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M&A 절차 줄여 '빅딜' 유도…韓, '대기업 특혜' 눈치
(2) '기활법 원조' 일본…대기업 재편 구원투수로
산업계 '3과' 골머리 앓던 日
'과소투자·과잉규제·과당경쟁' 탓
기업 1곳당 시장규모 韓보다 작아
韓의 1997년 '빅딜 해법' 주목
미쓰비시 등 규제 풀어 사업 재편
日정부가 반도체 소재社 인수도
韓, 대부분 中企지원…효과 한계
‘인구 1억2500만 명의 일본 시장이 5000만 명의 한국 시장보다 작다.’
일본 정부는 2013년 12월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산업경쟁력강화법을 만들었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반도체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빅딜’을 통해 중복 사업을 과감하게 재편함으로써 기업당 내수 시장 규모를 일본보다 키운 점에 주목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기업당 내수 규모가 자동차 철강 전력 등 주요 업종별로 일본보다 1.5~3.9배 크다고 분석하며 일본 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3과(과소투자, 과잉규제, 과당경쟁)’ 해소를 위해 산업경쟁력강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산업경쟁력강화법이 일본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발휘하자 2016년 8월 이번에는 한국이 일본을 참고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을 제정했다. 서로를 모델 삼아 만든 기업활력법과 산업경쟁력강화법은 오늘날 성숙기에 접어든 두 나라 산업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기업 ‘빅딜’ 중심의 일본
13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기업활력법 개정에 따른 제도 및 운영 개선사항 발굴 및 연구’ 보고서에서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법 제정 이후 각각 484곳과 132곳의 기업 사업 재편을 지원했다. 한국의 기업활력법은 신사업 진출, 디지털전환, 탄소중립, 공급망 안정 등 지원 분야를 6개로 넓히면서 지원 기업이 일본을 앞섰다는 설명이다.
법이 제정된 지 10여 년을 맞으면서 두 나라 제도 운용의 차이점도 드러나고 있다. KDI는 산업경쟁력강화법이 주로 둘 이상의 대기업 사업 재편을 지원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중공업의 화력발전시스템 사업부문 통합(2014년), 도요타이어와 미쓰비시상사의 지분 교환(2019년), 정유업체인 이데미쓰코산과 쇼와셀의 경영통합(2019년) 등 대기업들이 중복된 사업 분야를 합치는 ‘빅딜’이 많아 사업 재편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라디에이터, 머플러, 연료펌프 등 내연기관에만 쓰이는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기업과 완성차 업체의 사업 재편도 활발하다. 2020년 도요타자동차가 계열 부품회사 덴소에 전자부품 사업을 이관하는 등 최근 4년 동안에만 10건의 사업 재편이 이뤄졌다.
일본 정부가 업종 재편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지난 6월 27일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투자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는 포토레지스트 세계 1위 JSR을 약 1조엔에 인수했다.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필수적 소재(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가운데 하나다.
세계 5대 포토레지스트 기업 가운데 네 곳이 일본 기업이다. JSR의 점유율은 3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는 물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JSR 인수에 많은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는 일본 정부는 JSR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해외에 팔릴 가능성을 차단하고, 업계 재편을 위해 인수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JSR을 통해 도쿄응화공업 등 나머지 일본 기업 세 곳을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특혜 부담에 대기업 지원 부족한 한국
반면 한국은 전체 지원 대상의 98%가 중소·중견기업인 데다 단일 기업의 사업 재편이 대부분이어서 상대적으로 재편 효과가 부족하다고 KDI는 지적했다. 안상훈 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대기업 특혜’ 부담 때문에 대기업 지원이 활발하지 못하다”며 “재편 효과가 큰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지원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기준이 변경되면서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뀐 기업들의 재편을 적극 지원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일본 정부도 지난 2월 산업경쟁력강화법을 개정해 중견기업의 사업 재편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중견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우면 생산성 향상과 임금 인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은 “금융위원회 주도로 시행하는 ‘금융 밸류업 정책’에 기업활력법을 토대로 하는 ‘사업 밸류업 정책’을 접목해야 산업 경쟁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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