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현혹의 기술 [책이 된 웹소설 :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알맹이 없는 파시즘 실체
키메라 같은 사상의 탄생
파시즘은 한때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등 파시스트 정권은 유럽 일대를 전쟁과 학살로 물들였다. 이렇듯 파시즘은 역사에 유례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정작 이를 일관된 형태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927년 유럽에서 부글거리는 파시즘을 바라보며 "수수께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가 파시즘을 관찰한 결과 "권위주의를 주장하면서도 기존 권위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태생부터 민족주의와 대중주의의 영합에서 출발한 파시즘은 그 실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파시즘 강성기라 할 수 있는 시기,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를 다루는 웹소설은 파시즘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주무대라면 '파시즘을 어떻게 할 것인가'란 문제에 직면한다.
'명원' 작가는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에서 혼란스러운 독일을 배경으로 파시즘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은 파시즘 사상인 '로젠바움주의'를 만들고 파시즘이 얼마나 '근본 없는 잡탕'인가를 보여주며 그 허상을 지적한다.
작품은 한국의 장군 '조범석'에게 산신령이 찾아오며 시작한다. 산신령은 쿠데타에 실패해 감옥에 갇힌 조범석에게 과거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유혹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조범석은 1893년 독일제국의 소년 '아르민 로젠바움'에게 빙의하지만, 인격의 주도권을 아르민이 잡으며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조범석은 비록 쿠데타를 도모하긴 했지만 21세기 기준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이다. 반면 조범석을 통해 미래 지식을 얻은 아르민은 이 사건을 신의 선택이라 여기고 독재자로 변신한다.
아르민은 독일제국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비행기 개발을 시도하고 전쟁 후에는 혼란스러운 독일 정계에 입문하기 위한 과정을 밟아나간다. 이때 아르민은 사상에 무엇보다도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럴듯한 '잡탕' 사상, '로젠바움주의'를 만든다.
민주주의를 '차선책'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민족을 다스릴 초인을 부르짖으며 은연중 그 자리에 자신을 가져다 놓는다. 다른 정치인들은 그를 선동가라고 비난하지만 대중적 인기를 어쩌지 못해 끝내 굴복한다.
이 독일의 <로젠바움주의>는 족보가 어떻게 되는가? 어디에 속하는가? 민족을 중시하니 일단 공산주의는 아니다. 무솔리니식 파시즘이라기엔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독일식 민주주의'라고 하기엔 지도자 숭배가 섞여 있다. (중략) 애초에 만들 때부터 그럴듯한 건 다 때려넣은 괴작이다.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중
작중 로젠바움주의는 그야말로 '궁극의 키메라'로 표현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르민이 독재 집권하려는 도구이며, 타국을 침략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사상의 창시자인 아르민조차도 로젠바움주의가 오래 지속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르민이 로젠바움주의를 내세우며 성과를 낸 순간, 이 허깨비 같은 사상은 실체화한다. 마침내 여러 나라에 퍼지고 사악한 식민제국과 싸우는 선한 독일 구도로 이야기가 펼쳐지자 일부 독자마저 "이 정도면 충분히 도덕적인 국가"라고 아르민의 독일을 옹호한다.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는 로젠바움주의의 발흥을 보여주며 파시즘이 어떻게 대중을 현혹하고 권력을 유지하는지 묘사한다. 아르민의 독재가 강화할수록 허구에 불과했던 로젠바움주의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한다. 작품은 독자들에게 파시즘의 실체와 그 위험성을 생각하게 한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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