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의 경고 “교만은 파멸을 부른다”
고명섭의 카이로스
테이레시아스는 펜테우스에게 경고한다. “그대는 권력이 인간 만사를 지배한다고 과신하지 말고, 그대의 병든 생각을 지혜라고 착각하지 말라.” 카드모스도 펜테우스를 향해 ‘악타이온의 운명’을 기억하라고 간청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업신여기던 악타이온은 제가 기르던 사냥개들에게 잡혀 찢겨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27살 때 쓴 ‘비극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 음악 정신으로부터 태어나 음악 정신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다고 말하는 책이다. 이 비극론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특징을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쌍개념으로 서술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그리스 비극의 바탕에 흐르는 격렬한 삶의 충동을 가리키며, 이 충동은 음악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아폴론적인 것’은 이 삶의 충동을 제어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다.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인 거대한 에너지를 아폴론적인 엄격한 형식으로 통제함으로써, 다시 말해 창조적 생명력을 미학적 규율로 장악함으로써 예술의 신기원을 열었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구사하는 쌍개념은 이것만이 아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이라는 또 다른 쌍개념도 제시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결합이 비극을 예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대립은 그리스 비극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소크라테스적인 것’이란 철인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앎의 의지를 뜻한다. 소크라테스는 날카로운 사유의 힘으로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가 그 모든 비밀을 밝혀내려 한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적인 차가운 논리가 비합리적인 어두운 충동의 세계를 해부함으로써 디오니소스적인 원초적 생명력을 동력으로 삼는 비극 정신이 죽고 말았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이다.
그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구현자로 니체가 지목하는 사람이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가운데 막내인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406)다. 에우리피데스야말로 소크라테스적 정신으로 무장하고 삶의 비밀스러운 어둠을 들여다봤을 뿐 아니라 그 어둠에 빛을 비춤으로써 비극을 자살로 몰고 간 사람이었다. 니체는 말한다. “디오니소스는 이미 비극 무대로부터 쫓겨났고, 그것도 에우리피데스를 통해서 말하는 악마적인 힘에 쫓겨났다. 에우리피데스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신은 디오니소스도 아폴론도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 태어난 마신 소크라테스였다.”
그리스 비극의 출현과 쇠락의 역사를 놓고 보면, 니체의 설명은 절묘한 데가 있다. 니체의 말대로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인 음악 정신에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디티람보스’에서 기원했다고 말했는데, 디티람보스는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서정시다. 이 합창서정시가 변형돼 비극이 됐다. 그 비극은 아테네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상연됐다. 디오니소스는 포도주의 신이자 재생과 풍요의 신이었기에 농민의 숭배를 받았다. 기원전 6세기에 아테네의 참주가 된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디오니소스 축제를 국가 제전으로 만듦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으려 했다.
비극은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음악에서 태어나 디오니소스 제전과 함께 비극으로 자립했다. 그 비극은 아이스킬로스 작품으로 위엄을 갖춘 예술이 됐고 소포클레스를 통해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다가 에우리피데스 시기에 이르러 밤하늘의 불꽃처럼 타올라 스러졌다. 흥미롭게도 에우리피데스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 디오니소스 신앙을 소재로 삼은 ‘바코스의 여신도들’이다. 이 작품에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온갖 어두운 모습이 드러나 있어, 그 표면만 보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거부하는 비극, 그리하여 디오니소스 정신이 창출한 비극 예술의 파국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으로 보인다.
그러나 니체의 이런 해석은 ‘비극의 탄생’이 출간된 직후부터 반론에 부닥쳤다. 니체는 에우리피데스가 소크라테스라는 마성의 힘을 빌려 디오니소스의 목을 졸랐다고 했지만,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본질로 상정하는 음악 정신이 에우리피데스에게서 사라졌다고 볼 근거는 약하다. 코로스(합창단)의 노래는 여전히 극을 떠받치고, 등장인물이 부르는 독창은 오히려 늘었다. 음악 정신은 에우리피데스 비극에서 죽지 않았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을 관통하는 본질적 특징을 보려면,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아테네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 정신에 눈을 모아야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당대의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의 지배자로서 제국주의적 횡포를 저지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불러들였고, 그런 잘못을 성찰하기는커녕 오만한 정책을 오히려 더 밀어붙인다고 보았다. 기원전 416년 멜로스 섬 주민들이 아테네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을 때, 에우리피데스는 ‘트로이 여인들’이라는 작품으로 아테네의 멜로스 학살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것인지 상기시켰다.
이렇게 비극을 현실 비판의 매체로 삼았기에 에우리피데스 예술은 당대 아테네인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에우리피데스는 90편이 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우승한 것은 네 편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스킬로스가 13번, 소포클레스가 18번 우승한 것과 대비된다. 아테네의 양심을 찌르는 에우리피데스를 아테네 시민들은 외면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비극은 작가 정신의 탁월함으로 후대의 모범이 됐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각각 7편밖에 살아남지 못한 것과 달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17편이나 온전히 전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리피데스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불렀다. 니체의 진단과 달리 ‘소크라테스적인 것’은 에우리피데스 비극을 죽이지 않았다. 반대로 에우리피데스야말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의 결합으로 그리스 비극을 정점에 올렸다고 할 만하다.
에우리피데스의 비판 정신은 마지막 작품 ‘바코스의 여신도들’에서 광염과도 같이 타오른다. 이 작품은 ‘바코스(디오니소스) 신앙’을 부정하기는커녕, 이 신앙을 불신하고 탄압하는 권력자들의 무지와 교만을 겨냥한다. 이 비극의 무대는 도시국가 테베다. 아시아에서 자라 포도주의 신이 된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려고 테베로 돌아온다. 테베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의 나라이기에 디오니소스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곳 테베는 이 나라의 건설자이자 세멜레의 아버지인 카드모스가 늙어 외손자 펜테우스에게 왕좌를 물려준 상태다. 펜테우스와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우에를 비롯한 왕궁 사람들은 디오니소스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디오니소스 신도들을 풍속을 해치는 이들이라고 여겨 닥치는 대로 잡아들인다.
자신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펜테우스 일가의 태도에 분노한 디오니소스는 무서운 마법으로 왕궁을 심판한다. 먼저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우에와 왕궁의 다른 여인들에게 광기를 내려 디오니소스 숭배자로 만든다. 신들린 아가우에 무리는 키타이론산으로 올라가 비밀 의식을 치른다. 디오니소스 신의 마력을 빌린 키타이론산의 여인들은 자신들의 비밀 의식이 발각되자 초인적인 힘으로 이웃 마을을 약탈하고 짐승들을 잡아 죽이고 커다란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
디오니소스의 심판은 이제 펜테우스로 향한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잡아 죽이겠다고 큰소리치고 키타이론산의 광란하는 무리도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왕궁에서 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펜테우스의 할아버지 카드모스와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뿐이다. 테이레시아스는 펜테우스에게 경고한다. “그대는 권력이 인간 만사를 지배한다고 과신하지 말고, 그대의 병든 생각을 지혜라고 착각하지 말라.” 카드모스도 펜테우스를 향해 ‘악타이온의 운명’을 기억하라고 간청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업신여기던 악타이온은 제가 기르던 사냥개들에게 잡혀 찢겨 죽었다.
그러나 늙은 현자들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펜테우스는 신들린 여인들의 비밀 의식을 확인하러 갔다가 붙잡히고 만다. 변장한 펜테우스를 야수로 여긴 아가우에는 그 ‘야수’의 사지를 찢고 머리통을 떼어내 티르소스 지팡이에 꿰어 의기양양하게 왕궁으로 돌아온다. 아가우에는 뒤늦게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가장 소중한 자식을 제 손으로 죽였으니 아가우에의 광란은 참혹한 자기 징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에우리피데스는 늙은 카드모스와 테이레시아의 입을 빌려 이 비극의 원인이 권력자의 불경과 교만에 있음을 명확히 밝힌다. 두려움을 모르는 무절제한 권력은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인다. 에우리피데스가 이 작품을 쓰고 2년 뒤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해 굴욕을 당하고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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