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도 못 틔우고 타버린 제주 당근, 폭염·가뭄에 농민들 속도 ‘바싹’
재해보험 가입 기준 변경
싹 안 나면 가입도 못해
지난 12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의 한 당근 밭. 파종 후 돋아난 싹으로 푸릇하게 뒤덮여야 할 당근 밭이 휑하다. 그나마 띄엄띄엄 보이는 싹도 고온과 물 부족으로 말라 죽기 일쑤다. 일부 밭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부지런히 물을 뿜어냈지만 바싹 마른 땅을 충분히 적시기에는 역부족이다.
김흥섭씨(64)는 “폭염에 가뭄이 겹치면서 당근 대부분이 발아되지 않고 있다”면서 “나온 싹도 타 버리고 있어 이대로면 올해 당근 농사는 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농업용수도 부족해 급수 타러 하루에도 20번씩 (급수차량 등을) 오가는 등 농가마다 난리”라고 말했다.
계속된 폭염과 가뭄으로 제주산 당근이 싹조차 틔우지 않으면서 농가들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13일 농가의 말을 종합하면 당근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 일대 당근 발아율은 올해 20%에 머물고 있다. 예년 발아율은 70% 안팎이다. 당근 파종은 지난달 초부터 시작돼 이달 중하순이면 마무리된다. 현재 60% 이상 파종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뿌린 씨앗 대부분이 싹을 틔우지 않자 농가마다 비상이 걸렸다. 상당수 농가에서 재파종을 하고 있지만 발아가 제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이는 불볕더위와 함께 가뭄이 찾아와 씨앗이 땅속 발아하는 과정에서부터 말라 죽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수십일째 33~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지속하고 있는 데다 지난달 26일부터는 비마저 내리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8일 구좌읍에 가뭄 대책 상황실을 설치하고 행정시, 농협·농어촌공사 등과 함께 이동식 물탱크와 급수 차량을 통해 농업용수를 지원하고 있지만 해갈에는 한계가 있다.
올해부터 바뀐 농작물재해보험은 농가의 근심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당근 농가들은 지난해까지 파종 직전에 보험을 가입한 후 수확기까지 발생하는 각종 재해에 대한 위험을 보장받았다. 이번처럼 가뭄 등으로 발아가 안되면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보상을 받고 다시 파종을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당근 발아 출현율이 50% 이상 되어야만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가입 기준이 변경됐다. 변경 기준을 적용하면 올해처럼 폭염과 가뭄으로 당근 발아 출현율이 낮으면 농가는 아예 보험에 가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도 이 같은 폭염과 가뭄이 반복될 수 있는 만큼 농업용수 급수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하겠다”면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문제는 향후 월동채소 전체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를 통해 개선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한편 구좌읍을 중심으로 한 제주 동부지역은 전국 당근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책임지는 당근 주산지다. 특히 12월에서 이듬해 1월에 출하하는 월동 당근은 대부분 제주에서 생산된다.
글·사진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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