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은 교통·물가·환경, 잇고 싶은 노력·감동·희망…파리의 기억

김은진·황민국·배재흥 기자 2024. 8. 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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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 현장 취재 후기
여러모로 아쉬웠던 올림픽
도로 곳곳 통제로 지하철 바글
1~2㎞ 거리 예사로 걸어다녀
식비·숙박비 등 바가지 횡포
경기장 입구에선 흡연 ‘눈살’
한국 선수단 ‘최고의 장면’
허미미 한국어로 인터뷰 소화
메달보다 빛난 여 핸드볼 1승
총 14경기 소화해낸 신유빈
2개의 동메달로 한 뼘 더 성장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치열하게 싸우며 기대치를 뛰어넘는 활약을 했던 17일 동안 현장에서 한국의 취재진도 함께 웃었고 아쉬워했다. 파리에서 올림픽을 취재한 경향신문 세 기자가 각자 기억에 남는 ‘파리에서 겪은 일’과 한국 선수단 최고의 장면을 짚었다.

#교통-꽉 막힌 도로에 걷고 또 걷고

지나친 교통통제로 금요일 밤인데도 개선문 앞 거리가 텅 빈 모습. 김은진 기자

올림픽 기간 동안 파리 시민들은 곳곳의 교통 통제로 큰 불편을 겪었다. 개회식이 열린 트로카데로 광장을 비롯해 콩코르드 광장, 그랑팔레, 앵발리드 등 주요 경기장이 밀집해 있는 중심가는 통제가 매우 심했다.

대부분이 지하철로 이동해 인파가 몰렸고 올림픽 기간엔 여러 역을 정차 없이 지났다. 1~2㎞는 예사로 걸어 다녔다. 개선문 로터리는 일대 통행금지로 횡단보도만 한 번 건너면 될 거리를 100m 이상 둘러 다녀야 했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파리 중심가 거의 모든 곳의 통행이 제한됐다. 취재진도 1시간 반 동안 무더위 속에 줄을 서 입장해야 했고 개회식 도중 장대비까지 쏟아져 종료 직전 서둘러 빠져나왔다. 가까운 지하철역을 ‘지도앱’으로 찾았더니 1.6㎞는 걸어야 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비에 홀딱 젖은 채 걸어갔더니 지하철은 서지 않았다.

포기하고 정처 없이 걷다 든 이상한 느낌, 금요일 밤 10시인데 길에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인파가 늘 몰리는 개선문 근처에도 경찰과 기자 외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마치 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보는 듯한 느낌.

#물가-파리의 바가지 요금

한 끼에 2만원 가까이 하는 샐러드. 황민국 기자

파리 시내의 웬만한 호텔 1박 가격은 300유로(약 45만원)가 기본이었다. 호텔 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각국 취재진은 숙박 공유 서비스를 통해 집을 빌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또한 금액에 큰 차이가 없었다. 사격 경기가 열린 샤토루시도 ‘바가지 요금’ 극성이었다. 모텔보다 낙후된 시설이 1박에 150유로(약 23만원)를 넘었고 이마저도 방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올림픽으로 한몫 챙기겠다는 파리시의 속내는 교통비에서도 확인했다. 올림픽 개막 직전인 지난달 20일부터 지하철·버스·도심 광역급행철도(RER)의 1회권 티켓 가격을 2.15유로(약 3200원)에서 4유로(약 6000원)로 2배 가까이 올렸다.

식비도 만만치 않았다. 파리 시내 식당에선 한 끼를 해결하려면 간단한 식사조차 최소 20유로(약 3만원)를 쓸 각오를 해야 한다. 물 한 잔도 무료가 아니라 음료수값은 별도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부분 음식점이 가격을 15% 이상 인상했다.

취재진이 대회 기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올림픽 경기장의 물가는 한술 더 떴다.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 혹은 파스타 한 그릇에 10유로(약 1만5000원), 스폰서인 코카콜라 상품으로 제한된 음료수는 한 병에 5유로(약 7500원)를 받았다. 파리에서 만난 인도의 한 기자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큰 무대가 열릴 때면 가난한 나라의 취재진을 배려해 폭리를 꼬집던 프랑스 통신사 AFP가 이번 대회는 왜 침묵하느냐”고 지적했다.

그나마 MPC 인근의 맥도널드가 비교적 저렴해 각국 취재진이 몰렸다. 물론, 파리의 맥도널드 빅맥 세트는 11.6유로(약 1만7500원)로 국내 가격의 2배를 훌쩍 넘겼다.

#환경-친환경 올림픽의 잡음

파리 시민들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센강에서 치러지는 혼성 트라이애슬론 경기. AP연합뉴스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센강 수영을 지켜보던 한 여성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난달 31일 오전 파리 센강에선 역사적인 이벤트가 개최됐다. 수질 악화로 1923년 입수가 금지된 센강에서 트라이애슬론 수영 경기가 열렸다. 프랑스는 약 2조원을 들여 정화 작업을 벌였다. 트라이애슬론 여자부 선수들이 처음 센강에 뛰어드는 장면을 보려고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인근 강변을 찾았다.

세균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지만 올림픽을 향해 달려온 선수들은 거침없이 센강으로 다이빙했다. 자신을 파리 시민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다”면서도 센강에서 수영할 수 있겠느냔 기자의 물음에 “못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실제로 트라이애슬론 개인전에 출전해 센강에서 헤엄친 선수 일부는 컨디션 악화로 혼성 단체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친환경 가치를 강조한 파리 올림픽은 센강 수질뿐 아니라 개막 전부터 선수촌 ‘NO 에어컨’ 논란을 빚었다. 선수 숙소뿐 아니라 선수들이 타는 셔틀버스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아 찜통더위 속 한 선수가 쓰러지는 일도 벌어졌다. 취재진이 이용하는 셔틀버스 또한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 다만, 대회 초반 엄격했던 에어컨 정책은 시간이 지나며 완화됐다. 일부 경기장과 셔틀버스는 춥다고 느껴질 만큼 세찬 바람이 나왔다.

파리 거리는 깨끗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담배꽁초였다.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흡연에 관대한 프랑스의 문화였다. 파리 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로 이용된 컨벤션센터 ‘팔레 데 콩그레’ 출입구 바로 앞엔 재떨이가 설치돼 있다. 사람이 잘 통행하지 않는 곳에 흡연구역을 두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흡연 중인 한 중년 여성이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파리에서 본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노력-허미미의 한국어 인터뷰

서툴지만 애를 쓰며 한국어로 끝까지 인터뷰한 유도의 허미미.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허미미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태극마크를 단, 알고 보니 독립운동가 허석 의사의 후손이라는 스토리로 대회 전부터 유명했다. 일본에서 ‘유도 천재’로 불린 허미미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한국 국적을 택한 뒤 2022년 국가대표에 선발돼 파리 올림픽 여자 57㎏급 은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놓쳐서 너무 아쉽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메달을 딴 것이 기쁘다는 표현을 “기분이 너무 좋지는 않은데, 그래도 메달을 따서 조금 좋아요”라고 했다.

허미미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발음이나 문장 완성도가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그래도 정확하게 말하려 애쓰며 한국어로 인터뷰를 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일본 취재진에 둘러싸였을 때는 일본어로 답하던 허미미는 공식 기자회견에선 ‘일본어가 편하다면 일본어로 답해줘도 괜찮다’고 한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도 환하게 웃으며 끝까지 한국어로 답했다.

#감동-기적 같았던 우생순 ‘1승’

모두가 안 된다고 비관했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독일전 승리 뒤 보인 환호.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자 핸드볼은 파리 올림픽 본선에 오른 한국 선수단 유일의 단체 구기 종목이다. 그러나 세계 변방으로 밀려난 여자 핸드볼에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1승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올림픽 개회 하루 전인 25일(현지시간) 여자 핸드볼은 조별리그 A조 독일과 1차전을 치렀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23-22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22위 한국이 6위 독일을 잡았다. 대이변이었다.

선수들은 승리가 확정되자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강강술래 세리머니를 펼쳤다. 예선에서 거둔 1승, 공동취재구역은 선수들의 환희와 눈물로 채워졌다. 신들린 선방을 보여준 골키퍼 박새영은 “포지션 하나하나 따졌을 때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서 값진 승리를 따낸 것에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쐐기골을 넣은 강경민은 “여자 핸드볼 경기가 오늘 있는지 모르는 분도 되게 많았을 텐데, 금메달을 딴 것보다 잊지 못할 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8강에 오르진 못했지만, 빈손으로 귀국하진 않았다. 유럽 강호도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 여자 핸드볼이 파리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희망-파리를 빛낸 ‘삐약이’

3종목에서 14경기를 치르면서도 동메달 2개를 딴 신유빈.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사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탁구의 메달 가능성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양궁에서 한국이 절대 강자라면, 탁구는 중국이 정상을 놓치지 않는다. 그 뒤를 바짝 쫓는 일본과 독일 등 강호들을 생각하면 3년 전 도쿄처럼 역시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한국은 혼합 복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신유빈은 임종훈과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고 여자 단체전에선 언니들(전지희·이은혜)과 함께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유빈은 혼합 복식과 여자 개인전, 여자 단체전을 순서대로 밟느라 모두 14경기를 소화했다. 틈틈이 주먹밥, 바나나, 에너지 젤을 먹으며 경기에 나섰다. 신유빈이 2년 전 손목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은 뒤 고단한 재활을 견뎠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니들과 함께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한 신유빈은 시상식이 열리기 전 취재진에게 동메달을 기념하는 ‘셀카’를 제안하며 활짝 웃었다.

김은진·황민국·배재흥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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