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정보공개는 미봉책…정부·업계 근본대책 머리 맞대야"
무상점검 서비스에 배터리 안정화 기술 총력
전고체배터리 등 위험성 낮춘 배터리 개발 필요
안전성과 함께 캐즘 극복 종합대책 마련해야
[이데일리 하지나 이다원 기자]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공개 등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업계에서는 이번 방안이 미봉책이라는데 무게가 쏠린다. 전기차 확대와 안정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종합적인 대책을 정부와 업계 모두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전기차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안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침체가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국내 자동차·배터리 업계는 정부 대응에 발맞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결국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안정화 기술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완성차 잇따라 배터리 제조사 공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13일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홈페이지를 통해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EQE 차종을 포함한 전기차 8개 차종 배터리 제조사를 전격 공개했다. 본사 정책을 이유로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지 않던 데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또 벤츠는 국토교통부가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벤츠 EQE에 대한 전수 점검을 특별 권고한 것을 받아들이면서, 14일부터 전국 75개 공식 서비스센터를 통해 무상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완성차 업계는 이미 정부 권고에 앞서 배터리 정보를 자체적으로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005380)·제네시스, 기아(000270) 등 전 차종의 배터리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선제적으로 알렸다. 나아가 현대차·기아는 전국 서비스 거점을 통해 전기차 안전 관련 9개 항목에 대한 무상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KG모빌리티는 자사 전기차에 화재 안정성을 강화한 BYD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했다고 알렸다. 전기차 대상 상시 무상점검 서비스에 더해 특별 점검까지 검토 중이다.
수입차 업체들도 동참했다. 전날 BMW에 이어 이날 볼보코리아가 고객용 앱과 홈페이지를 통해 제조사 정보를 공지했다. GM은 캐딜락 리릭을 출시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 협업한 마케팅을 진행했다.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지프·푸조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정부 방침에 적극 동참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우디를 비롯한 폭스바겐그룹 역시 부품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그룹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검토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안정성 확보에 최우선
다만 산업계에서는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전기차 안정화를 위한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배터리 업계에서는 배터리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정성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에너지 밀도 향상과 안정성 확보는 배터리를 제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하반기 양산을 시작하는 원통형 46시리즈에 셀 단계에서 배터리 내부 폭발 에너지를 외부로 빠르게 배출시켜 셀의 저항을 줄이고 연쇄 발화를 방지하는 ‘디렉셔널 벤팅’ 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SDI의 경우 지난해 셀-모듈-배터리 팩을 연계한 열전파 방지 기술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이어 외부 충격과 열에 강한 알루미늄 외장 각형 배터리에 가스 배출부인 벤트(Vent)를 적용, 배터리 폭발을 방지하는 기술을 채택했다.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형태로 쌓아 올리는 ‘Z-폴딩’ 공법으로 양극과 음극 접촉 가능성을 차단해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춰 안전성을 강화했고, 셀투팩(CTPㆍCell to Pack)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높인 팩 솔루션 상용화도 준비 중이다.
배터리 전류, 전압, 온도 등을 측정해 최적의 배터리 상태를 유지하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고도화 작업 역시 적극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퀄컴과 함께 BMS 진단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SK온은 BMS의 성능을 좌우하는 ‘배터리관리칩(BMIC)’ 국산화에 성공했다.
“정부, 안전과 전기차 캐즘 잡는 종합 대책 필요”
전기차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화재 위험을 현저히 낮춘 배터리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화재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전고체 배터리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2027년이 돼야 양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더욱이 높은 가격으로 대중화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화재 방지책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 사고로 자칫 전기차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내연기관차에 엔진을 누가 만드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듯이 궁극적으로 봤을 때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관건은 아니다”면서 “안전성과 전기차 캐즘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나 (hjin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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