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곁으로 [김탁환 칼럼]
김탁환 | 소설가
섬진강 들녘으로 내려와 농사를 배우며 지낸 지도 4년이 가까웠다. ‘섬진강 대학교 4학년’을 자처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둔하고 손발은 서투르다. 농사뿐만이 아니라 마을 활동에서도 학생처럼 공부할 것들이 가득하다. 딱 하나 이웃들을 가르치는 분야가 바로 글쓰기다. 처음에는 낯설고 물선 타향에서 사람을 사귀는 방편이었다. 곡성군은 서울특별시의 10분의 9나 될 만큼 땅이 넓지만, 인구는 2만7천명 남짓이다. 열다섯명씩 모집하면 첫해의 봄과 가을 정도는 10주씩 연속 강의가 가능하리라고 봤다. 그런데 3년 반 동안 쉬지 않고 일곱차례 강좌를 마쳤고 가을엔 8기를 모집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글쓰기를 넘어 책 쓰기에도 도전하려 한다.
처음부터 군민들의 글쓰기 수업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수강생들 나이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고, 절반 이상이 들녘에서 땀 흘리는 농부였다. 글쓰기 수업이라고 공지했음에도, 몇몇은 글을 쓰거나 발표하진 않고 강의만 듣겠노라 고집했다. 그들이 제시한 장벽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써보긴 했으되 재능이 없더라는 것이다.
‘곁’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가장 오래 정성을 쏟은 식물이나 동물에 대해 써 오도록 했다. 30년 넘게 딸기 농사를 지은 농부가 있었다. 연필을 쥔 적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씨를 심는 법부터 시작해서 딸기를 수확할 때까지 쓰고 나니, 공책 일곱 바닥을 빽빽하게 채웠다. 토란을 기른 이도 소를 키운 이도 다섯 바닥을 쉽게 넘어섰다.
농부들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났다. 특히 식물에 대해선 뿌리부터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의 모양과 냄새와 맛까지, 세세하게 비교하며 구별해냈다. 몸에 이로운 풀은 무엇이고 절대로 먹어선 안 되는 풀은 무엇인지도, 한두가지 특징을 짚어 간명하게 설명했다. 농촌에서 이와 같은 능력을 갖추는 것은 취미나 교양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가장 친한 사람에 관한 글쓰기를 다음 과제로 냈다.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 부부나 이웃이나 사제(師弟) 등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온 이를 골라 쓰되, 논리적으로 따져 평하지 말고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적어 오라고 했다.
계간지 ‘녹색평론’은 2024년 여름호에서 ‘30주기에 돌아본 무위당의 생명사상’을 다뤘다. 이현주는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제목 아래 무위당 장일순에 대한 아홉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사상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전혀 없이, ‘존재하는 것은 나타내는 것이다’라는 아브라함 헤셸의 말을 인용하며, 그 언행만 사실대로 옮겼다. 빈민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후배가 한 말씀 들려달라 요청했을 때 “까불지 마시게”라고 답하는 장일순, 죽산 조봉암의 죽음을 회고하며 대성통곡하는 장일순을 통해 그의 사상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수강생들이 자신의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때면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글을 써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해서 눈물을 흘린 면도 있지만, 곁으로 가까이 가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상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곁으로 가야만 틈이 보이고, 틈 속에 담긴 분노와 한숨과 절망이 가슴에 닿는다. 여태껏 그 고통을 살피지 못했다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물지어 온다.
눈물이 슬픔으로 끝나진 않았다. 곁에서 쓴 글을 함께 읽고 듣는 시간은 서로에게 또 다른 곁을 내어주는 과정이다. 때로는 불안과 혼돈에 휩싸이고, 때로는 불편하고 복잡한 이야기까지 공들여 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상 밖의 행복이 찾아든다. 두겹의 곁이 주는 내밀한 안정감이기도 하겠다.
연속 강의를 마치곤 공동문집을 묶었다. 6기에선 밥벌이를 중심으로 ‘내가 하는 일, 당신이 모르는 삶’, 7기에선 밤과 휴식을 찾아 ‘내 문장이 당신의 발등을 비출 때’를 제목으로 삼았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은 무엇이고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폭넓게 담겼다.
섬진강 이웃들과 4년째 글쓰기 수업을 하는 지금은 곡성군 어느 마을에 가도 수료생들이 살고 있다. 석곡우체국장도, 고달에서 양계장을 하는 목사도 10주 동안 낑낑대며 글을 썼다. 그들과 우연히 마주칠 때면, 수업에서 나눈 글로부터 말문을 연다. 지금 곡진하게 마음을 쏟는 대상은 무엇인지, 눈앞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애쓰는지, 또 그에 관한 글은 써두었는지 묻고 답하다 보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들이 나를 마을소설가로 받아주는 느낌도 든다. 곁에서 쓰고 울며 행복한 날들을 같이 쌓은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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