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가 욕망을 만났을 때 [한겨레 프리즘]
노현웅 | 정책금융팀장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강남3구로 대표되는 서울의 상급 지역,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과거 최고점에 근접하던 아파트 거래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을 넘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으로 점차 불이 옮겨붙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아파트 계약 신고 건수를 보면, 7월 아파트 계약은 벌써 6912건으로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전달 거래량(7450건)을 거뜬히 추월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직 신고일수가 월말까지 20일 가까이 남은 점을 고려하면, 4년여 만에 최대치를 넘어설 것이 유력해 보인다. 주목할 점은 거래 활성화를 이끄는 지역이 노도강과 양천·서대문·동작구 등 점차 서울 외곽 지역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점을 대부분 회복한 강남, 마용성 등이 거래 피로감을 보이는 사이 서울 중위 가격대 아파트가 주로 들어선 주변부로 불이 번지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집값 가격 변동이 ‘달팽이’처럼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많다. 불이 붙을 땐 강남부터 출발해 마용성, 노도강을 거쳐 수도권과 지방까지 순차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떨어질 땐 반대로 지방부터 시작해 수도권, 서울 외곽을 거쳐 강남이 최후까지 버틴다는 이야기다. 최근 감지되는 시장의 움직임은 가격 상승의 탄력을 받은 동심원이 조금씩 그 반경을 넓히는 모양새다.
이처럼 서울 아파트 시장이 꿈틀거리는 데에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건설자재와 인건비 등이 치솟아 신규 주택공급이 크게 위축됐다. 아파트 분양가마저 천정부지로 치솟아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심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더욱이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가구 등 비아파트 거주에 불안감을 느낀 실거주자들이 아파트 전세 수요를 떠받치기 시작했다. 보증금을 떼이기 싫은 서민층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거 눈높이를 높이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을 지지하는 안전판을 맡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최근 집값 불안에는 정부의 정책 오류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아파트 거래 증가세의 후행지표로 은행권 주택대출이 증가세를 보이는데, 최근 3개월(4~6월) 은행권 주택대출의 60%는 국토교통부가 공급한 정책금융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구입을 위한 디딤돌 대출의 집행 실적은 15조원에 이르고, 올해 1월 도입된 신생아 특례 대출의 경우도 2조9천억원이나 풀렸다. 정부는 이들 특례 대출의 소득 요건과 대출 대상 주택의 가격 등을 크게 완화했는데, 특히 신생아 특례 대출은 집값이 9억원인 주택까지 대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서울 외곽 지역의 실수요자에게 요긴하게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집값 불안을 감지한 정부는 “모든 정책 수단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비상한 각오 속에 ‘8·8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윤석열 정부 들어 ‘270만호 주택 보급 대책’ 등 공급 정책이 남발되면서 시장에서는 더 이상 정부가 언급하는 공급 숫자를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정부 대책과 주택 공급에는 최소 몇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주택 구매 수요를 즉각 억누를 수 있는 대출 규제 등 수요 대책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
특히 이런 안온한 인식의 근원이 대통령실이라는 고백에 이르면, 이 정부에서도 집값을 잡는 일은 기대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앞서 한 정부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와 집값 불안 등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리의 부동산 정책자금을 크게 확대한 배경에 대통령실의 주문이 있었다고 한겨레에 털어놓은 바 있다. 청년·신혼부부·서민층의 주거안정을 지원하겠다는 ‘선의’가, 동탄역 롯데캐슬 무순위 청약에 294만명이 몰려드는 시장의 욕망과 맞물렸을 때, 어떤 부작용으로 돌아올지 두려울 따름이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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