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문제' 빠진 아리셀 후속 대책, 대피로 개선에 1억 지원
"모든 외국인 노동자 최소 1번 안전교육 받게"
노동계 '불법파견 핵심 빠진 맹탕 대책' 비판
아리셀, 비상구 부적정 설치 등 65개 법 위반
23명이 죽고 8명이 다친 경기 화성시 아리셀 화재 참사와 관련해 정부가 사고 51일 만에 외국인 노동자 안전 교육 강화와 화재 방지·대피 시설 개선 시 비용 지원을 골자로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와 노동계에서는 '일용직 불법파견 등 사고 핵심 원인에 대한 대책은 빠지고 외국인 노동자 산재 발생 원인에 대한 진단도 부실한 맹탕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사고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수본 3차 회의를 개최하고 '외국인 근로자 및 소규모 사업장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주안점은 △산재 사망 사고가 잦고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안전 관리 수준을 높이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실 있는 안전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 크게 두 가지다.
외국인 취업자 92만 명... 안전교육은 30만 명뿐
우선 안전 관리 개선 차원에서, 화재 발생 시 확산 방지를 위한 격벽이나 위험물질 보관시설을 새로 설치하면 정부가 기업에 최대 1억 원을 지원한다. 비상구와 대피로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형광 표시 등으로 개선하는 데도 최대 1억 원이 지원된다. 외국인 노동자가 점차 늘고 산재 사망이 잦은 건설업은 11년 만에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평균 19% 인상하기로 했다. 마지막 요율 인상은 2013년이었다. 산안비는 발주자가 건설현장 산재 예방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공사금액에 덧붙여 시공자에게 지급하는 돈으로, △보호구 △안전시설비 등 사용처가 제한돼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 교육 사각지대' 문제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최소 한 번씩은 전문적인 안전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 목표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외국인 취업자 수는 92만여 명인데, 최근 5년간 안전보건교육을 받은 인원은 30만여 명이었다. 고용허가제 외국인 노동자(E9·H2 비자)는 입국 후 취업교육(2박3일) 과정에서 4시간 안팎 교육이라도 받지만, 재외동포(F4) 등 다른 비자 외국인 노동자는 그동안 의무교육 대상이 아니었다. 아리셀 참사 피해자 상당수는 F 계열 비자 소지자였다.
이에 정부는 취업자가 가장 많은 F 계열 비자 소지자에 대해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하에 기초안전보건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모든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교육을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작업도 조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도 쉽게 이해 가능한 모국어 번역·그림 안전 자료를 제공하고, '안전보건 통역사' '외국인 안전 리더' 제도도 확산시키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참사로 논란이 된 위험성평가 제도는, 평가 결과 취약 사업장은 컨설팅을 의무화하고 이후 6개월 내 개선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아리셀이 위험성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 사업장'에 선정된 사실이 참사 이후 뒤늦게 밝혀지자,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정부는 위험성평가 인정 기준을 상향하고, 인정 후 3년 이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료 감면액을 환수하겠다고도 밝혔다. 그 외 안전장치 해제 금지 등 '4대 금지 캠페인'으로 안전문화 확산에도 나섰다고 덧붙였다.
"불법파견 문제 빠져" "사업장 변경도 개선돼야"
노동계는 정작 이번 참사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인 '일용직 불법파견' 관련 대책이 빠진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리셀에는 사고 당시 정직원 50명, 외래(일용직 파견) 근로자 53명이 있었는데 사업장 내 위험 요소나 대피 구조를 잘 모를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던 점이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민주노총은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등 근본 문제에 대한 정부 조사나 대책은 눈 씻고 봐도 없다"며 "이주노동자 산업안전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이주노동자가 집중 투입되는 고위험 제조업 산단에 공동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 실제 현장 위험에 대한 공동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가와 대책위 제언은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도 "실질적인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고, 파견 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정통한 최정규 변호사는 "위험의 이주화(위험한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전가되는 현실)를 생각하면 반쪽짜리 대책"이라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 이상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전 캠페인, 교육 강화 등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일용직으로 당장 오늘 와서 업무 위험 요소를 곧바로 익힐 수 있겠느냐"며 '일용직 파견' 문제를 꼬집었다.
이날 고용부는 아리셀 참사와 관련해 불법파견 의혹 등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파견법 위반 여부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와 별개로 2주 특별감독 결과 △비상문 부적정 설치 △가스 검지 및 경보장치 미설치 등 65개 법 위반 사항이 적발돼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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