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체코 원전 수출 뒤에 가려진 ‘고혈’
국가에 경사가 났다. 지난달 체코에서 24조원 규모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수주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참에 원전 생태계 부활에 온 힘을 가할 태세다.
이 국가 잔치가 아직 수주를 받은 게 아니라 ‘우선협상대상’이 되었을 뿐인 시점에 열렸다는 것, 건설 금액이 프랑스 반값에 불과해 나중에는 오히려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2018년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였지만, 최종 수주에서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20조원 규모라며 떠들썩했던 UAE 원전은 납품 비리로 건설이 지연되면서 최소 40억원 이상 지연 보상금을 물었다. ‘우선협상대상 선정’을 ‘수주 성공’이라고 말하면서 애써 외면하는 과거의 교훈이다.
정부는 체코 수출의 무용담을 통해 한국의 핵 정책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는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원전산업지원특별법 제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핵 산업 편들기’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하 11차 전기본)에도 정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핵발전 신규 건설이다. 2038년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GW 이상 대형 핵발전소 3기와 SMR(소형모듈원자로)에 0.7GW 용량을 새롭게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계획으로, 당장의 기후 대응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산업부도 밝히고 있듯이 대형 원전 건설에는 무려 167개월(13년11개월)의 기간이 필요해 2038년에야 가동이 가능하다. 게다가 설계 허가도 되지 않아 적용이 불확실한 SMR을 포함해 전력 계획에 무책임함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빠른 건설과 가동이 가능한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과 투자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 전 수명을 다하는 핵발전소 12기에 대해 두 차례의 수명연장을 전제로 했다. 핵발전소 설계 수명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고, 설사 더 사용한다 하더라도 안전성 검증과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은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행정계획에 그 과정은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핵 산업을 위해 국민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6월 말까지 등록된 핵발전소 사고·고장 건수는 무려 800건에 이른다.
영광, 부안 등 한빛핵발전소 인근 6개 지자체와 호남권 주민들은 지난 7월12일부터 시작된 한빛 1, 2호기 수명연장 주민 공청회를 몸으로 막아서며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의 위험과 비민주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울산 시민들도 고리2호기 수명연장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서명을 이어가고 있다. 건강 위협과 수많은 고장과 사고, 그리고 지진에도 어쩔 수 없이 핵발전소 인근에서의 삶을 사는 주민들에게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체코 원전 수출이라는 국가의 경사를 우리가 ‘잔치’로 즐길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의 핵 정책이 계속 순항할 것이라며 체코 정부에 강조했다는 산업부 장관의 무용담에 분노하고 쓴 눈물을 삼키는 이유다. 경제 성장과 수출이라는 사탕발림 속에 핵발전 지역 주민들의 아픔은 없다.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 만성고―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루락―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노랫소리 드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도 높네). 우리에게도 핵산업 생태계 지원 뒤에 가려진 민초들을 돌아볼 진정한 암행어사가 필요하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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