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무슬림 환자 위한 디자인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석수선 디자인전문가(영상예술학박사).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디자인 경영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강조한 경영철학 가운데 하나다.
이 회장은 기획력과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디자인이 약하면 다른 요소까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돼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1993년 우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1995년 디자인학교 삼성디자인스쿨(SADI)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는 디자인으로 가치를 창출하겠다며 '디자인 3.0'을 기치로 내걸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 창출이란 디자인만으로도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을 뜻한다.
이 회장이 쏘아 올린 디자인 경영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빠른 속도로 자리매김했다.
아랍 문화와 무슬림 환자의 특성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우리나라도 한류열풍에 힘입어 외국인 환자 중에서도 중동 국가의 의료관광 방한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알린 바 있다.
국가별 다양한 협약과 한류·한국 의료에 대한 이미지 제고로 방한하는 중동 환자의 수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테러나 자국민 우선주의로 위협 혹은 정치적·종교적으로 아랍권 국가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을 방문하기가 까다로워진 점, 한국의 의료비가 다른 의료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비용 항공사의 증가와 공항들의 운행노선의 확대 등으로 다양한 의료관광지로 떠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향후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중동의 무슬림 의료관광객 수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서구와는 달리 중동 국가들은 대부분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전통을 따른다. 중동에서 태동한 이슬람(Islam)은 이 지역의 주요 종교이며, 이슬람 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은 '절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슬림은 질병과 치료에 있어서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적 신념이 매우 강하다. 중동 무슬림은 다자녀 출산에 힘입어 젊은 층의 비중이 높고 젊은 층의 교육과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소득이 향상되고 관광에 대한 지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시행한 한국관광공사의 무슬림 관광 만족도에 대한 연구에서 무슬림 관광객은 예배 시설, 할랄 관련 사항, 일반적인 이슬람 윤리성, 음주와 도박으로부터 격리 등 종교적 속성들이 관광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랍 문화권 사람들의 대화 방식은 암시적이며 모호해 그 의중을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말이 나온 정황이나 억양, 손짓, 표정 등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화자가 내뱉은 말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숨은 더 많은 의미를 다중적으로 해석해야 상대방의 진정한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
무슬림 환자는 가족들에게는 통증에 대해 표현을 잘하지만, 의료진에게는 잘 표현하지 않는 성향으로 인해 통증 경감의 정도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야기하기도 한다.
여성 환자의 경우, 남자에게 자기 신체가 노출되는 것에 특히 신경을 쓰며 남편이나 가족이 더 민감한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 질병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에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아랍 문화에서는 맨몸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라고 인지한다. 이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 과정에 있어 환자와 동성의 의료진 투입이 요구되며 의료진을 포함한 청소원, 병실 관리인, 통역사 등 진료 서비스 환경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여성 환자의 병실을 방문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주로 대가족을 형성해 사는 아랍 문화권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입원했을 때 가능한 많은 인원이 병실을 지키는 것이 환자에 대한 애정의 척도로 여긴다.
사용자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
병원에서의 디자인 경영 사례는 중동의 의료 시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아이디오(IDEO) 의 아부다비 클리브랜드 클리닉 서비스 디자인 사례는 중동 문화권 환자들이 만족할 병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문화적 고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처음 병실 디자인은 서양식으로 환자 침대와 방문객을 위한 소파만 있었다. 하지만 중동 문화에서는 가족 중 환자가 생기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와서 함께 돌본다. 그 사실을 몰랐던 의료진들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에 카펫을 깔고 물담배까지 피우는 상황을 목격하고 너무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 대응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해야 했다." (톰 켈리, 아이디오 총괄 매니저)
무슬림은 유대관계가 강하므로 유력 왕족이나 부호 한 사람만 잘 치료해도 수천 명 이상이 병원을 방문할 수 있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이슬람 사회는 전통적으로 사람들 간 네트워크와 신뢰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무슬림은 자기가 좋은 것을 경험하면 지인에게 이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남'에 대한 배척이 심하며, 반대로 지인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므로 무슬림은 항상 관계를 맺는 것과 이를 유지하는 데 큰 노력을 들인다. 더욱이 관계란 항상 유동적이어서 한순간만 상대에게 소홀해도 곧 흔들릴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슬람의 가장 근본적인 비즈니스 윤리는 단순한 이익 창출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를 존중하고 이슬람교가 제시한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는 것이다.
무슬림은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으며 그 결과 다양한 민족의 종교가 됐다. 그런데도 때로는 이슬람 문화를 하나의 단일한 문화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만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그 지역의 관습과 전통을 단지 무슬림이 행했기 때문에 전체의 이슬람 문화라고 속단해 버리기도 한다.
아랍 문화 안에는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때론 지나친 일반화로 인해 모든 아랍 인종의 사람은 영어를 못하고 전통 그대로의 삶을 추구한다고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모욕적인 소통 패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양 문화에 더 친숙한 아랍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통 아랍 문화권 남성은 여성 의료진이 악수를 제안하는 등 물리적 접촉을 모욕적이라 여길 수 있지만 모든 아랍권 고객이 무슬림 종교관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환자별로 차별화된 관리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레바논의 경우 인구의 반은 기독교이다. 의료진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모든 아랍 환자를 무슬림 방식으로 대한다면 이 또한 문화적 적절성에 차질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문화적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여 한국에서도 무슬림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문화의 상이함에서 발생하는 차이점을 인식하고 문제에 적절히 대응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 문화적 생소함을 낮출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홍보와 병원 진출 등을 통해 구축된 현지 네트워크 활용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활용한 의료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질을 향상해줄 수 있는 주요 수단인 디자인 분야에서도 문화 다양성 고려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경험 디자인, UX/UI 디자인 영역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문화적 디자인(cultural design)에 대한 연구가 확산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보편성이라는 상반된 이슈에 대한 접근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 이해관계자 간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자인의 원리, 형식,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 한류와 우수한 의료 서비스 인프라를 바탕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외국인 환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다국적화됐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애 요소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특히 환자와 의료진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부분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으로 인한 한국 의료진의 업무 피로도와 스트레스 또한 매우 높고, 동시에 외국인 환자들의 의료 서비스 경험 만족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의료 서비스 환경에서 환자에게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여 환자 경험의 만족도를 향상하는 것은 의료 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는 곧 의료 기관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자 경험은 더 이상 임상적 결과에 머무르지 않고 진료실과 병원 시설을 벗어나 진료 전 평가, 그리고 진료 후 전화나 진단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사회·문화적 배경 및 경제적 요구에 따라 의료관광과 의료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의료관광에 대한 개념적 이해나 단순 해외 사례 비교·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일국가 혹은 특정 문화권의 범주의 환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정책 방안에 대한 자료와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국제 진료 서비스와 관련한 연구는 그 필요성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 연구를 위해서는 디자인 개념을 도입,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디자인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에 적응하기 위한 관련 기반과 응용 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국제 진료 서비스 환경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위해 언어, 종교, 생활 습관 등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진료 서비스의 역량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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