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협상 대표, 현장에 안 가고 건물도 몰라…강제성 문제에 '졸속' 협상 지적까지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한국 측의 협상 대표가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협상에 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제성 표현에 대해 말이 바뀌었던 정부에서 협상 대표가 현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협상 자체가 졸속적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영재 외교부 유네스코협력 TF 팀장은 사도광산에 간 적이 있냐는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의 질문에 "간 적 없다"고 답했다. 이번 유네스코 등재와 관계된 외교부 당국자는 등재 전날인 7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자주 점검을 했다고 했는데, 정작 협상 대표는 현장에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한 셈이다.
당시 정부가 사도광산에 얼마나 가서 둘러보고 일본과 협상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 당국자는 "자주 가서 점검을 하고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실의 최종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 대사관 직원이 오늘 가서 마지막 최종 상태를 점검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팀장은 현장에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올해 3월 TF 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현장도 모르고 협상하나?"라며 "경제 관료고 워싱턴(주미 대한민국대사관)에 있었는데 유네스코 이번 사안과 무슨 관계냐"라고 지적했다.
행정고시 37회 출신은 김 팀장은 현 산업통상자원부인 통상산업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1998년 외교부로 자리를 옮겨 주미 참사관과 주사우디 공사참사관, 양자경제외교국 심의관, 국제경제국장 등을 역임하며 경제‧통상 관료로 전문성을 키워왔다.
이에 이같은 인물을 유네스코 등재 관련 TF 팀장으로 임명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 외통위에 출석한 조태열 장관은 "협상을 잘하는 동료라 제가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사도광산에 있는 전시 건물의 이름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에 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준형 의원은 "외교부가 (전시 시설 중 하나로 검토했다며) 사도광산 '텐지뮤지엄'을 언급했는데, 이런 곳이 실제로 있나? 여긴 박물관이 아니다. 한국어로 '전시'가 일본어 발음으로 '텐지'이며 실제 이름은 '사도금산 자료전시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노동자의 출신지 △광산 노동자의 생활 △가혹한 노동 조건 등이 전시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Aikawa History Museum'이라고 표기했지만 실제 유네스코와 일본 측은 'Aikawa Folk Museum'이라고 표기한다"고 전했다.
당초 외교부 측은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한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 상황을 전시하는 데 있어 아이카와 향토박물관과 키라리움 사도, 사도광산 텐지 뮤지엄 등을 모두 비교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여기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을 보도자료에 'Aikawa History Museum'이라고 명시했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이 전시물을 전시하기에 적절한 곳인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구글맵(지도)만 살펴봐도 키라리움 사도에는 300개가 넘는 후기에 사도광산에서 방문해야 할 곳이라고 나오지만,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16개 후기에 홍보도 안돼있고 시설은 노후하다고 돼 있다"며 이런 곳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 노역과 관련한 사항을 전시하는 것은 오히려 이 사실을 "숨겨놓기 위한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유네스코) TF 인원 중 한 분이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이후 가해 역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금기가 돼 있다고 한다. 강제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직접 언급을 못한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성이 명기되지 않은) 이번 협상 후퇴가 향후에도 반복될 수 있는데, 이럴 거면 (합의하지 말고) 차라리 국제사회에 일본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냐"고 따졌다.
즉 한국이 유네스코에서 일본과 합의를 할 것이 아니라, 설사 투표까지 가서 패배하더라도 일본이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서 향후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은 2015년 군함도를 비롯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일부 시설에서 강제노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이번에도 한국의 강제성 적시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네스코가 일본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차후 이와 유사한 시설의 등재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하기는 어려워 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조 장관은 이에 대해 "일견 동의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심정적 평가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러 선택지 중에 2015년 기록에 남겼던 것이 설사 부도수표가 됐을지언정, 그를 교훈삼아 또 다른 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그에 따라 그 기록이 축적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며 협상 결렬보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준형 의원은 일본이 2015년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신용도가 떨어진 가운데 한국이 유리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었음에도 강제성을 명시하지 않은 협상 결과가 나온 데 대해 "(협상이) 미흡하다는 정도로 평가해야 맞지 않나"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비판이 많아서 입장을 말한 것이지, 제가 (이 협상 결과에 대해) 자랑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번 협상 결과가 자라나는 세대들이 보기에 미안할 수준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의원의 지적에 조 장관은 "(일본으로부터) 100% 다 받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면서도 일본으로부터 실제 이행 조치를 받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위한 풍선 기구가 2kg이 초과할 경우 항공안전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데 대해 이날 외통위에 출석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도 (유권해석을) 받았다"며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민간단체들도 항공안전법을 충분히 숙지하도록 이후 만나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대북 전단 살포가 항공안전법 위반뿐만 아니라 저작권법도 위반하는 등 실정법을 위반하는 정부의 판단이 나왔으니 살포를 자제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의 지적에 김 장관은 "경찰 수사 진행 중이라 지켜보면서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저작권법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법적 조치 논의하라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의 지적에 김 장관은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저희들이 소통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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