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파란 여름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파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보뱅의 책 ‘환희의 인간’은 ‘파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파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고요한 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선 색으로 외치는 꽃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작가가 말하는 장엄한 푸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누군가의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친 것은 색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뒤였다. 꽃의 색으로 감정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였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란 캐릭터는 파란색 몸을 가졌다. 축 처진 어깨와 시무룩한 표정을 한 파랑은 슬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억 저장소에 묻혀있던 파란 슬픔이란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만 같다. 밀려오는 슬픔을 막아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럴수록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탈이 난다. 파랑이라는 색은 어쩌다가 슬픔이라는 감정의 다른 이름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파란 꽃은 어떤가? 장마가 시작될 무렵 파란 수국이 절정이었다. 달맞이 고개를 지날 때 구름처럼 피어있던 파란 수국을 보고 딸아이가 말했다. “꽃이 아닌 것 같아.” 비현실적이라며 파란 수국을 낯설게 보았다. 파란 꽃을 보고 신비를 느끼는 건 오래전부터이다.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자라던 푸른 수련은 인간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존재였다. 라피스라줄리라는 원석의 푸른빛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는데 파란 꽃이 물속에서 피어나니 오죽했을까.
나에게 파랑은 여름밤, 파란 이불, 꿈속을 떠올리게 한다. 파란 꽃은 행사의 주제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파란 꽃으로 작업을 하고 나면 늘 기대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후련함 같은 것이었다. 각각의 색은 저마다의 파동과 진동을 가지고 있는데 파란색이 지닌 파동이 나의 신체와 감정 에너지에 휴식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색채 심리학에서 파랑은 모든 색 가운데 가장 사람을 안정시키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하늘의 빛깔인 파랑, 그 빛깔이 연한 하늘색일수록 자유로움과 심리적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초록색이 섞인 터콰이즈 빛깔은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사람에게 유용하며, 짙은 남색은 인간의 통찰과 직관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무한한 가능성과 닿아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특징만 보더라도 파랑이라는 색을 통해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지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감정적 평화가 필요한 사람은 밝은 하늘색을 가까이하면 좋다. 또한 밤하늘을 닮은 짙은 파랑에 끌린다면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재조정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자신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가 된다. 의식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만들어 타인의 인정이나 반응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외로움을 느낀다면 숲이나 바다에 가보자. 더 큰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다에 가기 어렵다면 돌고래를 닮은 파란 델피늄을 집안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파랑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당신의 파랑은 어떤 빛깔이냐고 물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각자 서로 다른 파랑에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파랑이 어떤 색조를 지녔는가를 생각하다가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색채를 활용해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색채를 통한 치유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결국 자기 신뢰로부터 시작된다.
폭염 경고 문자가 이어진다. 파란색에 빠진 나는 베란다 창가에 파란 나팔꽃을 피워볼 계획을 세운다. 어둠 속에서 준비를 마치고 아침에 잠깐 피어나는 나팔꽃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다. 무더위와 슬픔 그리고 고독한 밤을 잘 보내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올여름은 깊고 짙은 파란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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