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낭만 유도’ 안바울 “단체전 동메달, 엄청난 스토리”
“그동안 땄던 올림픽 메달 중에 제일 좋았습니다.” 안바울(30·남양주시청)은 파리 올림픽 유도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결정지었던 순간에 대해 “전엔 메달을 땄을 때 기쁨과 동시에 (금메달이 아니라는) 슬픔이 있었는데, 이번엔 기쁨만 있었다”라고 말했다.
“잘했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13일 강동구 자택 근처 카페에서 안바울을 만났다. 손님 몇 명이 그에게 축하 인사를 하면서 박수를 보냈다.
안바울(세계 랭킹 13위)은 앞선 개인전 66kg급에서 빈손으로 일정을 마쳤다. 두 번째 판인 16강전에서 한 수 아래로 봤던 카자흐스탄 선수에게 되치기를 당해 졌다. “전 우승할 줄 알았습니다. 사전 캠프부터 적응 훈련, 감량이 모두 잘돼서 자신이 있었거든요. 긴장하지도 않았고.... 누굴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안바울은 지난 도쿄 대회 챔피언이었던 일본의 아베 히후미와 결승에서 만나 승리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허무하게 탈락했다. 패자전에 나가지도 못했다. 아베는 올림픽 2연패(連覇)를 달성했다. 안바울은 올림픽 데뷔 무대였던 2016 리우 대회에 세계 1위 자격으로 출전해 은메달, 세계 3위였던 지난 도쿄 대회 땐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메달을 따고도 매트를 내려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을 만큼 진하게 아쉬움을 토했다. 이번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어 허탈한 마음뿐이었죠. 후배들에게도 미안하고....” 한국 팀의 대회 첫 메달을 노렸던 60kg급의 김원진(32)은 올림픽 3회 연속 입상에 실패한 상태였다.
안바울은 기운을 추슬렀다. “남은 단체전에서 내 몫을 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올림픽 선수촌 룸메이트였던 김원진에게 “메달 하나씩 걸고 한국 가야죠”라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사실 안바울은 파리 올림픽 전까지 혼성 단체전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단체전은 남자 73kg급·90kg급·90kg 이상급과 여자 57kg급·70kg급·70kg 이상급이 대결해 승패를 가린다. 지난 도쿄 올림픽까지 한국 남자 73kg급엔 안창림이라는 간판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66kg급인 안바울이 단체전을 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 이 체급의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얻지 못하면서 단체전 멤버를 꾸리기가 불리해졌다. 안바울은 파리로 출발하기 전부터 “단체전에서 이길 확률을 높이려면 무조건 내가 다른 나라 한 체급 위 선수들과 싸워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개인전에서 두 경기만 뛰었던 그는 남아돌았던 힘을 단체전에 쏟았다.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16강전, 8강전, 패자전, 동메달 결정전 모두 매트에 섰다. 심지어 독일과 벌인 동메달전의 경우 5번째 경기(패배)를 하고, 3-3 상황에서 추첨으로 최종 7번째 경기(연장 골든스코어 방식)에 뽑혀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안바울은 다시 만난 독일의 이고르 반트케를 밀어붙였고, 지도 벌칙 3개를 이끌어내 승리했다. 그는 “체력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번 더 공격을 할 작정이었는데, 심판이 독일 선수에게 지도를 줬다”고 돌아봤다.
단체전 5경기, 총 35분49초간의 사투를 이겨낸 안바울은 두 주먹을 쥐며 그동안 어떤 경기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격정적인 포효를 연발했다. 그러자 매트 아래에서 기다리던 동료 5명이 달려와 안바울을 얼싸안았다. 그야말로 ‘낭만 폭발’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국내 취재진 앞에서도 “안바울! 안바울!”을 외쳤다. 안바울은 휴대전화를 꺼내 아내와 화상 통화를 했다. 그는 2년 4개월 전 결혼해 아직 신혼이다. “올림픽 준비하느라 자주 보지도 못했는데, 와이프가 제 경기를 보고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어 있더라고요. 너무 ‘쌩얼’이라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지는 못했죠.” 안바울은 생후 17개월인 아들 지안이에게 메달을 가지고 가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한국 유도 사상 첫 올림픽 3연속 메달리스트라는 역사를 썼다.
그의 승리는 ‘동메달 11개 값어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체전에 한 경기라도 출전했던 한국 남녀 선수 7명은 물론, 출전 대기를 하고 있었던 나머지 4명까지 11명이 모두 시상대에 올랐다. 대표팀 최고 베테랑 김원진도 첫 올림픽 메달을 걸었다. 유도 대표팀 전원은 체육연금으로 통하는 경기력향상연구기금(동메달 기준 월 52만5000원)을 받을 자격도 똑같이 얻는다. 역대 한국 올림픽 도전사에 남을 큰 감동을 선사한 그의 소감은 이랬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팀이 하나로 뭉쳐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엄청난 스토리가 만들어져서 한국 유도에 관심이 모였고,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에겐 더 힘을 낼 수 있는 시작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안바울은 4년 뒤 LA 올림픽까지 ‘4연속 메달 도전’을 구상하지는 않고 있다. “다행히 수술을 한 적은 없지만 (부상의) 아픔을 참아가며 운동했습니다. 지금은 좀 쉬면서 충전부터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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