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이후의 블루···세계 정상 찍은 선수들이 우울감에 빠지는 이유
올림픽에서 메달을 석권하며 세계 정상의 궤도에 오른 선수들은 대회가 끝난 뒤 침체기를 겪곤 한다. 이를 ‘포스트 올림픽 블루(올림픽 이후의 우울)’라고 부른다.
19살이었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딴 마이클 펠프스는 오랜 시간 알코올 의존증을 겪었다. 그는 2017년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엄청난 우울증에 시달렸다”라고 밝혔다. 과거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일본의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는 2021년 프랑스 오픈 1회전을 통과한 이후 대회 기권을 선언하며 “2018년 US오픈 이후 우울증 증세로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미국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1984년부터 1992년 사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호주 선수들을 대상으로 1998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자신의 성취를 완전히 긍정적으로 묘사한 선수는 4명뿐이었다. 6명은 자신이 경기하는 데에 팀의 지원이 부족했고 대회 후 번아웃에 빠졌다고 호소했다.
미국 올림픽 및 패럴림픽 위원회의 심리 서비스 부문 수석 이사인 제시카 바틀리는 미국 ‘디애슬래틱’에 “올림픽 이후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은 선수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덴마크 국적의 올림픽·패럴림픽 선수 4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의 27%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한 선수의 40%는 평균 이하의 행복감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스포츠 연구소의 심리학자 다니엘 애덤스 노렌버그는 “대회가 끝난 뒤 선수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과도한 훈련을 하는 등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2020 도쿄 올림픽의 미국 국가대표팀 정신 건강 책임자였던 코디 커맨더 박사는 “지도에 그려져 있던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며 “엘리트 운동선수들은 몇 년 동안 매 순간을 계획하며 살아왔는데 목표를 달성한 순간 ‘길을 잃었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카렌 하웰스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것을 희생한다”라며 “자신의 신체를 ‘올림픽 선수’로 브랜드화하기 때문에 성과에 대한 근시안적 집중력이 생기고, 대회가 끝난 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웰스는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우울감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이 되거나 자신이 팀에서 방출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바틀리는 “유명 선수들이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낙인 효과가 줄어들고 있다”라며 “자신의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지원받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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