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은 왜 뉴라이트를 편애하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동북아역사재단. 이 네 기관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윤석열 정권에 의해 뉴라이트 계열의 학계 인사가 기관장에 최근 임명된 것이다. 독립운동을 연구·기념해야 하는 독립기념관 관장까지 독립운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한 정부에 광복회가 강하게 항의한 데에 이어 보수 일간지인 동아일보마저 정부의 이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석열 정권의 뉴라이트 편애는, 상당수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위화감을 줄 정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번 홍범도 장군 격하에 이어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찬성했다. 그 전시에 강제 연행과 노역을 명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진보적 색채의 독립운동을 격하·부정하고, 일제 강점기에 노동자와 농민들이 당했던 고통보다 일부 토착 엘리트의 화려한 출세 가도와 ‘조선의 문명화’를 강조하는 것은 뉴라이트 사관의 중요한 요지다. 이런 뉴라이트를, 보수 일간지의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윤 정권이 편애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뉴라이트의 ‘역사 운동’이 결집한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2006년이었다. 본질상 이 운동은, 다수 시민들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요구에 의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온 친일 진상 규명에 대한 보수 기득권층의 조직적 대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기득권 세력의 물리적 내지 제도적 ‘선조’들의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 총독부에 직접 부역했거나 적어도 식민지 권력과의 갈등을 피하면서 재산 증식이나 권위 구축에 바빴다. 친일 진상 규명은 족벌언론이나 주요 재벌, 종교계, 학계 등에 존재하는 식민지적 ‘뿌리’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한국 기득권 세력의 ‘명분’을 위협했다. 기득권 세력들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친일을 문제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새로운 논리로 한국 사회 전체를 포획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 학자들 중에는 비극적이게도 일부 전향한 과거의 마르크시스트들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극복됐지만, 과거 일부 구미권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서구 중심주의적 편향에 사로잡혀 서구와 일본 이외의 지역들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정체에 빠져 있어, 식민화가 아니면 스스로 근대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국내의 마르크스주의 경향의 사학자 중에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보기 드물게 조선 시대를 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그가 1990년대 이후 극우파로 전향하면서 과거 그의 마르크스주의적인 서구 중심주의는 아예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더더욱 변질됐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기본적인 사유재산제도조차 확립되지 못한, ‘정체에 빠진’ 노비 왕국 조선에 근대 자본주의를 이식하고 ‘문명화’시킬 수 있었던 세력은 일제 이외에 없었다. 따라서 친일은 “조국 문명화를 위한 애국”으로 쉽게 둔갑한다.
한데 이 사관의 세계사판은 윤 정권에 더욱더 이용가치가 높다. 뉴라이트의 일제 합리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 일변도의 태도와 직결된다. 일제만 정당화되는 게 아니고 사기업과 사유재산에 뿌리를 박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인류에게 ‘축복’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유재산을 부정한 혁명에 정권의 유래를 두고, 사기업을 국가에 복속시키는 중국이나 북한은 ‘문명의 적’으로 치부된다. 이런 이분법과 세계 체제의 패권 국가와 그 지역적 동맹 세력들에 대한 무조건적 미화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구상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초강경 대결 노선이나 중국과의 무리하고 다분히 인위적인 탈동조화는 중국과 북한을 악마화하는 사관으로 너무나 잘 합리화된다. 나아가 일본과의 사실상 군사 동맹 체결 노선과 대미 맹종 노선은 미국과 일본을 ‘자본주의 문명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사관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 사관은 윤석열 정권 국정 철학의 ‘기본정신’에 가깝다.
사실 일제의 비호 밑에서 재산을 늘린 자본가나 지주가 아닌, 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노동자를 조상으로 둔 다수의 한국인에게 뉴라이트 사관은 체질적인 거부감만 자극할 뿐이다. 극우들은 이런 거부감을 ‘민족주의’라고 혹평하지만, 이는 결코 민족주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컨대 기후 문제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기후 파괴에 앞장서온 자본주의 열강에 대한 뉴라이트들의 무제한적 찬사는 ‘민족주의’ 이상으로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힘입은 중국이 점차 미국과 같은 비중으로 양극의 세계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현시점에서, 오로지 구미권의 역사적 경험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뉴라이트 사관은 서구 중심주의가 통했던 과거의 낡은 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뉴라이트와 그 세계관을 편애해온 윤석열 정권은, 보수 언론의 비판적인 지적까지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기억의 정치를 펼쳐 나가면서 뉴라이트들을 억지로 역사의 기억을 관리하는 기관의 기관장으로 앉히는 폭거를 저질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본격화된 지정학적인 대립, 그리고 남북한 긴장 속에서 이와 같은 역사 정책이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래도 믿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믿음이 궁극적으로 허구로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성장과 물가 대란, 실질 임금의 감소, 자영업자들의 도산 속에서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그 어떤 반대급부도 얻어내지 못하면서 오로지 일본 통치자들의 의제만을 챙겨준다는 것은 다수의 국내인들에게 굴종과 치욕으로 다가올 뿐이다. 자본주의가 국내외적으로 다중 복합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순간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그저 비상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뉴라이트들을 편애하고 무분별하게 기용한 것은, 이 정권에서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지뢰’이자, 부메랑이 되어 이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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