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안세영의 돈 이야기가 부당한가

2024. 8.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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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프랑스 파리에서 "협회의 선수 관리 소홀에 실망했다"고 토로한 배드민턴 대표팀 안세영은 한국에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귀국해선 "누구와 싸우려는 의도가 아니다. 난 그저 운동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에서 호소하고 싶었을 뿐"이라고만 했다. 그러자 많은 추측이 나왔고 안세영은 올림픽 후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올림픽 폐막 직후 마침내 알려진 건 경제적인 보상 이야기였다.

안세영은 인터뷰에서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모든 선수를 다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안세영의 입장을 기다렸는데 결국 돈 문제였냐"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상당히 격하게 안세영을 비난하는 여론까지 등장했다. 안세영이 배드민턴계의 발전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내세웠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으로 돈 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노골적으로 이익을 주장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최근 들어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사회가 서구화 합리화되면서 그런 경향은 줄었지만 여전히 드러내놓고 돈을 추구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실력과 성과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폰서 수익을 요구했다고 비도덕적이거나 명분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 안세영의 돈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한 것보다 적은 급여를 받았을 때 과연 만족할까?

안세영은 여자 배드민턴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다. 세계 최고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져야 합리적인 사회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희생과 침묵을 강요한다면 그 사회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배드민턴 여자 세계 랭킹 13위 푸살라 신두(인도)는 지난해 대회 상금으로 5만4015달러(약 7409만원), 그리고 광고료와 스폰서십으로 710만달러(약 97억원)를 벌어들였다. 남자 세계 1위인 빌토르 악셀센(덴마크)도 스폰서십으로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반면 여자 세계 랭킹 1위인 안세영은 상금으로 62만8020달러(약 8억6151만원)를 벌었지만 추가 수입은 소속팀 연봉 6100만원에 불과하다. 연봉과 개인 스폰서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협회에 의해 계약금과 연봉이 제한되고, 배드민턴 국가대표로서 개인 스폰서십이 제한된다. 국제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함께 뛰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누리는 것을 보며 세계 1위 안세영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훈련 여건에 대해서도 비교가 됐을 것이다. 남자 세계 1위인 덴마크의 악셀센은 자신에게 맞는 두바이로 이주해 개인 코치진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한다고 한다. 덴마크 국가대표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협회 같으면 특별 대우라고 펄쩍 뛸 일이다. 덴마크 배드민턴 협회는 두바이로 떠나는 악셀센에 아쉬움을 나타내긴 했지만 "두바이로 이사하기로 한 결정과 새로운 영감에 대한 그의 열망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후 악셀센은 개인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참여했고 이번 올림픽 때는 다시 덴마크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훈련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정도까지 개인이 자유를 누리긴 어려울 것이다. 협회와 국가대표팀 소속으로서 활동은 하더라도 계약금, 연봉, 스폰서십 등에 대한 자율성은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일종의 계약금, 연봉 상한제가 적용되는 건데 그러면 실력과 성적에도 상한제를 둬서 딱 받는 돈 만큼만 실력 발휘하라고 할 것인가? 놀라운 실력과 성적을 올리는 이에겐 특별한 보상이 따르는 것이 맞다.

배드민턴 협회의 후원 수입 40억원으로 배드민턴계를 운영하기 때문에 개인 후원이 용인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이 개인 후원 수입을 단체 수입으로 돌려야만 배드민턴계를 운용할 수 있는 가난한 나라인가? 개인 스폰서 때문에 협회 수입이 예컨대 반토막 난다면 그 20억원은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도 있다. 언제까지 개인을 억누를 것인가? 부상 관리 등 이번 논란의 여러 시비는 향후에 밝혀질 일인데, 그것과 별개로 개인 수익 자율성 확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고려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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