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리볼버’ 전도연
- ‘무뢰한’ 감독과 9년 만에 신작
- 죄 뒤집어쓰고 복역한 경찰이
- 약속한 대가 받아내려는 이야기
- “또 맡게 된 어두운 역할에 주춤
- 감독님과 약속 지키려고 출연”
- 마담 役 임지연과 찰떡 ‘워맨스’
- 지창욱·이정재와도 호흡 척척
- “연기 갈증, 연극 무대서 풀어
- 배우 하길 잘했고, 배우라 감사”
이름만으로 믿음이 가는 배우 전도연이 영화 ‘리볼버’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리볼버’는 9년 전 ‘무뢰한’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좋은 기억이 있는 오승욱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전도연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톱 주인공을 맡은 ‘리볼버’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하수영이 출소 후 자신이 받기로 했던 대가를 위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도연이 맡은 하수영은 2년간의 수감 생활 후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에야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속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전도연은 하수영이 느끼는 분노를 건조하고 차갑고 냉한 얼굴로 표현해 ‘역시 전도연’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리볼버’의 완성본을 처음 보고 ‘우리 영화가 이런 영화였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대본상으로는 코미디 장르가 전혀 없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블랙코미디더라. 그래서 ‘이렇게 웃긴 영화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생각에는 더운 8월에 개봉하니까 (오 감독님이 편집을 통해) 이야기 자체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좋은 의미의 당황스러움으로 제가 촬영한 영화를 새롭게 본 것 같다”며 웃었다.
베테랑 배우도 생각지 못했던 영화의 색깔을 지닌 ‘리볼버’. 전도연이 말하는 ‘리볼버’의 제작 과정과 그녀가 연기한 하수영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영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봤다.
▮오승욱 감독과의 재회
‘리볼버’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휴식이 길어진 전도연은 오 감독에게 빨리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뭐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기에 오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저도 오 감독님도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해와서 좀 밝고 경쾌하고 통쾌한 작품을 써서 빨리 찍자고 했는데, 흔쾌히 동의하셨어요. 그런데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 4년이나 걸릴 줄 몰랐죠.”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4년간 전도연은 영화 ‘길복순’과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촬영하며 바쁘게 지냈다.
처음 ‘리볼버’ 시나리오를 받고 전도연의 마음을 짓누른 것은 ‘밝고 경쾌한’ 작품이 아니란 점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고 ‘이 작품을 내가 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다르다고 하지만 ‘리볼버’에서 전작 ‘무뢰한’의 느낌을 받아서다.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오 감독과 자신이 다시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 것이다.
그럼에도 전도연이 ‘리볼버’에 출연한 것은 오 감독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길복순’으로 액션도 했고, ‘일타 스캔들’로 어렵게 밝은 이미지로 돌아왔는데 다시 어두운 이미지로 들어가야 하나 했어요. 진짜 오 감독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했습니다.”
전도연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잡았고, 우선 ‘무뢰한’에서 연기한 김혜경과 비교되지 않도록 하수영 캐릭터를 잡아갔다. 그는 “일단은 좀 건조했으면 좋겠다 싶어 감정을 많이 걷어내고자 했다. 그런데 실제 촬영 때는 너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계속 같은 연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 같아 걱정했다”면서도 “그런데 무표정으로 다른 배우들을 만나니까 오히려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각자 색깔이 묻어져서 더 다채롭고, 더 다양한 느낌의 장면이 나오더라. 사실 촬영할 때는 잘 몰랐고,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것이다”고 말했다.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앙상블
하수영은 무표정으로 자신이 대가로 받기로 한 ‘아파트와 돈만 필요하다’는 대사를 반복한다. 대사도 많지 않아 전도연의 말처럼 자칫 영화가 지루할 수 있지만 함께 출연한 배우들 덕분에 ‘리볼버’는 생기를 얻고, 생각지도 않은 블랙코미디 요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무채색 연기에 색을 입혀준 첫 번째 배우는 임지연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 등을 통해 대세 배우로 떠오른 임지연은 출소한 하수영을 찾아온 유흥업소 마담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인 정윤선 역을 맡아 전도연과 워맨스 연기를 펼친다.
“첫 촬영이 출소하고 나왔을 때 임지연 씨가 자동차에서 내리면서 ‘언니’ 하는 신인데, 그때 회색 톤에서 무지개색으로 확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 저게 정윤선이구나’ 싶었죠.” 임지연은 전도연과 연기할 때 ‘쫄았다’고 고백했지만 전도연은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임지연 씨가 한예종 다닐 때부터 저의 팬이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그냥 당차게 열심히 하는 친구고, ‘이 친구가 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두 배우는 촬영이 진행될수록 캐릭터를 빌드업시키며 ‘워맨스’ 케미스트리를 보였다.
이번 영화에서 처음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지창욱도 그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는 하수영에게 대가를 약속했던 투자 회사 이스턴 프로미스의 실세인 앤디 역을 맡았는데, 멋진 외모와 달리 찌질한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전도연은 “촬영할 때는 지창욱 씨 장면이 웃긴 줄 몰랐다. 지창욱 씨와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구나.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고 깨달았다”며 “그는 현장에서 앤디라는 캐릭터를 무에서 유로 만들었다. 지창욱 씨에게 어쩌면 앤디 같은 모습이 있을 수 있겠다는 짐작까지 들었다”고 웃었다. 지창욱은 일명 ‘향수 뿌린 미친개’로 불릴 만큼 히스테릭한 면을 가진 앤디 캐릭터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긴장감 속에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 ‘하녀’ 이후 14년 만에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이정재다. 그는 하수영의 연인이자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장본인 임석용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전도연은 “‘이정재 씨가 이걸 왜 한다 그랬지?’ ‘이분이 왜 여기(촬영현장) 계시는 거지?’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애초 이정재는 ‘무뢰한’에 출연하기로 했으나 어깨 부상을 당해 합류하지 못한 사연이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리볼버’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두 배우는 대사만 한 번 맞추고도 단박에 깊이 있는 연기 호흡을 보여줘 ‘리볼버’에 무게감을 더했다.
▮연기에 대한 갈증
사실 전도연은 ‘길복순’ 이전부터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오 감독에게 새로운 작품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길복순’ ‘일타 스캔들’ ‘리볼버’를 거친 연기 갈증은 어느 정도 풀렸을까.
“솔직히 갈증이 좀 해소된 것은 최근 무대에 오른 연극 ‘벚꽃동산을 통해서였습니다. 연기하고 있다고 해서 그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니니까요. 제 만족이 너무 중요했는데, 그런 것이 채워진 게 ‘벚꽃동산’입니다. 연극 출연은 27년 만이어서 좀 자신감도 없고 두려움도 컸지만 신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했어요, 그러면서 무대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든지 무대에 서고 싶어요.” 지난달 7일 막을 내린 연극 ‘벚꽃동산’은 내년 3월 호주에서 다시 공연된다.
“배우가 아니라 뭘 했어도 전 잘했을 것 같다. 하지만 배우가 되길 잘했고, 배우인 것이 너무 감사하다. 연기할 때가 제일 저답고, 제일 즐겁다. 현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행복해하며 연기하는 전도연을 계속 만나길 한 사람의 팬으로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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