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여공의 삶에 이끌렸다”…‘귀향’ 이어 ‘조선인 여공의 노래’ 연기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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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배우 강하나(24)는 꽤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2022년 이원식 감독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자고 제안한 것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배우로서 가장 만족스럽다"는 그에게 또다른 기회가 됐다.
할머니가 된 여공들의 증언을 듣고 방적 공장 터를 돌아다니면서 과거로의 여행을 이끄는 나레이터이자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 역을 함께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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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자달라졌다. 조선인 여공들이 일본인에게 항거할 때 썼던 빨간 댕기를 머리카락 끝에 묶고 난 표정엔 결연함이가득 찼다. 100여 년 전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핍박을버텨온 여공들의 고단함이 어린 모습이었다. 7일 개봉한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에 등장했던조선인 여공 그 자체였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 때 배우로서 가장 만족하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는 2000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4세다. 증조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오사카에 자리 잡았다. 공장 노동자 등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본에선 쭉 조선학교에 다녔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대학을 갈까 하다가 갑작스레 진로를 바꿨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어서요.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진학해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연기를 시작한 건 5세 때부터다. 어머니가 2005년 일본에서 창단한 ‘극단 달오름’에서 아역을 맡았다. 조선인 학교 폐쇄 명령을 내린 일본 정부에 맞서 싸웠던 사건을 다룬 2007년 마당극 ‘4·24의 바람’을 시작으로 매년 1편 이상 극단 달오름에서 연기했다. 그는 “엄마 손에 이끌려 아무것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했다”며 “사실 어릴 적엔 엄마가 하라니까 연기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영화 ‘귀향’(2016)에서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96)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35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갔던 열네 살 소녀 ‘정민’ 역을 맡아 열연했다. 청룡영화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귀향’은 배우의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고민하던 나를 연기로 이끈 작품”이라며 “연기를 왜 해야 하는지, 연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고 했다. 그는 또 “갑자기 사랑받으니 감사하면서도 내가 제대로 내 몫을 한 걸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22년 이원식 감독이 일제강점기 일본 방직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찍자고 찾아온 것. 먹을 것이 없어 돼지 내장을 구워 먹고, 직접 야학을 열어 한글을 익혔던 여성들의 삶에 이끌렸다. 그는 “태생을 벗어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체성을 살리는 연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강하나는 1인 2역을 맡았다. 할머니가 된 여공들의 증언을 듣고 방적 공장 터를 돌아다니면서 과거로의 여행을 이끄는 나레이터,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던 어린 여공 역을 함께 연기한 것. 특히 영화에서 진행자인 강하나가 여공 강하나를 마주하는 장면은 현재 세대 과거 여공들을 이해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그는 “나레이터로 연기하는 동안 갑자기 내가 연기 중인 여공을 쫓아가 대화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며 “연기를 하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신기한 감정이었다”고 회상했다.
영화 곳곳에서 강하나가 여공들의 증언록을 읽는 장면도 눈여겨볼 만하다다. 여공의 옷을 입고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로 “차별도 받았고 여러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마음에 쌓아 두지 않아”라고 읽어 내려가는 장면은 아픈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게 이끈다. 그는 “감독님이 지시 없이 읽으라 해서 내 해석대로 읽었다”며 “듣는 사람이 듣기 편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낭독하려 했다”고 했다. 그는 “영화가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다”며 “조선인 여공들이 힘든 상황을 당당하고 강인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과제와 미래에 대한 고민…. 2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다시 평범한 대학 4년생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중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지만 연기에 한계를 두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말괄량이 길들이기’처럼 코미디도 좋고 로맨스도 환영”이라며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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