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알려진 곡을 사랑받게 만드는 것, 연주자의 책무”
한예종 출신 국내파…3년 전 부조니 국제 콩쿠르 우승하며 이름 알려
“곡의 매력에 빠져 길을 잃지 않도록 노력” 확고한 연주 철학 인상적
9월 말까지 전국 투어…거장 언드라시 시프 부름받고 10월엔 독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함께 공부했다. 둘 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지만, 분위기와 음악은 크게 달랐다. 라흐마니노프가 198㎝의 키에 거대한 손을 가진 반면, 스크랴빈은 왜소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언어가 웅장했다면, 스크랴빈은 섬세했다.
주목받는 젊은 피아니스트 박재홍(25)은 연주자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독집 음반에서 둘의 음악을 함께 담았다. 데카코리아에서 음반이 발매된 13일 서울 신영체임버홀에서 박재홍이 기자들과 만났다.
음반에 담긴 곡은 스크랴빈의 24개 전주곡과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 모두 자주 연주되거나 음반에 담기는 곡은 아니다. 조금 더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곡을 담는 것이 안전한 선택 아니었을까. 박재홍은 “고집”을 언급했다.
“이 두 작곡가를 너무 사랑하는데, 유명한 작품들에만 관심이 쏠려 서운함을 느꼈습니다. 작곡가가 남긴 유산 중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을 잘 갈고닦아서 사랑받게 하는 것이 연주자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덜 유명한 곡이기 때문에 제가 잘못 해석하면 ‘작품이 별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박재홍은 곡의 해석과 연습 과정을 자신만의 비유로 정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연주자였다. 박재홍은 “곡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접근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함정’은 무슨 뜻일까.
“곡이 너무 아름답고 특별하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보니, 연주하다가 그 향에 취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향을 맡으려는 순간, 음악을 끌고 왔던 힘이나 방향성을 희생하고 거기서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마라톤을 뛰다 예쁘게 핀 꽃을 보려고 멈춘 뒤 다시 뛰려면 힘든 것 같다고 할까요.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많은 순간을 참고 지나가야 했습니다.”
박재홍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한 ‘국내파’다. 2021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콩쿠르 우승 직후 갑자기 여러 무대에 섰을 때는 정신적·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점점 무대에 서는 시간이 행복해지고, 좋은 부담감이 늘고 있다. 행복하게 오랫동안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187㎝의 장신, 도에서 다음 옥타브 파까지 닿는 큰 손에 대해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며 웃었다.
박재홍은 10월부터 독일 베를린으로 가 바렌보임사이트 아카데미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를 사사한다. 2년 전 시프가 한국에서 공연할 때 통역을 했고, 그때 시프가 “네 피아노가 궁금하다”고 해 연주했더니 “바로 베를린으로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여러 상황이 겹쳐 1년을 연기하다 이제야 입학을 앞두고 있다. 박재홍은 “시프 선생님과는 독일 음악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려 한다. 그 전에 제가 좋아하는 러시아 음악과 안녕을 고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이번 음반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박재홍은 음반 발매를 기념해 전국 투어도 연다. 25일 통영국제음악당을 시작으로 9월1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거쳐 9월26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끝나는 일정이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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