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광복회장 `몽니`에 두쪽 난 광복절, 국민이 부끄럽다

2024. 8.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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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광복절 기념식이 사상 처음 두쪽 나 치러지게 생겼다.

광복회와 야당이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며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탓이다.

이 회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반대하는 서신을 3차례나 보냈지만 전자결재로 발령을 냈다"며 "내가 (윤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모욕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추천한 인사가 독립기념관장 임명서 탈락한 탓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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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자 후손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광복절 기념식이 사상 처음 두쪽 나 치러지게 생겼다. 광복회와 야당이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며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경축식 불참을 선언한 탓이다. 광복회의 경축식 불참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독립을 위해 순국한 열사들을 기리고, 국민 통합과 경축의 장(場)이 돼야 할 광복절 기념 행사마저 반쪽이 되게 생긴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얼마나 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갈등의 단초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제공했다. 그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대해 친일적 주장을 편 '극우 인사'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김 관장이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된 게 아니라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광복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 회장에게 "건국절 추진 계획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김 관장도 "건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돼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는 게 내 입장"이라며 "건국절 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 회장은 근거없는 소문만으로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이 회장의 주장에 편승, 김 관장이 친일 논란의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과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백선엽 장군을 옹호했다는 등 연일 윤 정부에 친일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

이 회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반대하는 서신을 3차례나 보냈지만 전자결재로 발령을 냈다"며 "내가 (윤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모욕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복회장은 독립기념관장을 임명하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또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양한 건국절 제정에 대해서도 경축식에 불참할 만큼 1919년 아니면 안된다고 고집할 자리가 아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추천한 인사가 독립기념관장 임명서 탈락한 탓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회장은 공산주의자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육사내 흉상 이전에 대해서도 반발해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이런 처신에 대해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지만, 김 관장이 최적임자였는지 또한 의문이다. 마찰이 예상되는데도 인선을 밀어붙여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광복절마저 정쟁화되는 데 대해 국민들은 한없이 개탄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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