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광복절 파장] 정부 설득 외면한 광복회 `경축식 불참`
尹 "논쟁, 민생에 무슨 도움되나"
광복회, 대통령실 인근서 시위도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뉴라이트 성향' 논란으로 시작된 갈등이 사상 초유의 '반쪽 광복절 경축식'으로 번졌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와 더불어민주당 등 야6당은 김 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정부가 주관하는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가 선양단체와 야권은 김 관장을 뉴라이트 계열로 보고 독립기념관의 취지와 맞지 않은 인식을 가진 인사가 관장으로 임명된 것이 정부의 '건국절' 제정을 위한 행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광복절 행사에 야당이 불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광복절 행사를 '건국 60년 경축식'을 겸하는 것에 대해 반발한 야당이 정부 공식 행사 대신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했다. 다만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들이 정부 행사에 불참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들의 불참 선언에 정부는 진화에 나섰으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분위기다. 대통령실이 나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정부는 건국절을 추진하려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해명하고,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도 13일 광복회관을 직접 찾아 이 회장에게 경축식 참여를 요청했으나 이 회장은 김 관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사를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정부를 향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치욕스러운 친일 매국 작태 때문에 독립투사 순국선열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광복절 79주년을 앞에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 의원은 김 관장의 임명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의원실에서 받은 답변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독립기념관에서 1순위로 제청한 후보자를 임명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독립기념관은 우선순위 없이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고 답변한다"며 "독립기념관과 대통령실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독립기념관장이 식민사관을 정당화했을 경우 이사회가 해임하거나 지명 철회를 건의할 수 있는 이른바 '김형석 방지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김 관장에 대한 '결자해지'를 요구했다. 우 의장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자다.
우 의장은 "광복절을 앞두고 심각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빚어졌다"며 "대통령께서 나서서 일련의 일들에 대해 국민이 왜 걱정하고 비판하고 또 분노하는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들의 문제제기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피임명자(김 관장)가 자진사퇴를 거부한 만큼 인사권자인 대통령께서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 대해 "먹고 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논란이 민생과는 동떨어진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야권의 공격을 '정쟁'으로 평가절하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광복회와 야권의 비판에도 침묵을 지켜온 국민의힘도 반박에 나섰다. 김 관장에 대한 인사 자체에는 말을 아끼는 대신,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는 야당에 대해서는 '정쟁화를 지양해야 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한동훈 대표는 이날 중진 의원들과 오찬 후 취재진을 만나 "인사에 대해선 여러 가지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 때문에 우리나라의 큰 경축일인 광복절 기념식을 보이콧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당내에서는 김 관장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며 "이 문제를 정쟁적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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