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나의 첫 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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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학기 초가 되면 의무적으로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아저씨가 정말 꿈처럼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나는 크게 상심해서 그림 그리기가 싫어졌고, 그만 크레파스를 준 아저씨조차 미워졌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으로 꿈을 접었다가 뒤늦게 꿈을 이룬 이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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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학기 초가 되면 의무적으로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저씨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 후로 거의 한 학기 넘게 그와 자잘한 주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이야깃거리가 궁할 때면 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편지는 우리 식구 모두에게 활력소가 됐다.
어느 날 아저씨로부터 이번 휴가에 내가 사는 곳을 들르겠다는 연락이 왔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 아저씨가 정말 꿈처럼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뜻밖에도 그의 손에는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던 왕자표 크레파스가 들려 있었다. 세상에나, 엄마에게 그렇게 졸라도 안 사주던 24색 크레파스!
식구들의 환대 후에 화단 한쪽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양 갈래머리를 땋은 나 혼자만의 독사진만 남아 있다. 아저씨는 꽤 잘 생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순전히 크레파스 덕분에 그렇게 보였을 수 있어 자신이 없다. 인증사진을 남겼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
그 크레파스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미술대회에 나갔다. 야속하게도 나는 그만 입선밖에 하지 못했다. 미술반 지도 선생님에게 12색 갖고 간 영호는 특선을 했는데, 24색 크레파스를 가지고서도 왜 입선밖에 못 했냐고 혼이 났다.
나야말로 이번엔 보란 듯이 큰 상을 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건가 말이다. 나는 크게 상심해서 그림 그리기가 싫어졌고, 그만 크레파스를 준 아저씨조차 미워졌다. 나의 첫 펜팔은 아쉽게도 그렇게 끝이 났다. 영문을 몰라 마음이 상했을 아저씨에게 아직도 미안하다.
화가가 되겠다는 내 꿈도 그때 무참하게 깨어졌다. 최근에야 어렸을 때 재능에 대해 잘못된 질책을 받으면 평생에 걸쳐 트라우마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으로 꿈을 접었다가 뒤늦게 꿈을 이룬 이도 적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도 수상 여부로 재능을 판단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일찌감치 진로를 변경한 덕분에 소설가로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림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다. 김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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