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왜 지식인들은 국민의 90%를 외면하는가
(1) 2019년 10월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35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63%(2233명)가 ‘유튜버에 도전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그 비율이 70.7%에 달했다.
(2) 유튜브 통계분석 전문업체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광고수익 유튜브 채널은 인구 529명당 1개꼴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 5178만명을 수익창출 채널 9만7934개로 나눈 수치다.
(3) 2023년 9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 한국>에 의하면 한국 응답자의 53%는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에 비해 9%포인트 증가한 수치이며, 46개 조사대상국 평균(30%)보다 23%포인트나 높은 결과였다.
(4) 모바일 분석 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유튜브 앱의 국내 총사용 시간은 약 19억5000만시간으로 2위 카카오톡(5억5000만시간)의 3배, 3위 네이버(3억7000만시간)의 5배에 달했다. 국민 한 사람이 한 달에 43시간을 유튜브 앱을 보는 데 쓴 셈이다. 이는 유튜브 종주국인 미국(24시간)을 크게 앞선 수치다.
이 4개의 통계 정도면 한국을 ‘유튜브 공화국’으로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과학철학자라지만 미래학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 장대익은 최근 조선일보 칼럼에서 “인류의 역사는 유튜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집단의 성취가 축적되고 변형되는 과정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것이라면, 유튜브는 문명 진화의 엔진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쓰레기’를 치우려면”이란 칼럼 제목이 시사하듯이, 그의 논지는 지식인들의 유튜브 활용을 독려하는 데에 있다. 그는 한국인의 94%가 유튜브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수집한다고 답한 조사 결과를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지금 우리는 좋든 싫든 유튜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현실을 무시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조금 과장을 하면, 유튜브 생태계가 쓰레기 같다고 비난만 하거나 무시하고 꺼리는 지식인들은 우리 국민의 90%를 만날 의향이 없는 분들이다. … 이제 오프라인 지식생태계의 진짜 고수들이 유튜브의 세계로 이주해 활약해 주길 바란다. 유튜브 이후의 지식 플랫폼을 당장 건설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 공간에 쌓여 있는 가짜 뉴스, 음모론, 팬덤정치, 댓글부대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좀 더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가꾸어야 한다.”
지식인에 ‘진입장벽’ 낮춰줄 필요
장대익의 그런 문제의식에 지지를 보낸다. 그의 칼럼을 읽으면서 올봄 국내에 번역·출간된 <유튜브, 제국의 탄생>이란 책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미국 언론인 마크 버겐이 ‘유튜브 20년사’를 발로 뛰어 정리한 책인데, 유튜브 창업자 중 한 명인 채드 헐리가 한 콘퍼런스에서 했다는 말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금전적 보상이 동기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3인의 창업자가 창업 20개월 만인 2006년 10월 유튜브를 구글에 팔아넘기지 않고, 헐리가 원한 시스템을 고수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오늘날의 유튜브는 없었을 것이다!
장삿속에선 역시 구글이 한 수 위였다. 구글 CEO 에릭 슈미트는 당시엔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거액인 16억5000만달러(1조5800억원)를 유튜브 인수에 써놓고도 유튜브를 계속 운영하게 될 창업자들에게 시스템에 대해선 아무런 요구 없이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전적으로 알아서 운영하면 됩니다. 여기 체크 박스 하나에만 합의한다면요.” 그 체크 박스 요구는 간단했다. “이용자와 영상, 조회 수를 성장시킨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시스템이건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금전적 보상이 동기가 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그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에게 영상을 업로드할 동기를 주는 게 성장의 핵심일 텐데, 업로더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데도 그들이 계속 영상을 올리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유튜브 CEO로서 책임을 진 헐리는 자신의 이전 소신과는 다르게 ‘애플 파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유튜버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방법을 마련했다. ‘애플 파이’라는 이름이 그렇듯이, 그렇게 하는 게 ‘지극히 미국적인(as American as Apple pie)’ 방식이라는 의미였다.
플랫폼이 사회를 반영한 적 있던가
돈을 버는 일에 관한 한, 그게 미국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이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순 없을망정 시장의 작동 방식과 친화적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장대익이 역설한, 좀 더 건강한 지식 생태계를 가꾸는 일도 그렇지 않을까? 이른바 ‘공공 지식인의 소멸’이 선포된 지 이미 한 세대가 더 지난 상황에서 지식인 개개인의 문제의식과 각성에 기대를 거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장대익이 몸담고 있는 창업대학의 역할이 바로 그런 일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지식인들에게 돈다발을 흔들면서 유튜브의 바다에 첨벙 뛰어들라고 유혹해보자는 게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은 지식인에게 유튜브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좋은 창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건 다 제쳐 놓더라도 장대익이 지적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소해주는 서비스를 창업대학 차원에서 전담해보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는 영상 촬영, 편집, 마케팅 등의 기술적 지식과 경력이 필요한데, 이는 학문적 연구와 강의에 집중해온 지식인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과 관리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유튜브 채널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유튜브의 성공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사람들에게 영상을 업로드할 동기를 준 게 가장 중요했다. 업로더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유저(user)’나 ‘유튜버’는 정확하지 않은 용어였기에 무언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그것도 잠재 고객을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이름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크리에이터’였다. 2021년 유튜브의 파트너 프로그램에 속한 크리에이터는 200만명이 넘었으며, 지난 3년간 자사의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한 돈은 300억달러 이상이었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를 ‘유튜브의 심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마크 버겐의 말처럼, “유튜브는 틀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믿음직스러웠고 바다처럼 광활했다.” 1분에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으니, 어찌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교하지 않은 검색 기능을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와는 달리 유튜브는 무엇이든 대단히 쉽게 찾을 수 있는 플랫폼이었으니,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졌을 게다.
그렇다. 중요한 건 느낌이었다. 2020년 5월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러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하자 베트남전 항의 시위 이후 전국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집단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한 유튜브는 홈페이지에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내걸었고, 블랙 크리에이터들에게 1억달러의 지원금을 배정했다. 대부분 그 돈을 수령했지만, 유력 크리에이터인 아킬라 휴스는 지원금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가 백인 지상주의자들과 그 커뮤니티를 사이트에서 완전히 정리하지 않는 한 백인은 계속해서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죽일 겁니다. 유튜브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만든 데 ‘완벽히’ 연루되어 있습니다.”
사실 바로 그게 진짜 문제였다. 유튜브는 ‘느낌’을 관리하는 데엔 능하지만, ‘증오·혐오 선동’이라는 근본 문제엔 눈을 감는다. 아니 늘 할 말은 있다. ‘표현의 자유’와 ‘검열’을 대비시킨다. 아니면 실리콘밸리의 플랫폼 업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을 한다. “거울을 탓하지 마세요!” 플랫폼들은 그저 사회를 반영할 뿐이라는 의미지만,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모든 것을 반영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반영의 균형성을 위해서라도 장대익의 창업 프로젝트가 부디 성공하길 바란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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