게 되는 리더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왼쪽 길로 바짝 붙습니다. 허리, 허리 세우세요. 나는 덩달아 허리를 바짝 세우고 길 끝에 붙어 걷는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길 이곳저곳에 멈춘다. 봄에는 자목련 아래, 여름에는 배롱나무 아래, 가을에는 모과나무 아래, 겨울에는 헐벗은 가지 아래 아무 데나 머문다. 제각각의 조도와 각도를 가진 햇빛 아래 맨머리를 드러내고 혼자 서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주 살아버리고 싶어하는 손주와 마주칠 때, 땀을 뚝뚝 흘리는 건강하고 유연한 신체와 마주할 때, 소란한 마음을 서로에게 내뱉고 주워 담는 나란한 어깨를 목격할 때 나는 혼자일 수가 없다. 아무리 호젓한 길을 찾아내도 그 길 끝엔 틀림없이 사람이 있어 산책할 때만큼은 도무지 외로울 틈이 없는 것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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