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칼럼] 주거 초양극화, 설자리 잃는 `소셜 믹스`

김화균 2024. 8.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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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국장대우 금융부동산부장

지난 2004년 8월, 20년 전 이 맘때다.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도착한 영국 버밍엄의 모습은 아직도 선하다. 가장 자주 찾은 곳 중 하나는 근교의 '캐드버리 월드'(Cadbury World)다. 캐드버리 초콜릿을 생산하던 공장부지에 조성된 테마파크로 연간 50만명이 넘게 찾는다.

이제는 국내 편의점에도 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캐드버리는 '덕후' 정도나 아는 브랜드였다. 1824년 첫 등장한 이 초콜릿은 세대를 이어가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고,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캐드버리는 영국민의 '소울 초콜릿'이다. 영화로 더 친숙한 로알드 달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이 초콜릿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한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속과 부활절 초콜릿 달걀도 캐드버리가 원조라고 한다.

캐드버리가 영국민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 달콤함 때문만은 아니다. 설립자인 존 캐드버리로부터 대대로 계승된 사회공헌 활동 덕분이다. 존 캐드버리는 초콜릿을 팔아 번 돈으로 알콜 중독을 막기 위한 금주운동 단체를 설립·지원하고, 매연을 줄이기 위한 굴뚝 청소 기계도 도입했다. 그가 설립한 '동물친구협회'는 현재 영국 최대 동물복지단체인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로 자리 잡았다.

화룡정점은 이른바 '본빌(Bonneville) 주택단지'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은 두 아들은 1894년 버밍엄 인근 본빌에 초콜릿 공장을 추가 설립하면서 직원들을 위한 직주근접형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정원과 운동장, 각종 편의시설이 두루 갖춰진 파격적인 주거단지다. 직원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주택 크기와 주거비용을 차별화했다. 넓은 정원에서 '모두가 어울려' 살아가도록 계획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본빌은 성공적인 주거모델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본빌 프로젝트는 이른바 '소셜 믹스'(Social mix·사회적 혼합)의 효시로 불린다. 소셜 믹스는 아파트나 주택 단지 내에 분양과 임대 물량을 같이 조성하는 정책을 말한다. 다양한 계층이 한 단지내에 살게 해 주거지 분리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간의 격차를 해소하여 사회통합을 이룩하는 게 목표다.

이 정책은 우리 주거 계획에서도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다양한 평형을 동시에 지어 주택공급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에서 소형주택이나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짓도록 하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양극화를 넘어 초양극화 사회로 접어든 탓일까. 소셜 믹스라는 용어는 점점 외계어처럼 다가온다.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희미해진 톨레랑스(관용) 정신이 주거 문화에서도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평형(전용 85㎡) 아파트 값이 50억원을 호가하는 강남권 한 아파트는 관할 구청과 갈등을 빚었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공공개방하겠다는 조건으로 혜택을 받았지만 약속을 어긴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8·8 부동산 대책'을 통해 정비사업의 전용 85㎡이하 주택공급 의무비율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성을 높여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현재 과밀억제권역의 재건축 사업은 전용 85㎡ 아파트를 건축 가구 수의 60% 이상, 재개발 사업은 80% 이상 지어야 한다.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특단의 대책이지만 소형주택 축소로 서민의 도심 주거 보장, 소셜 믹스 등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무비율 폐지로 공급 주택이 더 줄어들 수 있어 '공급대책'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미 단지 내 소형주택 수요가 적고, 소형주택이 오히려 집값이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소형주택만으로 구성된 별도 단지를 설계하는 꼼수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까. 물론 '예'가 정답이다. 그러나 직장이 가까운 서울에 살고 싶어도, 치솟는 집값·전세값에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주거 난민들은 '아니오'를 외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돈이 돈을 버는 사회'다. 초양극화는 현실적으로 마땅한 해결 방법은 없다. 하지만 소셜 믹스의 정신은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아닐까.

국장대우 금융부동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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